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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Aug 22. 2019

지금의 윤수영을 만든 책

박찬용 에디터와의 대화

플라톤아카데미의 최선재 실장님이 '지금의 윤수영을 만든 책'이라는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셨을 때, '박찬용 에디터와 함께 작업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감사하게도 두 분이 너그러이 수락해주셔서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신약성서>, <논어>, <문학이란 무엇인가>, <크로우즈>, <벡>, <킹덤>, <슬램덩크>, <나홀로 볼링>, <카오스>, <링크>, <사랑의 기술>, <총균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죽음의 수용소에서>, <제국의 탄생>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책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걸 새삼 느꼈다.


들어가며 - 재미는 없어도


Q : 만나기 전 책 목록을 주시며 메모를 남겼어요. 그 안에 각각 책의 키워드가 있었습니다. 그 중 처음 이야기해보고 싶은 건 ‘종교로 인간을 본다는 것’입니다.

A :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를 말씀드렸죠. 엄청나게 재미없는 책이었습니다.


Q : 이 재미없는 책을 어떻게 알았어요? 지금 보니 일반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도 아닌데요.

A : 저는 경영학을 전공했는데요, 공부를 하다 보니 ‘학교에서 배우는 게 본질적인 것과 괴리가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 내가 학생 혹은 사람으로 이 고등 교육 기관에서 얻고자 했던 건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았어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인간과 나와 삶과 세상과 역사에 대한 성찰이 생기기를, 나만의 무엇인가가 생기길 원했어요. 왠지 그건 사회학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에밀 뒤르켐의 책을 찾게 됐어요. 이런 고전을 읽으면 뭔가 보이려나 싶어서요. 인터넷으로 에밀 뒤르켐 저작의 목록을 보는데 그중에서도 이게 눈에 띄었어요. 저는 제 삶의 이유와 의미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는 사람이었거든요.


Q : 언제부터 그런 걸 궁금해했나요?

A : 초등학교 때부터 원초적으로 죽는 게 무서웠어요. 무로 돌아간다는 건 생각할수록 고통스러운 개념이었어요. 그래서 내 삶에 어떤 큰 이유가 있었으면, 혹은 뭔가 큰 것과 연결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어요. 그러다 보니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가 끌린 것 같아요.


Q : 재미는 있었나요?

A : 아주 재미없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성과 속이라는 개념이 나와요. 성스럽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얼핏 보기에는 쓸모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무척 중요하다고 해요. 성스러움은 종교에서 주로 드러나긴 하지만 사회 집단의 근간에 있는 법칙이나 약속도 성스러울 수 있다고 하고요. 그 핵심 주장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동시에 잘못된 것 같았고요. 우리 시대에는 무엇이 성스럽지? 싶어서 보니 지금은 지난 시대의 성스러움이 무너져내렸는데 아직 새로운 성스러움이 생기지 않은 것 같은 거예요. 그 시대에 마침 내가 어른이 되어버렸고요.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실존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자존감, 지적 능력, 건강한 마음, 사려 깊은 지성으로 자기 삶의 이유를 실제로 구현할 정도의 복을 받은 사람만 실존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모두가 실존할 수 있다고 하는 건 치사한 일 같았어요. 그러니 개개인을 놓고 보면 실존을 추구하는 게 좋지만 사회 전반적으로는 뭔가 성스러운 게 필요하다고, 그게 없으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허무해지고 고독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이 이 책을 통해 많이 정리되었어요. 이 모든 생각이 ‘죽고 그냥 없어지면 어쩌지’라는 어릴 때의 두려움으로부터 시작된 흐름인 것 같아요.


Q : "개인적인 두려움으로부터 사회에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큰 질문까지 가게 된 거예요?

A : 그랬던 것 같아요. 방금 제가 말한 건 꽤 오랫동안 저한테 중요하게 생각했던 거라서.


Q :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추천할 만 한가요?

A : 개개인 단위가 아니라 좀 큰 단위로 함께 추구하는 뭔가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단 무척 재미가 없긴 해요. 그래도 메시지는 강렬하니까. 세상엔 성스러운 것이 있고, 그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게 꼭 고등 종교라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을 뿐 아주 많은 곳에 있다.


21세기의 성스러움.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


Q : 트레바리가 추구하는 성스러움과도 연관이 있나요?

A : 언젠가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직 함부로 ‘우리 사회가 함께 열정적으로 이런 걸 추구해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할 만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현시점에서 모두 가장 거부감 없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는 지성과 연대지만 이건 성스럽기 쉽지 않아요. 성스러우려면 열정적이어야 하는데 지성과 연대에는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요소가 없어요. 적이 없거든요. 반지성과 분열이 악당이 되기는 힘든 것 같아요.


Q : 요즘이야말로 반지성주의를 악으로 보는 시도가 있지 않나요?

A : 그렇죠. 그래서 사실 어느 정도 큰 트렌드를 탔다고는 생각해요.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은 새로 생긴 기업 중에서도 기존에 있던 것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기업에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트레바리'는 무엇을 보완할까요? 저는 트레바리가 대학과 교회가 담당하던 역할을 어느 정도 보완한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대학과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이 기대하던 것이 있었고, 지금은 여러 이유로 그것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인데, 그것을 우리가 주는 느낌이랄까요.


쾌남 지저스와 멋진 사람들. <신약성서> <논어> <문학이란 무엇인가>


Q : 추천 도서인 <신약성서>를 읽었던 것도 이런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나요?

A : 아뇨, 저는 신약성경은 종교적인 책이 아닌 것 같아요. 신약성경은 예수라는 훌륭한 인간의 철학과 규범과 잠언의 모음집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 안의 예수는 아주 쾌남이에요. 굉장히 멋있어요. ‘예수는 인간이 가장 아름다워질 수 있는 길을 정말 현명하게 제시했다. 이루기 어려워서 그렇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논어>도 그와 비슷해요.


Q : <신약성경>과 <논어>에 이어 <문학이란 무엇인가>도 추천했죠.

A :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제게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었어요. 사르트르는 행동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은 것도 뭔가를 말한 거’라고. 내가 침묵이라는 언어를 골라서 현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거라고요. 그게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어떤 말은 행동과 다름없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SNS에 올린 비판적인 글은 행동이라고 볼 수 없지만, 서지현 검사 같은 사람이 한 말은 행동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으며 어떤 말이 행동이고 어떤 게 말일 뿐인지 고민했어요.


Q : 책 목록이나 성격이 다양한데, 이 책들을 어떻게 알았어요?

A : 저는 대학교에서부터 독서 모임을 했으니까, 독서 모임에서 누군가 골랐을 거예요. 제가 고른 책은 아니었어요. 우연히 읽은 책도 있고요. 그때 제 카톡 대화명은 ‘바보들의 세상 아름다운 세상’이었어요. 약간은 바보스러운 게 있어야 한다 싶어서요. 자신의 지향이 논리적으로나 가치적으로나 완벽하지 않다고 해도 뭔가를 강렬하게 지향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 같았어요. 저도 뭔가 불태우고 싶었는데 그만한 대상이 없어서 에너지가 남아돌았고요.


소년의 에너지를 쓴다는 것. <크로우즈>


Q : 그때는 그 남은 에너지를 어디 썼어요?

A : 술 마시고, 장난 많이 치고, 음악 좋아하고요. <크로우즈>의 작가가 그린 <워스트>를 보면 “우리 같은 놈들은 피가 남아돌아서 가끔 이런 식(싸움)으로 빼 줘야 한다”는 대사가 있어요.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아주 공감했거든요.


Q : 저는 <크로우즈>도 안 읽었다가 이번 인터뷰 때문에 찾아 읽어 봤어요. 나이가 들어서 소년만화를 보니 공통적인 정서가 있더라고요. 성장하고, 권역을 넓히고, 계속 강한 라이벌이 나오고. 추천 만화 중의 <벡>에도 그런 요소가 있겠죠? 더 큰 장애물과 더 큰 도전이?

A : 그렇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식의 이야기 구조가 많죠. 안 되고 힘들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도 있고. 그리고 ‘뭔가 있다’ ‘가치가 있다’ 같은 식의, 막연하면서도 희망적이고 건설적인 말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Q : 세간의 가치와는 조금 다른 진짜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겠죠?

A : 네. 여담이지만 최근 트레바리가 '소프트뱅크'에게 투자를 받았어요. 이참에 주주를 더 알아야겠다 싶어서 손정의 회장의 삶을 알아보고 있는데, 이분의 삶이 거의 만화 주인공 수준이에요. ‘이 땅에 정보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이야기하면서 인생을 걸고 거기 도전해요. 소프트뱅크가 소프트웨어 유통업체로 시작했어요. 손정의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에 가서 “저에게만 독점으로 공급해 주세요. 제가 우리나라에서 1등을 할 거라서요”라고 했어요. 시작도 안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독점 공급 계약을 땄어요. 그런데 그러려면 소프트뱅크가 CD를 사야 하잖아요. 그런데 소프트뱅크는 시작하는 회사니까 돈이 없어요.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가도 신용 등급이 없으니까 안 빌려주고요. 그래서 독점 공급을 하기로 한 소프트웨어 제작 회사들이 손정의의 보증을 서요.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나 봐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 “왜 그렇게 도와줬습니까? 왜 당신의 퇴직금과 집까지 담보로 걸고?”라는 질문을 받자 “아, 마사요시는 귀여웠거든요.”라고 답해요. 이런 식의 낭만적인 사건이나 재미있는 요소가 많죠.


리더라는 것, 쓸모라는 것. <킹덤><슬램덩크>


Q : 추천하신 만화인 <벡>, <크로우즈>, <킹덤>도 비슷한 이야기인가요?

A : <킹덤>은 조금 달라요. <킹덤>은 마초적인 리더십과 리더의 무게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책이에요. ‘전쟁은 장군과 장군의 대결이다’ 식의 기본 전제가 있어요. 병사의 양과 질에 상관없이 장군이 뛰어나면 이기고 무능하면 지는 거라고. 장군이 되는 건 그 무게를 아는 거고, 그래서 장군이 그 무게를 견뎌야 하고, 그리고 그걸 견뎠을 때 얼마나 낭만적이고 위대해지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트레바리를 경영하면서 더 자주 읽는 책이기도 합니다.


Q : <킹덤>은 여기 나온 책 중 유일하게 아직 완결되지 않은 책이기도 합니다. 나머지 완결작 <슬램덩크>와 <크로우즈>는 비슷한 과인가요.

A : 조금 달라요. <슬램덩크>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잖아요. 인생에서 무엇이 소중한지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하고요. 저는 이 만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 '산왕공고'와의 마지막 시합에서 2군 선수들이 갑자기 강백호에게 달라붙는 장면이에요. 그 선수들이 갑자기 달려들어서 강백호의 손을 잡아주며 “공아 붙어라”라고 하는 장면이 있어요. 강백호는 단상에 올라가서 종이로 나팔 모양을 만들고 “이 멍청이들아, 산왕은 내가 쓰러뜨린다”라고 이야기하고요. 그리고 ‘그때 강백호는 한없이 차분했다’라는 설명이 붙어요. 누군가가 나를 믿고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정신이 맑고 편안하다, 그러니까 ‘이들의 기대에 부응해 산왕을 이긴다’는 거죠. 이 부분에서 여러 번 울었어요. 누군가에게 기대를 받고 내가 쓸모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건 인간에게 참 소중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요. 그래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건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고, 더 나아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쓸모를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위대한 일이라 생각해요. 진짜 위대한 성취는 모두에게 각자의 쓸모를 만들어주는 거라고요.

몇 번을 봐도 뭉클한..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기대받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라니!

‘모이면 좋구나’. <나 홀로 볼링>


Q :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람이 읽어온 책 자체가 그 사람의 자아와 세계관 자체다 싶기도 하네요. 자연스럽게 트레바리의 주제와도 연결될 수 있는 <나 홀로 볼링>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을 읽고 공동체 의식에 대해 생각했다고 했죠.

A : 이 책이야말로 ‘모이면 좋구나’라는 확증편향을 만들어준 책이었어요. 사례도 지금은 많이 기억나지 않고, ‘나 홀로 볼링’이라는 제목과 ‘사람들이 모이면 좋다. 그걸 사회적 자본이라고 부른다’ 정도만 기억나요. 내가 막연하게 사실이었으면 하고 바라 왔던 걸 아주 유명한 사람이 아주 많은 사례를 들어 가면서 ‘당신이 바랐던 게 맞습니다’라고 해준 기분이랄까? 그래서 다 읽고 나니"‘어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싶은 기분이었어요.


Q : 독서법 이야기를 해 볼까요. 독서법이 어땠어요?

A : 독서 모임 하면서 읽었어요. 쓰기 위해 읽었던 것 같고요. 근사한 독후감을 써내서 “역시 윤수영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칭찬이 듣고 싶었다기보단 독서 모임의 실질적인 리더였기 때문에 그럴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 내가 이만큼은 해야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는?

A : 네. 그런 식의 좋은 리더십을 갖고 싶었어요. 글을 열심히 썼던 이유도 ‘이 글 되게 좋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시 윤수영은 독서 모임의 리더답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어요. 열심히 쓰다 보니 나만의 독특한 시점이 담긴 나만의 글을 쓰고, 책은 내가 더 좋은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재료가 되고요. 대학 때의 독서 모임은 한 달에 두 번씩 했던 거라 일련의 글 사이에서 통일성도 있어야 했어요. 글이 나를 대변하니까. 만약 사상이 체계적이지 않으면 내가 했던 말을 뒤집어야 해요. 그러면 안 되니까 논리도 좋아야 하고. 그런데 통찰이 있다는 평을 받으려면 남달라야 하고, 남과 다르려면 무리수를 두기 쉬워요. 남다르면서도 탄탄한 논리를 독서 모임을 통해 열심히 길렀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보니 색다르고, 색다르니까 인지가 되고.


Q : 남에게 인지되기 위해서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인가요?

A : 내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이 가치를 느끼려면 다른 데서 보기 힘든 걸 보여줘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뻔하거나 식상하지 않고, 내 글에서만 얻을 수 있는 독자적인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트레바리도 식상하면 안 돼요. 굳이 다른 기업이 줄 수 있는 걸 주는 게 아니라 나만 줄 수 있는 걸 만들어야 한다. 독서 모임을 하며 그런 성향을 악착같이 길렀어요. 독서는 제 성향을 만드는 재료이자 도구였고요. 컴퓨터 앞에서 책을 읽다가 메모하고 싶은 게 있으면 메모를 하고,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있다면 그 옆에 또 코멘트를 달고요. 그때는 스마트폰을 덜 썼으니 네이버 블로그에 했어요.


플라톤아카데미에서 강연 중


과학적 사고, 주체적 사고. <카오스> <링크>


Q : <카오스>와 <링크> 이야기를 해 볼까요. 과학과 과학적 사고에 눈 뜨게 해준 책이라고 했어요.

A : 카오스 이론을 보면 아주 신기하잖아요. 저는 그런 종류의 요소에서 경외를 느껴요. 어마어마하게 큰 단위에서의 자연 현상에서 미개한 인간을 봤을 때 느끼는 겸허함이나 경건함이 있잖아요. 물론 굉장히 재미있기도 해요. 저는 인간이 이 정도로까지 앎의 영역을 넓힌다는 게 엄청나게 신기하고 위대하고 아름답다고도 생각해요. ‘이걸 어떻게 알았지?’ 싶은 기분.


Q : 그렇게 보면 두 권의 책이 비슷한 면이 있네요.

A : 과학자들의 연구 안에는 정교하게 혁신을 디자인하는 역동의 미학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늘 재미있고 신기하다고 생각해요. 아름답고 위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건 지극히 인간적이에요. 그래서 나도 어쩌면 과학자처럼, 궁금해서 가설을 설정하고 실험을 설계해서 끈질기고 집요하게 버텨서 성취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좋을까? 그 과정을 잘하다 보면 위대한 과학적 성취 같은 사업적 성취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요. 


여자친구와의 다툼을 줄여준 책. <사랑의 기술>


Q : 에리히 프롬의 책들도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어요. 남 탓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생각했다고요.

A : <사랑의 기술>을 보면 사랑받을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야 참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사랑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해요. 저는 이 논리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충격적일 정도로. 사랑조차도 운명의 상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주체성이 중요하다. 지금 눈으로 이 책을 보면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대목이 있지만 아까 말한 애초의 논리 자체는 사랑을 넘어 모든 상황에 통하기도 해요. 그러니 ‘우리 회사에는 인재가 없다’는 말은 ‘명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에 밀리는 거죠. 제가 그런 식의 주체성을 처음 진지하게 생각한 계기가 이 책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부터는 여자친구와 다툰 횟수가 확 줄었어요.


Q : 이 책이 구글 검색 결과로는 자기개발서로 분류되는데 일리 있는 것 같아요.

A : 사랑 책이라기보다 제게는 인격 수양에 더 가까운 책이죠. 아무튼 그래서 사랑하는 주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Q :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요, ‘에리히 프롬’같은 경우는 이름부터 먹고 들어가는 게 있는 듯해요.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의 책이라면 이미 좋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A : 그렇죠. ‘촘스키’처럼 ‘크’, ‘트’, ‘흐’, ‘프’ 등의 이름이 들어가거나 하면요.


이름의 어감, 빅 히스토리. <총, 균, 쇠>


Q : 한국 사람들에게 이국적인 어감이 책의 매력과 관계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다음 책도 작가 이름부터 강력하거든요. 제목과 이름이 모두 강렬하다고들 많이 이야기하고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A : <총, 균, 쇠> 딱, 딱, 딱.


Q : 저자 성은 다이아몬드고.

A : "읽은 사람은 없어도 산 사람은 많은 책"이기도 하죠.


Q : 요즘 시대의 <총, 균, 쇠>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인 것 같기도 해요.

A : 둘이 비슷하죠. 큰 흐름을 보는 ‘빅 히스토리’ 구성도, 몇 개의 키워드와 시선으로 인류의 역사를 한 번에 훑으려는 시도도요.


Q : 저자의 시점과 결론이 일견 도전적이라는 것도 두 책의 공통점이죠. 이 책은 어떤 이유로 추천하세요?

A : 파도의 방향을 바꾸지 못한다. 파도를 타야 한다. 이런 교훈을 주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흐름의 방향을 동에서 서로 트는 건 가능해도 아래에서 위로 돌릴 수는 없잖아요. 그런 큰 틀에서 역사의 흐름을 보니 겸허하게 와 닿는 게 있었어요. 세상의 흐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내가 혹시 시대를 거스르는 건 아닌가. 내가 마지막 끄트머리에 올라타서 잘못되는 건, 안 되는 욕심을 붙잡고 있는 건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며 이런 고민을 했어요. 그리고 이 책 내용처럼 결국 이기려면 총을 가져야 하고 적들에게 균을 안겨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일간 단위에서는 성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더 길게 봤을 때의 큰 무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트레바리는 대의명분이 중요해요. 역사적으로 이 시대에 필요한 일을 한다는 대승적 흐름을 타고 거기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고민을 무척 많이 했어요. 내가 역사를 타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역사를 느낄 수 있을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Q : 그런데 역사를 타는 사람이 그 당시에는 ‘내가 역사를 탄다’고 느꼈을까요?

A : 아니었겠죠. 그러니까 이른바 메타적인 사고가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상상해도 모를 부분이라 해도 ‘나는 역사의 흐름에 있는 한 줄기 물방울 정도다’라고 인식해야 끊임없이 물줄기가 어디서 어디로 흐르고, 큰 틀에서 이게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Q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말하자면 그 게임의 흐름을 잘못 읽은 사람들의 이야기인 거겠죠?

A : 그렇죠. 예를 들어 일본 강점기에 ‘일본이 망할 리가 없는데’라는 판단을 한 사람들은 몰랐던 거죠. 사실 일본보다 미국이 훨씬 더 부강한 나라라는 것을. 더 크게 보면 소련과 영국이 일본보다 세다는 것을. 내 눈에 보이는 건 일본의 강대함 뿐이니까요. 그게 참 애매한데 당시 그 사람들이 미국과 소련이 얼마나 강한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저도 마찬가지로 제가 아는 흐름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큰 틀에서,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겠죠. 늘 겸손해야 한다는 메시지와 가까울 수도 있고요.


Q : 최근 읽은 책 중에 <2차 세계 대전의 12전환점>이라는 책이 있어요. 거기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요. 독일도 자부심을 가질만했어요. 자기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근거가 있었고요. 독일의 전차부대는 진짜로 안 졌대요. 그런데 히틀러가 몇 년 동안 오판을 계속한 거예요. 이를테면 소련과 전면전을 하고. 영국을 함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A : 신기해요. 기본적으로 전선을 넓히는 건 프로로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건데. 예를 들어 프로 권투선수가 상대의 왼쪽이 부상이 있는 걸 알았다면 거기를 집중적으로 공격해야죠. 프로로의 나는 이겨야 하니까. 그런데 어차피 이겼네 하면서 대충하면 안되는 거고요. 독일 같은 경우는 그때 집요하게 서쪽 유럽을 공략했어야 했을 텐데요. 러시아와 싸우더라도 독일과 러시아만 남았을 때 싸워야 했고요. 그런 걸 보면 오만하고 도취하여 있고 겸손하지 않은 건 무척 위험해요.


Q : 프랑스도 큰 제국인데 그 프랑스를 잡았다는 도취가 너무 컸나 싶기도 해요.

A : ‘나라고 별수 없다’가 트레바리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에요. 제가 많이 반복하는 말이고요. 전선은 최소화하고 한쪽의 상대하고만 싸우고, 이런 건 너무 기본적인 거잖아요. ‘우리 정도라면 양쪽으로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거야’라는 판단은 크게 보면 역사를 거스르는 의사 결정인 거죠.


흐름 이상의 존엄. <죽음의 수용소에서>


Q : 그런데 어떻게 보면, 다음 추천 도서인 <죽음의 수용소에서>처럼 흐름을 거스르는 데 성공한 소수가 있잖아요.

A : 저는 이게 흐름을 거스른 사람 이야기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인간이 가장 자연스럽게 존엄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다룬 책이니까요. 인간이 존엄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워서 그걸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는 쉽지 않아요. 존재 기반이 확실하지 않은 것에 가치를 뒀을 때는, 그게 무너지면 답이 없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내가 존재하는 한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을 다뤄요. 저는 ‘나라고 별수 없다’의 개인 단위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나 <사랑의 기술>을 읽으면서 깨닫고, <총, 균, 쇠> 등을 읽으면서는 사회나 역사, 공동체 안에서 ‘나라고 별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아요.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그냥 기본기 연습을 많이 하라고 하는 위대한 감독님 같은 책이에요. 잔재주 필요 없이 역사를 거스르지 말라고, 그냥 인간은 이런 곳에서도 존엄할 수 있다고. 그런 식으로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하는 몇 가지 기본적 잠언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Q :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역사를 거슬러서 큰 성공을 하지 않나요? 인터넷이나 리눅스 같은 건?

A : 뭐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와 영화배우 정우성 씨와 침팬지는 다 유전자의 99%를 공유하잖아요. 그걸 보면서도 엄청나게 생각했어요. ‘99%를 거르지 않는 게 매크로다. 윤수영과 정우성을 가르는 0.0001%에 집중해야 한다. 99% 방면은 개선해도 소용이 없다.’


Q : 그럼 바뀌어야 할 1%는 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요? 어디서 남다름을 추구해야 하나요? 어디가 달라져야 할지를 스스로 찾는 게 각자의 숙제일 수도 있겠지만요.

A : 요즘 같은 워라밸 시대에서 워크 라이프 인테그레이션을 주장하는 소수의 사람이 1%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애초에 워크와 라이프가 같은 급으로 놓인다는 것 자체가 신기해요. 워크(일)는 라이프(삶) 안에 들어간 집합 아닌가요? 일은 삶의 일부인데. 워크 라이프 밸런스라는 말은 일을 삶에서 빼내는 거거든요. 살아 있지 않다는 걸까요? 일할 때는?


변방에서. <제국의 탄생>


Q : 마지막으로 <제국의 탄생>을 이야기할 시간입니다. 이 책에서는 변방성의 중요성을 생각했다고 했어요.

A : 이 책에 나오는 역사를 주름잡은 제국에는 패턴이 있어요. 다 그전 제국의 변방에서 시작했어요. 일정한 유산을 가진 세력이 적당한 자극을 만나서 새로운 세력이 돼요.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지는 환경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세력을 만들어요. 거기서부터 커지면 이 큰 조직은 더는 신선한 충격을 받을 일이 없어요. 그렇게 제국의 수도에서 머무르다가 식다가 멸망해요. 그렇게 또 무너지는 제국의 변방에서 새롭게 그 제국의 유산과 그 주변의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자란 세력이 있고. 그렇다는 이야기에요.


Q : 그걸 읽으면서는 무엇을 느낀 거예요?

A : 크려면 대단한 곳에 붙어 있어야 하고, 아주 완벽히 커지려면 약간은 동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걸요. 요즘의 시점으로 보면 '테크'라는 큰 필드 근처에 있지만 '테크'는 아니어야 하는 거죠. 테크는 이미 큰 영역이니까요. 트레바리는 IT 산업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문법을 가지고 완전히 아날로그 산업에 들어간 거예요. 제게는 그게 제국의 변방이에요. 제게는 어느 정도 덩치가 생길 때까지 큰 세력이 관심 없어 하는 곳에서 성장하는 게 중요해요. 저는 트레바리가 외국 자본이나 기술 자본이 관심을 가지기에는 너무 별것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질 때쯤은 방어할 만한 체력이 생길 거라 생각했고요. 너무 빨리 주목을 받으면 토벌당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유명하지 않은 게 좋아요. 이미 큰 놈들이 봐도 나를 못 밟을 정도로 힘을 기르기 전까지는요. 오히려 내가 뭔가 잘하고 있다 싶으면 악착같이 다음 동력을 찾아야 해요. 그걸 병행하지 않으면 이미 DNA에 혁신, 성장, 생존 같은 단어가 제거될 거에요. 그다음에는 답이 없고요.


마치며-커지고 싶었다


Q : 20대 초반에 책을 읽을 때부터 뭔가 ‘커진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던 건가요?

A : 맞아요. 어릴 때부터 여러 이유로 에고가 커졌는데 솔직히 객관적으로 나를 보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도 있었고, 그로 인해 성격이 왜곡된 적도 있었어요. 막연하게 인생을 멋있게 살고 싶다는 욕심이 컸어요.


Q : <크로우즈>의 '보우야' 처럼요?

A : '보우야' 와는 아주 다르지 않을까요? '보우야'는 자유로운 늑대처럼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잖아요. 제도권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죠. 언제나 <크로우즈>에서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는 불도그였어요.


Q : 알겠습니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추천 도서도 다 언급했네요. 종교로 인간을 본다는 것, 대책 없는 낭만과 마초적 야망. 공동체와 사회적 자본, 주체적인 자세, 과학과 과학적 사고, 사회에 유의미한 기여, 적극적이고 메타적인 생각, 변방성의 중요성,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 이야기한 것 안에 이 요소들이 다 들어있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어울리는 질문을 해 볼게요. <슬램덩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누구세요?

A : '윤대협'이요. 상황을 운에 맡기지 않는 것 같아서요. '윤대협'은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편향이 없고, 이성적이고. 그래서 '신현철'이나 '이명현' 같은 캐릭터도 좋았어요. 무모한 사람보다는, 내가 무슨 상태인지 알고, 자기 스스로를 알고, 그렇게 뭔가를 알고 하는 사람이 좋아요.


Q : 저는 정대만이에요. 저는 무모한 사람, 실수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진짜 교훈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서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그런 걸 원하는 사람은 없죠. 하지만 힘겹게 큰 상실이나 실패를 극복하고 나면 정말 뭔가 다른 게 돼요. 그 사실을 몸으로 새긴 사람은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A : '스티브-잡스'와 '손정의'가 둘 다 큰 실패를 했거든요. 사실 우리가 아는 잡스는 '매킨토시' 만든 잡스가 아니라 '아이폰'을 만든 잡스죠. 맥을 만들던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난 뒤 픽사에서 훈련을 하고 돌아온 잡스니까요.


본 저작물은 트레바리 윤수영 대표와 박찬용 에디터의 대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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