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내리던 눈이 마치 동화 속 크리스마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사람들은 이 눈이 117년 만에 찾아온 습설이라 말하는데, 이렇게 촉촉하고 아름다운 눈은 처음 본다. 거리는 새하얗게 변했고, 온 세상이 부드러운 솜사탕 위에 반짝이는 보석들로 뒤덮인 듯 빛난다.
어린 시절 작은오빠는 창고에서 비닐 비료푸대를 찾아 꺼내왔다. 우리는 각자 푸대를 하나씩 들고 집 앞 산으로 올라갔다. 눈 덮인 산은 마치 겨울왕국처럼 신비롭고 황홀했다. 이미 동네 아이들은 모여 눈썰매를 즐기고 있었다. 산 곳곳에는 누구네 묘소인지 알 수 없는 작은 봉분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곳이 오늘의 놀이 공간이 되었다.
지금은 눈썰매장이 상업시설로 꾸며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썰매에 손잡이가 있어 손잡이를 잡고 탄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썰매가 없어 비료푸대나 미끄러운 판지를 가져다 썰매를 탔다. 지금 아이들에게 예전 놀던 도구들을 얘기하면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시절 비료푸대는 지금의 플라스틱 썰매보다 더 강한 속력을 냈다.
동네 명렬이는 뽐내려고 묘소 맨 위에서 비료푸대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왔다. 눈썰매는 묘소 두 개를 훌쩍 넘어 아래 언덕까지 달려갔다. 빠르고 아찔한 속도에 모두가 숨을 죽이며 바라보는데, 명렬이는 두려움도 잊은 채 신난 함성을 질렀다.
작은오빠도 명렬이를 따라 묘소 위로 올라가 비료푸대를 탄다. 오빠는 시작부터 힘차게 밀어내더니 비료푸대와 함께 쏜살같이 내려갔다. 나와 여동생은 그저 무서운 마음에 두 번째 묘소 옆 언덕에서 소심하게 타기 시작했다. 속도는 느렸지만,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점점 더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그 와중에 옆 마을 성원이가 등장했다. 그는 키도 크고 덩치도 큰 데다 비료푸대 안에 가을 추수 때 쓰던 볏짚을 넣어 더욱 속도를 내기 좋게 준비해 왔다. 성원이는 작은오빠보다 더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더니,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묘소 두 개를 순식간에 넘어 아래 논까지 미끄러져 내려왔다. 아이들은 그의 대담한 질주에 환호하며 모여들었다.
작은오빠는 성원이가 가진 볏짚이 탐이 났는지 그와 한참 대화를 나누더니 볏짚을 조금 얻어왔다. 오빠는 한껏 신이 나서 성원이가 출발했던 언덕으로 올라가더니, “하나, 둘, 셋!”을 외치며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시작부터 발에 힘을 주어 가속을 붙이더니 첫 묘소를 가뿐히 넘고 두 번째 묘소에서 더욱 빠르게 질주했다. 그러나, 그는 눈썰매를 조정하지 않은 채 그대로 달리다가 결국 아래 논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오빠는 얼굴을 땅에 박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흩어져 놀던 아이들은 모두 놀라 그를 둘러쌌다. 다행히 오빠는 정신을 차렸지만, 왼팔이 부러져 온몸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겁고 조용했다. 엄마는 오빠의 부러진 팔을 보고 화를 내며, “대체 뭘 하다가 이렇게 됐니? 주말이라 병원도 닫았을 텐데!” 화를 내시면서 기름으로 붓질한 얇은 김 한 장에 소금을 계속 뿌린다.
그날 이후 오빠는 한 달 넘게 깁스하고 집에만 머물렀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오빠는 말없이 창가에 앉아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밖을 바라보기만 한다.
올해의 첫눈은 오래도록 많이 온다. 눈오는 겨울은 등산이 최고의 운동인데 작년에 눈 오는 날 청계산에서 아이젠 없이 등산하다가 손목 골절로 1년을 고생했다. 올 연말 철심 뽑는 수술을 또 해야 한다. 겨울 야외 스포츠는 같은 운동이라도 춥고, 얼고, 눈오고, 미끄럽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눈오는 오늘 정형외과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일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