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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당 써니 Nov 30. 2024

아래 사진을 보고 상황극을 써본다.

“이제 진짜 자유다! 성철아, 우리 부모님이랑 저녁 먹고 8시에 나눔 PC방에서 다같이 모이기로 했거든. 수능 끝났으니까 밤새고 놀아 보자!”


수능 시험이 끝나자마자 나는 친구들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았다. 대학에 크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대한민국 고3이라면 당연히 수능을 봐야 한다는 압박감에 임무처럼 시험을 치렀다.     


아버지는 바쁘셔서 엄마와 단둘이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준우야, 오늘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아빠한테 허락받았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도 알지? 아빠가 얼마나 쫀쫀한지. 오늘은 요리도 된다니까 먹고 싶은 거 마음껏 시켜!”

엄마의 말에 잠시 설렜지만, 메뉴를 고르다 보니 비싼 요리는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탕수육과 늘 먹던 짬뽕을 시켰다.     

“준우, 시험은 잘 봤지? 뭐 어차피 서울은 힘들겠지만, 사년제는 가야 하지 않겠어?”

엄마의 잔소리는 수능이 끝났는데도 멈추질 않았다. 나는 뜨거운 짬뽕 국물을 마시듯 급히 먹어 치우며 말을 돌렸다.

“엄마, 나 오늘은 밤새 놀아도 되는 거지?”

음식을 10분도 안 지나 다 먹어 치웠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식당 문을 열고 나왔다.    

 

8시까지는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았다. 엄마는 집 아래 1층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신다. 장사보다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수다 떠는 곳이라, 엄마는 늘 자식들 정보를 잔뜩 가져오지만, 내가 기대에 못 미쳐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PC방에 들어갔더니 성철이와 몇 명이 벌써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자 우리는 PC방 뒷자리를 다 차지하고 스트레스를 풀 듯 게임에 몰두했다. 수능이 끝난 날이라 그런지 주인 아저씨도 우리가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해도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으셨다.     

“얘들아, 밤새 게임만 하면 재미없잖아. 영화나 볼까?”

성철이가 다른 제안을 하자 우리는 모두 일어나 삼성동 메가박스로 향했다. 비가 살짝 내렸지만 춥지 않아 걷기 좋은 밤이었다. 길을 걷는 중에도 여기저기 수능을 마친 고3들이 모여 깔깔대며 신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영화관에 도착했지만 보고 싶은 영화는 이미 매진이었다.

“야, 성호가 어른처럼 나이 들어 보이잖아. 편의점에서 술 사서 공원 가서 마실까?”

친구들은 성호에게 박수를 치며 동의했다. “우리 아직 성인이 아니잖아. 술 마시면 안되는거야” 명렬이는 망설이며 말했다. 나는 명렬이를 뒤로 데리고 가 “우리 방해하지 말고 너는 일찍 집으로 들어가라. 애들이 싫어할 수 있으니 아무 말 하지 말고 가. 내가 애들한테는 잘 말해 놓을 테니 걱정 말고. 너희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고, 바로 우리 엄마 귀에 들어가면 나 혼나는 거 알지? 난 널 믿는다. 잘 들어가고” 명렬이를 보내고 아이들 쪽으로 뛰어왔다. 아이들은 명렬이 간 것에 별 말들이 없다. 명렬이는 늘 옳은 말만 하는 아이다. 명렬이를 빼고 우리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성호는 당당히 소주와 맥주를 바구니에 담는다. 너무 당당했던지 신기하게도 편의점 직원은 별다른 말 없이 물건을 건넸다.     

공원에 도착해 소주와 맥주를 섞으며 성철이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도 이렇게 드시더라고. 우리도 한 번 먹어보자.”

잔을 채우자마자 우리는 원샷을 했다. 어지러웠지만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작은 빗방울이 흩날리는 공원에서 우리는 밤새 자유를 만끽하며 깔깔댔다.     

성철이가 갑자기 가위바위보해서 지는 사람에게 벌칙을 주자고 한다. 다들 술에 취해 눈이 풀린 상태로 일어났다. 우리는 큰 소리로 “가위바위보”를 외쳤다. 첫판에 결정이 났다. 내가 졌다. 나만 가위를 내고 나머지는 주먹을 낸 것이다. “남자가 가위를 내다니, 째째한 놈” 성철이는 자기가 벌칙을 정해도 되겠냐고 한다. 아이들은 다들 찬성했고 성철이는 벌칙을 얘기했다. 성철이의 벌칙은 충격적이었다.

“내일 아침에 너희 엄마 카페 지붕에 올라가서 노트북 들고 사진 찍어 단톡방에 보내기다. 우리 엄마들이랑 맨날 그 카페에서 자식들 얘기하며 우리를 비교했잖아. 그거에 대한 복수야! 사람들 지나가던 말던, 넌 그 위 올라가서 앉아 있는 거야”

모두가 만장일치로 동의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벌칙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도 한참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며 의미 없는 수다와 웃음으로 함께했다.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은 이미 주무시고 계셨다. 벌칙을 어떻게 수행할지 고민하며 잠들었고,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잔소리가 없는 날에 늦잠을 자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눈이 저절로 떠졌다.     

벌칙을 위해 엄마 카페로 향했지만, 지붕으로 올라갈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여동생 선희 방 창문으로 나가야 지붕에 앉을 수가 있다. 여동생은 까칠하다. 어쩔 수 없이 동생 방문을 두드렸다. “선희야 오빠가 할말이 있는데 문 좀 잠깐 열어볼래?” 아무 말도 없다. 한 번 더 두드렸다. “왜 곤히 자는 나를 깨우는 거야?” 선희의 까칠은 말투에 어제 먹은 술이 머리를 아프게 한다. 하지만 부탁해야 하기에 “선희야 잠깐 오빠 할 얘기 있는데 들어주면 다음 주에 오빠 용돈 중에 3만원 너한테 줄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희 방문이 열렸다. “뭔데? 얘기 해봐” 오빠가 너 창문으로 해서 엄마 카페 지붕에 올라가 있을 건데 1층으로 내려가서 사진 한방만 찍어주라“ 선희는 이유를 묻지도 않고 바로 잠바를 걸치고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내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창문으로 해서 지방 위에 앉았다. ”하나둘셋하고 딱 한 번만 찍는다. 

하나둘셋!“ 정말 1방만 찍고 동생은 올라왔다. 별것도 아닌 것에, 내 3만원을 줄 생각하니 어제 ‘가위’를 낸 내 손이 원망스러웠다.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자, 단톡방이 웃음바다가 됐다. ”너 집에서 쫒겨난 아이 같다“ ”노트북으로 야동 보니? 머리는 왜 뒤집어 쓴거야?.“ 친구들과 의미 없는 내용의 카톡을 주고받다가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꿈에서 나는 대학생이 되어 머리가 길고 수줍게 미소 짓는 여자 친구와 손잡고 캠퍼스를 거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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