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이틀 동안 내렸다. 무거운 습설에 나무들은 버티지 못하고 여기저기 쓰러졌다. 검은 하늘엔 반짝이는 별 하나와 희미한 달빛이 걸려 있다. 이른 아침, 나는 서울숲에서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쓰러진 나무들로 막힌 길이 많아 결국 한강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얼굴을 스치며 정신을 맑게 한다. 차갑다기보단 시원하고 생기 있는 느낌이다. 작년 2월, 새벽 5시 파리의 센강을 달리며 느꼈던 그 차가움과 벅찬 행복감이 떠오른다.
센강보다는 두 배나 넓은 한강이 눈앞에 펼쳐져 있고, 에펠탑 대신 잠실타워가 우뚝 서 있다. 한강의 겨울 풍경도 센강 못지않게 아름답다. 그러나 센강 위로 그려지던 빛의 풍경은 인상파 클로드 모네의 <세느강의 아르자외유> 작품에서도 담아내지 못할 만큼 경이로웠다.
15km를 달리고 돌아와 늦은 아침을 준비했다. 신선한 채소에 발사믹 식초와 들기름을 뿌리고, 통밀빵을 살짝 데워 꿀을 얹었다. 주말 아침은 항상 이렇게 가볍고 건강하게 먹으려 애쓴다. 이런 시간이면 어김없이 울리던 엄마의 전화가 떠오른다.
“써니야, 밥은 먹고 다니니? 또 술 마시고 굶고 있지 말고, 제발 몸 좀 챙겨.”
엄마는 항상 “술 또 마셨니?”와 “밥은 먹었니?” 두 가지를 물으셨다. 그 목소리가 이젠 들리지 않는다. 엄마가 떠난 후, 미안함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술을 덜 마시게 되었고, 운동을 시작하며 챙기지 않던 아침도 먹게 되었다.
업무로 전화할 때 습관처럼 “아침은 드셨어요?”나 “점심은 하셨어요?”로 대화를 시작한다. 밥을 묻는 인사말은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히고 친근함을 전한다. 의도적으로 영업을 잘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밥 이야기는 어느새 내 대화의 시작이 되었다.
“밥 먹었니?”라는 인사말은 단순한 질문을 넘어,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담고 있다. 농경 사회였던 우리에게 밥은 생존이자 삶의 중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밥 먹었니?”는 상대의 건강과 안녕을 염려하는 따뜻한 관심의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외국에서는 “How are you?”처럼 기분이나 상태를 묻는 추상적인 질문이 일반적이지만, 우리의 인사말은 훨씬 구체적이고 생활에 밀접하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밥 먹었니?”는 이제 한국 문화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아 외국인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간다.
추운 겨울, 모두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으며 건강하길 바란다. 세상이 모두 안부를 묻고, 서로를 챙기는 온기로 가득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