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일에 치여 살면서 영화나 공연을 본 기억이 희미하다. 한두 번 아들의 학교 프로그램 중 박물관 투어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근처 카페에서 졸기 일쑤였다. 아이는 혼자 투어를 다녔고, 나는 그저 ‘다녀왔다’라는 사실에 만족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사춘기가 찾아왔다. 주변에서는 아이의 정서를 위해 미술관이나 음악 연주회 같은 문화 활동을 추천했다. 하지만 나는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우리 부부 모두 그런 분야에 관심이 없었으니, 당연히 아이도 크게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시간을 내어 미술관을 찾았지만, 보통 사람들이 1~2시간 동안 감상할 작품들을 우리는 10분 만에 휙 둘러보고 나오기 일쑤였다. 우리의 문화 체험은 늘 그렇게 대충 끝나곤 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회사에서 클래식 음악회 VIP 티켓을 받았다. 고객에게 선물로 줄까? 고민했지만, 나는 예술의 전당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처음 가보는 곳인 만큼 옷차림에도 신경을 썼다. 가장 비싼 가방을 들고, 예쁘게 꾸민다고 나름 애썼다. 그런데 아들이 나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엄마, 너무 안 어울려요. 그냥 회사 갈 때 입는 정장 입고 가세요.”
“음악회 같은 데는 우아하게 입는 거야. 몰라서 그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어색함의 극치였다. 그래도 나름 자신감을 가지려 했지만, 내 옷을 본 남편의 어색한 표정! 신경 쓰였다. 결국 나는 조금 주저한 마음으로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니 바로 앞에서 두 번째 줄. 가까운 자리였지만 설렘보다는 낯설음이 앞섰다. 아들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관심 없어 보였고, 나 역시 그다지 기대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잔잔한 클래식 선율이 마음을 어루만졌다. 익숙한 곡이 들릴 때면 나도 클래식을 아는 척하며 살짝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감동도 잠시, 피로가 몰려왔다.
“엄마, 일어나요!”
아들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날 깨웠다. 한 시간 넘게 잠들어버린 것이다.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보니, 옆자리에 앉은 낯선 아빠도 졸다 깨는 모습이었다. 아이는 킥킥거리며 말했다.
“엄마, 우리 가족인 줄 알 거 같아요. 옆에 아저씨랑 그 아들까지 다 잤거든요.”
웃음이 터졌지만 동시에 미안함이 밀려왔다. 공연장에서 예의 없는 관객이 된 기분이었다. 티켓을 고객에게 줄걸 그랬나 싶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후, 아들과 나눈 짧은 대화는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했다.
“엄마, 나도 잤어요. 그래도 나쁘진 않았어요. 클래식 음악도 그냥 잠들기 좋은 거 같아요.”
언제부턴가 클래식 음악은 내 삶에 스며 들었다. 독서할 때, 남편이 사준 스피커에 연결해 비발디, 모차르트, 쇼팽을 듣는다. 좋은 스피커일수록 소리의 깊음에 더 큰 전율을 느낀다. 잔잔한 선율은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위로해 준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 같다. 젊을 때 문화생활에 무관심했던 나지만, 50이 넘어 새롭게 찾은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함으로 다가온다. 그날 공연장에서의 작은 해프닝조차 이제는 미소 지으며 추억할 수 있다. 삶은 순간을 즐기고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얻는 감동은 우리의 영혼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삶은 아름다운 공연이다. 때로는 연습 없이, 때로는 졸면서도 우리는 무대 위에서 빛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