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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혜성님 Dec 11. 2023

에바에게서 온 옷 보따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나의 이야기

나는 에바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매년 두세 번씩 에바는 나에게 커다란 쇼핑백에 가득 담긴 옷 보따리를 보내온다. 안젤린 할머니에게서 전해 들은 말에 의하면 에바는 그녀의 엄마인 파트리샤에게서 아파트를 한 채 받았다고 한다. 은행에서 일하는 에바는 집이 있으니, 돈을 벌어서 마땅히 쓸데가 없기 때문에 번 돈을 모두 옷을 사는데 써 버린다고 했다. 그렇게 쌓인 옷들을 마다 계절별로 정리해서 나에게 보내는 거라고 했다. 에바의 엄마인 파트리샤는 안젤린 할머니의 조카이다. 파트리샤는 프랑스인 치고 드물게 부지런한 여자였다. 안젤린 할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파트리샤는 개미처럼 평생을 일만 했다고 했다. 파트리샤는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히는 고흐드라는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녀는 고흐드 인근에 인접한 작은 시골마을 약국에서 일했다. 약국에서 퇴근하면 고흐드 인근 지역의 시골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봄에는 체리를 따고, 여름에는 복숭아를 따고, 가을에는 와이너리에서 포도를 수확했다. 겨울에는 고흐드 인근 압드라는 작은 도시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트리에 고정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구스틀레라는 작은 마을에 드넓은 정원과 수영장이 있는 남프랑스풍 아름다운 전원주택을 샀다. 주택의 융자금을 다 갚자 파트리샤는 아파트를 두 채 구입해서 두 딸들에게 한 채씩 나눠 주었다.


파트리샤는 안젤린 할머니에게 집도 샀고, 딸들에게 아파트도 한 채씩 사 주었으니 이제 본인도 돈을 쓰며 즐겁게 살 거라고 했다고 한다. 파트리샤에게는 꿈이 있었는데 뉴욕에서 여름 바캉스를 보내는 것이었다. 평생을 돈을 벌어 모으기만 했지 써 본 적이 없는 파트리샤는 뉴욕행 항공권을 구매한 뒤 여름 바캉스를 뉴욕에서 보낼 생각을 하며 들뜬 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내장 깊은 곳에서 암이 발견됐다. 암 진단을 받은 뒤 4개월도 못 살고 죽었다고 했다. 안젤리 할머니에게는 크리스틴이라는 무남독녀 외동딸이 있는데, 크리스틴은 파트리샤와 사촌지간이었다. 사는 곳도 비슷했고 나이도 같았으며 같은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크리스틴에게 파트리샤의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크리스틴은 파트리샤의 장례를 마치고 며칠 뒤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고 여름 바캉스를 뉴욕에서 보내며 파트리샤의 꿈을 대신 이루어줬다고 했다.


파트리샤는 죽기 몇 달 전 큰 딸 에바에게 뉴욕 출신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고급 진 비즈 장식이 촘촘히 달린 아이보리색 이브닝드레스를 선물했다. 그리고 며칠 후 건강검진에서 꽤 진행된 큰 암덩어리가 발견됐다. 미처 손쓸 새도 없이 그렇게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에바는 엄마인 파트리샤에게 선물 받은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참석했다가 그만 실수로 와인을 엎질렀다. 엄마의 마지막 선물인 아름다운 드레스에 붉은색 와인 물이 들었고, 아이보리색과 섞이면서 검은빛을 내뿜었다. 에바가 나에게 보내온 옷 보따리에는 그 이브닝드레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안젤리 할머니가 나에게 에바에게서 넘겨받은 옷 보따리를 전해주며 이브닝드레스에 담긴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안젤리 할머니는 조카의 마지막 유품이나 다름없는 이브닝드레스를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기는 마음에 걸리니 버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내가 입기 싫으면 적십자에 기부를 해 달라고 했다.


에바는 번 돈 대부분을 쇼핑하는데 지출하는 여성이다. 그녀가 입던 옷들을 보면 세련들이 옷들이 많고 상점에 걸려 있던 옷을 세탁도 안 하고 몇 번 입고는 오염이 생기면 다시는 입지 않는 것 같다. 그녀가 나에게 보내온 옷들 대부분은 변색이 되거나, 오염이 됐을 뿐 거의 새 옷이나 다름없는 옷 들이었다. 내가 에바의 옷을 받아 입는 이유는 그녀의 탁월한 감각 때문이다. 나에게 돈 보따리를 쥐여주며 나가서 마음껏 옷을 사 입으라고 해도 나는 그녀처럼 세련되고 감각적인 옷을 고를 수 없기 때문이다. 에바가 보내주는 옷 보따리 안에는 가끔 액세서리도 따라오는데 작은 브로치 하나도 디테일이 고급 지고 정교했다. 어디서 이런 세련된 물건들을 골라 오는지 모르겠다. 남프랑스 작은 도시에 사는 에바의 감각적인 패션 취향을 보면서 나는 프랑스인들은 핏속에 예술의 유전자가 흐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다.


나의 인생의 절반쯤은 지독한 가난이 혼백처럼 내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내가 가난을 벗어던지기 위해 할 수 있었던 건 근검절약밖에 없었다. 그냥 개미처럼 일해서 벌기만 하고, 안 쓰고 아꼈다. 사실 감각이라는 것은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써보고 누려봐야 터득할 수 있는 능력인 것 같다. 차피 다들 너무 많이 쌓아 놓고 살아서 처리가 곤란한 나라에서 나라도 안 사고 안 버리면 쓰레기도 덜 만들고  내 통장에 돈도 절약되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합리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은 한다.  에바의 옷 보따리 안에는 그녀의 감각이 반영된 세련됨이 가득 들어 있었다. 에바는 나보다는 큰 키 168 정도이지만, 체형이 50킬로도 안 되는 여성이라, 나와 옷 사이즈가 비슷하다. 나도 임신출산을 겪으며 잠깐의 체형변화만 겪었을 뿐, 기본적인 체형은 처녀 때 그대로이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이번에 받은 옷 보따리 안에 들어 있는 아이보리색 드레스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나는 드레스를 제외한 나머지 옷들을 세탁기에 넣어 손세탁 모드로 돌려놓고, 파트리샤가 에바에게 남겼다는 그 드레스를 우리 집에서 가장 크고 깨끗한 옷걸이에 걸었다. 그리고 빨래건조대에 걸어 놓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원피스의 양쪽 소매와 가슴 주변에 검게 변한 와인의 흔적이 선명하게 얼룩을 남겼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옷을 원상 복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와인 얼룩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수산화나트륨과 식초 그리고 샴푸를 이용해서 얼룩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큰 대야에 식초와 수산화나트륨을 풀고 옆에 울 샴푸를 가져다 놓고 원피스를 세탁할 준비를 끝냈다. 샤워기를 들고 따듯한 물의 적정 온도를 맞춰서 드레스의 오염된 부분에 대기만 했는데 검붉은 와인들이 줄줄 씻겨 나갔다. 맨 물에 그냥 샤워기의 수압만으로 드레스는 매장에 걸려 있던 새 옷처럼 깨끗해졌다.


나는 에바에게 엄마의 추억이 담긴 드레스를 돌려줄 생각에 들떠 있었다. 깨끗한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어 햇볕에 말렸다. 그리고 다 건조된 드레스의 상태를 확인하고 크리스틴에게 전화를 했다.


'크리스틴! 내가 에바에게서 받은 드레스를 세탁해 봤는데 깨끗해졌어. 얼룩이 하나도 없다니까. 매장에서 금방 집어 온 것처럼 멀쩡해졌어. 그냥 미지근한 물에 세탁하니 얼룩이 다 빠지던데..  나는 이 드레스를 에바에게 돌려주고 싶어. 에바에게 꼭 연락해 줘. 돌려주고 싶다고....'


에바는 괜찮다고 그냥 나더러 입으라고 했다고 한다.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부모형제를 일찍 떠나와서 그런가 엄마와는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유대가 있다. 그래서 이 드레스는 에바에게 엄마에게서 받은 드레스이니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나는 북한에서 어린 나이에 홀로 나왔다. 그러다 보니 가족과 제대로 된 이별을 못 했다. 북에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할 때마다 끝맺음을 짓지 못한 인연에 대한 아쉬움이 가슴에 맺혀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가족들은 끈끈한 우애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가족이란 긴 인생길을 함께 하며 투닥거리기도 하고 오해도 쌓이고 그걸 풀지 못하고 아쉬움만 남긴 채 인연을 매듭짓는 일도 더러 있었다. 에바와 파트리샤에 대해 내 기준으로 만 생각했나 그런 생각도 든다.


파트리샤의 남편은 파트리샤가 그와 함께 살며 평생을 노력해서 장만한 집에서 다섯 살 먹은 아이가 딸린 젊은 여성과 동거로 함께 산다. 북한이나, 남한이나, 프랑스나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건 어설프기만 한 것 같다. 잘 산다는 게 뭘까? 어떻게 사는 게 잘 살까?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밤이다.

예전에 선거캠프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돈만 필요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신념이고 자존심이고 그런 건 없었다. 생존을 다투는 사람에게 신념을 묻는다는 건 사치가 아닐까 싶다. 당시 선거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 지역 동네의 아주머니들이 일곱 명 정도와 모여 매일 수다를 떨며 보낸 적이 있다.


나이가 어리고 북한에서 왔고 가족들은 다 이북에 남아 있다고 하니, 어린 나이에 구구절절한 사연을 품은 듯한 나에게 아주머니들은 본인들의 살아온 인생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남편이 바람난 이야기 자식들이 속 태운 이야기며 아주모니들이 말문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낼 줄을 몰랐다. 한 달 내내 이야기를 풀어내도 할 이야기들이 남을 만큼 많은 사연들을 품고 있었다. '한'의 민족답게 남북한은 어찌나 닮은 점이 많은지. 아줌마들이 살아온 삶에는 한숨과, 후회 그리고 고난과 견뎌냄만이 인생의 굽이굽이 서리서리 녹아 있었다. 하지만 한 아주머니만 아무 말 안 하고 편안한 얼굴로 다른 아주머니들의 얘기만 듣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저는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해요. 특히 어르신들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해요. 아주머니도 할 얘기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아주머니 이야기도 듣고 싶네요.'


아주머니는 편안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내 쪼대로 살아왔어.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살았거든. 후회가 없어.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별로 없네. 난 지금 죽어도 행복하게 죽을 수 있어.'


그때 깨달음을 얻긴 했었다. 그냥 원하는 걸 하면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사람이 잘 사는 거 아닐까??


파트리샤는 개미처럼 일해서 알뜰하게 모아 딸들에게 아파트를 남기고 죽었다. 아파트를 받은 딸들은 매달 매달 옷들 쌓아 놓으며 먼저 간 엄마에게 고마워했을까? 아니면 꿈에도 그리던 뉴욕 땅도 밟아 보지 못하고 비명횡사한 엄마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전자일 수도 있고, 후자일 수도 있겠지.



에바의 드레스는 내 장롱 깊은 곳에서 오늘도 우리 집에서 밤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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