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심한 땅에서 20대여자가 비행기를 몬다고?
나는 20대 여성이고, 지금 미국에서 비행기를 탄다.
처음 이 문장을 말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놀라거나, 믿지 않거나, “와 멋지다” 하고 끝났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무도 몰랐던 긴 이야기들이 있다.
가끔 하늘 위에서 고요한 순간이 온다.
계기판은 멀쩡하고, 엔진은 부드럽게 돌아가고, 교신도 평온하다. 그런데 나만 이상하게 두렵다.
“내가 진짜 이걸 하고 있는 게 맞나?”
“이 길의 끝엔 뭐가 있을까?”
“혹시, 나는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미국에 온 건 24살이었다.
한국에서의 삶은, 꽤 평범했다. 아니, 평범하게 억눌린 삶이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공부를 잘해야 했고, ‘여자애가 너무 튀면 안 된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
나는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고, 눈에 띄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서 썩고 있었다.
그러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본 날, 깨달았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직업적인 목표라기보다는
나를 키워주는 방향으로 인생을 조종하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였다.
비행학교에 들어간 건, 미국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나는 여자였고, 영어도 완벽하지 않았고, 타지에서 혼자였다.
처음 비행기 조종간을 잡았을 땐 손이 덜덜 떨렸고, 교관은 내가 공중에서 울 거라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무서워서 울지 않았고,
감격해서 울었다.
“지금, 내가 하늘을 날고 있구나.
아무도 모르는 이 고도에서, 나는 나만의 세계를 만든 거구나.”
하지만 낭만은 잠깐이었다.
비행 시험은 혹독했고, 비행 전 점검에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교관들은 무뚝뚝했고, 실수하면 “집에 가라”고 했다.
나보다 열정이 많은 남자들은 많았고, 나는 “그저 특별해지고 싶었던 어린 한국 여자”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중간에 포기한 적도 있다.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채 기숙사 복도로 나왔는데,
미국인 룸메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너, 여기서 뭘 찾고 싶었던 거야?”
그 질문을 지금도 기억한다.
내가 찾고 싶었던 건 꿈도 아니고, 경력도 아니고,
그저, “내가 나를 믿어도 된다는 증거” 하나였다.
그리고 그 증거를 나는 하늘에서 찾기 시작했다.
이 글은 앞으로 내가 하늘에서 배운 것들,
그 안에서 울고 웃고 흔들린 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조금이라도 불안하거나 흔들리고 있다면,
이 낯선 비행의 기록이 작은 나침반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