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에 관하여
무엇을 꾸준히 하고 있나 생각해 보았다. 내 방을 어지럽히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지럽히고 정리하는 반복 속에서 살고 있다.
6시간을 자지 못하는 날엔 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하루종일 함께 있는데, 몇 달째 잘 못 자고 있다. 불면증에는 잠들기가 힘든 유형과 잠들고 나서 깨는 유형이 있다는데, 내 경우는 주로 후자다. 중간에 깨면 한두 시간쯤 말똥 하다 다시 잠드는 것 같다. 익숙해졌는지 피곤한지 모르겠다가도, 지난주에는 내내 몸이 무거웠다. 많이 먹기도 했다. 좋아하는 바이올린 레슨을 땡땡이치고 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자, 이번 주말엔 기필코 푹 자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토요일인 오늘 안대를 끼고 꾸역꾸역 낮잠을 청했다.
방안에 들어온 볕이 좋아서인지 깊이 잠들지 못하고 계속 꿈을 꿨다. 꿈에서는 나를 찾는 사람들이 없었고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 몰라 조용한 휴대폰만 바라봤다. 살이 도로 쪄 옷장에 입을 수 있는 옷이 없어 공연히 옷장만 헤집었다. 좋아하는 동료들이 꿈을 찾아 이직했고, 남은 나는 회사에서 실수투성이였다. 엄마에게 전화해야 한다고 생각만 하고 걸진 않았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 두려워하는지 투명하게 나타난 악몽들이었다. 괜히 누웠다.
돌아보면 올해는 생각만 하던 많은 것들을 시도해보고 있다. 잘 지내고 있다는 거다. 수면시간 같은 것은 사실 별일도 아니고, 그렇게 적게 자는 것도 아니니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오늘 같은 기분, 이번 주 같은 시간은 어디서 찾아오는 걸까. 주위를 둘러볼 생각도 못 하고 제자리에서 부질없는 생각에만 사로잡힌다. 몸을 일으키고 산책하다 보면 조금은 더 이성적인 상태가 될 테지만, 그전까지는 말도 안 되게 한 가지 생각만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지난주에는 며칠째 야식을 먹었다. 평일 저녁에 모두 일정이 있어, 배부르게 식사를 한 후에 집에 온 건데도 혼자 우걱우걱 음식을 밀어 넣었다. 몇 달째 그런 적이 없었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알아채고 주변을 둘러봤다. 혼자 사는 이의 방은 마음을 대변해 주기 마련이라 역시나 엉망이 되어있었다. 책상 구석에는 며칠째 펼치지 않은 다이어리가, 식탁보에는 제때 지워주지 못한 커피 얼룩과 나흘간 이어진 과식의 흔적이 치워지지 않고 있었다. 화장실 앞에는 던져진 옷가지들, 빨래 건조대에는 개지 않은 마른빨래들. 싱크대에는 1인분씩 소분해 둔 식재료들을 얼마나 먹어버린 건지 몇 주치의 빈 봉투 따위들이 흩어져 있었다. 지저분한 모습을 상세히도 적었다.
나를 돌보는 일은 4개월쯤 무난하게 이어졌는데 특별한 것 없었던 일상에서 이건 좀 갑작스럽다. ‘아니 뭐가 문제인데.’ 하는 원망은 꿈속에서 한 것 같아 일단 방부터 치워본다. 아니 귀찮아, 샤워하고 밖에 나가 걷기로 한다. 걷는 나는 생각한다. 이유를 물어본다. 최근에 특히 좋았던 것들을 떠올려 본다. 성취로 스스로가 뿌듯하고, 상대방이 고맙고, 눈앞의 광경에 감동했던 순간들. 기운이 없어 벤치에 앉는다.
그래서 그게 다 뭐라고. 잘 지내고 있다고 증명하듯이 사는 건 아닌지. 애쓴다 애써.
노을이 졌다. 허무했다가, 슬펐다가, 다시 일어나 걸을 만큼 괜찮아졌다.
원래가 작은 일에도 생각이 많은 데다 되짚어 보면 소소한 일들이 있었으니 좀 지쳤나 보다. 욕심이 지나쳤나 보다. 이러나저러나 지나갈 감정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피하기는 쉽지 않고,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아니라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꾸준히 방을 어지럽힐 수 있는 것도 치우고, 걷고, 뭐라도 적는 시간과 이어져 있는 거니까. 명랑하기로 했으니 그러면 되는 거라고 되뇐다. 의미가 뭐가 있어, 그냥 사는 거지. 집으로 와 빨래를 개고 쓰레기를 치우고 분리수거했다. 이런 글을 적어냈다. 내일은 일요일이지만 일을 한다. 다시 출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