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하여
돈 쓰는 게 가장 쉽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것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 약속을 지키는 것, 그리고 글을 쓰는 것... 가치 있는 건 따로 있고, 그건 소비와는 별개의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최근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니 어쩐지 죄다 무언가를 샀다. 행복은 지갑에서도 나오는 것이었다.
요즘 사는 게 힘들다는 친구가 말했다. 9할은 돈문제라고. 돈이 많으면 지금처럼 시들어 있지 않을 것 같다고. 광주 가서 이만큼 월급 주는 같은 직무의 일자리만 있다면, 내려가서 부모님과 친척들과 북적북적 살고 싶다는 내 친구. 마음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돈이 문제인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실컷 바이올린이고, 크로스핏이고, 운전이고 다 해버리고 싶고, 방 하나는 더 있는 집으로 이사도 하고 싶다. 그러고 나면 정말이지 행복에 가까워질 것 같다. 그래, 뭐만 하면 다 돈이지.
우리는 작은 문제라도 해결해보고자 했다. 작고 소중한 월급, 부진한 연봉협상에 굴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부산에서 열리는 크로스핏 경기 관람권을 13만 원에 구매했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한동안 설레기로 했다. 건강하지만 비싼 샐러드를 2만 원 주고 사 먹었다. 예쁜 카페에 가, 배불러 다 먹지도 못하는 6천 원짜리 크럼블 바라는 디저트를 시켜 음~감탄하며 먹고 SNS에 게시했다. 질 수 없는 나는 바이올린 선생님에게 추천받은 25만 원짜리 연습용 바이올린 대신 50만 원 하는 수제 바이올린을 구매했고, 오래 갈 좋은 취미가 생긴 것이라며 기뻐했다. 우연히 발견한 밀크티 맛집에서밀크티 좋아하는 동료들이 생각나, 포장해 달라며 2만 원을 더 긁었다. 악보가 그려져 있는 쓰지도 않을 연필을 샀다. 글쓰기수업 작가님이 쓰신 '카페에서 들은 말'이란 책을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선물했다. 59피자 대신 도미노피자를 사 공원에서 맥주와 함께 먹었다. 불안증세에는 병원에 가 상담도 받고 약을 탔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그 잡채(자체). 내 글을 보면 엄마는 잔소리하겠지만, 나는 다음 주에 광주에 내려가 엄마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며 함께 웃겠지.
들여다보면 성취, 만족, 식탐, 가족애, 아니면 그저 핑계를 입은 충동구매. 다르게 부를 수 있겠지만 나는 뭉뚱그려 행복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데 저 멀리 구름 위를 떠다니는 말 같으니 우리는 살 수 있는 것으로 이 감정들을 누리기로 했다.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하는 순간, 누군가 쓴 글에 밑줄 긋게 되는 순간, 뭘 써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서 몇 번이나 주제를 바꾸며 썼던 글을 지우다가도 결국은 뭐 하나라도 써내는 이 순간. 우리는 이 소중함을 알아서, 오히려 간편한 행복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쉬운 길로 가자. 아니 쉽다는 것을 알아두자.
행복은 멀리 있지 않군요. 나와 Y는 다음에 또 건강하고 비싼 연남동 그 식당에 가자고 약속했다.
202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