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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서이 Oct 08. 2023

왜 그랬냐면

산책에 관하여



집에서 씨사이드 파크까지는 왕복 3시간쯤 걸린다.

백운산은 1시간 반 정도.

세평숲을 돌다오면  2시간은 훌쩍 지난다.  



  걷기 위해서는 딱히 필요한 게 없다. 걸으려는 마음만 있다면 편한 신발정도? 마음도 걷다 보면 생길 수 있으니 일단 나서면 된다. 좀 걸을까? 하는 말에 그러지 뭐, 하고 발을 디디면 된다. 잘할 것도 못할 것도 없다. 나는 어릴 적부터 걷는 것에는 자신 있었다. 엄마가 나더러 평발이라고 했지만 웬만해서는 힘든지 모르겠다.  


  성인이 되기 전, 밖을 걷는 것은 혼자 있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밤늦게까지 야간자율학습 하는 학교와, 동생과 같이 쓰는 방에서 나와, 오롯이 혼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뭐든지 내 맘대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질문하게 되는 조금 늦은 사춘기 같은 것이 산책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학창 시절엔 주로 밤에 걸었다. 월 6만 원짜리 독서실을 끊어두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벽 1시까지, 2시까지 집 앞 공원을 걸었다. 철도 없고 겁도 없었다.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갔으니 재수해도 손해가 없다, 부모님을 설득했던 19살의 1년 동안은 2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 3개를 연달아 들으며 걷는 것이 일상이었다. 부모님에게는 참 죄송한 일이다. 배철수 아저씨와 스윗소로우, 시경오빠가 들려줬던 노래들이 지금의 음악취향의 기둥쯤 되지 않을까. 이동진님을 통해서는 더 짙은 음악들, 그리고 책과 영화와도 얕게나마 친해지게 되었다. 대부분 혼자였으나 가끔은 친구와 함께하면서, 마음속 비밀을 나누는 경험도 모두 산책이 내게 알려준 것이다. 걸으면서 알게 된 것들이 나를 구성했다.


  밤산책 하며 고요히 나에게 귀 기울일 수 있다면, 낮의 산책에는 얼마나 많은 것을 볼 수 있는가. 하늘과 길, 나무와 건물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 운서에는 특히 많은 강아지들. 어느새 사진첩은 엄마 못지않게 많은 하늘사진, 나무사진, 꽃사진, 거리의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걷다 보면 존재만으로 어여쁘고 경이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발견한다. 뚜벅뚜벅 다리는 다리의 일을, 눈은 눈의 일을, 마음은 마음의 일을 한다. 거리를 바라본다. 자연도 빌딩숲도 나름의 특별함이 있다.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 이곳저곳 참 푸르다. 눈이 부시다. 초록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히 봄 되어 올라오는 여린 초록잎들은 언제까지나 질리지 않고 감격스러울 것이다. 후하- 크게 심호흡하고 나면 그래, 살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온몸이 충전된다. 아무튼 미세먼지만 없으면 좋겠다. 산책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유한함을, 시간을 배운다.  


  걷는 것은 어쩐지 꾹꾹 눌러사는 느낌을 준다. 그런 점에서 글 쓰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호로록 흘러가버리는 시간 앞에서 조급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를 때, 아주 조금은 느리게, 시간이 흐르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그리고 내가 어느 거리에 어떤 감정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또 내 주변에는 누가 있는지 자각하게 해 준다. 그러니 산책은 하고 싶은 것이 되기도, 가끔은 해야 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멀어진, 뭐든지 함께하고 싶어 했던 사랑스러웠던 친구가 물었다. 왜 가끔 혼자 걸으려 하는지, 같이 가지 않고. 그땐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했다. 나에게 산책은 이런 의미였다. 나를 붙잡고 있는 일. 너에게 답하지 못했던 많은 질문에 대해 '그거였나 보다', 늦게나마 대답하게 될 수 있는 일.


2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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