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바로 계획쟁이였던 내가 즉흥쟁이가 된 것이다. 엠비티아이 검사를 할 때마다 극강의 J력을 보이던 내가 거기서 지내는 동안에는 계획에 없었어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아마 교환학생 생활을 다시 못한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 듯 싶다.
친구와 캠퍼스를 산책하다가 현지에서 알게 된 유학생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선배도 같이 합류해서 산책을 하다가 곧 다가올 가을방학 때 뭘 할 것인지 얘기가 나왔고 엄청난 농구덕후였던 선배는 농구 보러 시카고를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와 내 친구는 시카고에 꽂히게 되었고 일행 몇 명을 더 모아서 시카고를 떠나기로 했다. 순간에 충실해진 결과, 산책하다 시카고로 떠나게 되었다.
목요일부터 아주 짧은 가을방학이 시작되어서 우리는 오전에 수업을 다 듣고 수요일 오후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비행기 타러 공항 가는 길은 늘 설레는 것 같다. 하지만 설렘과는 별개로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동안 공항에서 늘 작은 사건들이 터졌다. 덴버에서는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면 이번에는 비행기가 연착된 것이다. 떠날 때부터 비행기가 연착되었는데 시카고 도착하고 나서도 비행기가 계속 빙빙 돌면서 우리를 내려주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수하물로 보낸 짐들마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예상보다 훨씬 늦게 에어비엔비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한 후 우리끼리 방을 고르기 위해 한바탕 게임을 하고 다음날을 위해 일찍 잠들면서 시카고에서 첫날을 마무리했다.
2일 차에는 처음으로 미국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내가 있던 에드먼드는 무료 셔틀버스 외에는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마음대로 이동하지 못했지만 시카고는 교통패스권을 팔 정도로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어서 여기저기 마음껏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처음 간 곳은 시카고 미술관이었다. 미국 3대 미술관으로 뽑히는 만큼 그 규모는 엄청났다. 교과서에서만 봤던 유명 작품들이 내 눈앞에 있는 것이 현실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내가 시카고 교환학생이었다면 거기서 지내는 동안 매일 출석해 있는 모든 작품을 다 둘러보고 싶을 만큼 떠나기가 아쉬웠던 장소였다.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오후를 직접 눈으로 보니 현실감 없었다.
오후에 농구 경기를 보러 가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시카고의 또 다른 명물 리버워크로 향했다.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재밌게 본 팬으로서 남녀주인공이 걸었던 그 길에 내가 있으니 “시카고 오기를 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웃으면서 걷고 있었는데 한 사진작가가 우리의 모습을 찍고 싶다고 다가왔다. 깔깔거리면서 걷는 우리가 눈에 띄었는지 포즈를 지시하면서 몇 장 찍어갔다. 강가를 따라 조금 걷다가 농구 경기 시간이 다 되어서 농구 경기가 펼쳐질 유나이티드 센터로 갔다.
어쩌다가 사진작가분의 모델이 되었다...
농구장에 반입 가능한 가방 사이즈가 따로 있는데 그걸 몰랐던 우리는 짐을 맡기고 입장하느라 조금 애먹었다. 전설적인 마이클 조던이 있었던 구단답게 경기장 안에 마이클 조던의 동상이 있었다. 동상이었는데도 전설의 기세가 느껴지는 듯했다. 농구 경기도 처음이었는데 푸드코트에서 맛있는 간식 사 먹고 시카고 불스팀을 열심히 응원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시카고 불스의 승리로 신나 하고 있던 와중에 우리 자리 근처에 카메라맨이 서있길래 혹시 전광판에 등장하나 생각하던 순간 정말로 전광판 한 모퉁이에 우리의 모습이 나왔다. 그렇게 전광판 데뷔와 함께 시카고 2일 차를 마무리했다.
상징적인 마이클 조던의 포즈
3일 차는 필드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평소 공룡과 화석에 관심이 많았기에 시카고에서 꼭 가고 싶었던 장소 중 하나였다. 박물관에 들어오니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세계관에 들어온 것 같았다. 모형들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불 꺼진 밤만 되면 살아나서 돌아다닐 것만 같았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전시는 공룡 화석 전시였다. 티라노 울음소리 듣기와 티라노 입냄새 맡기처럼 오감을 자극시키는 전시라서 지구에 공룡이 존재했음을 실감 나게 해 줬다.
지하철 역에 필드 자연사 박물관 가는 길 안내판이 너무 귀여웠다.
박물관에서 모든 기력을 소진해 배고파진 우리는 거센 비를 뚫고 시카고 피자를 먹으러 갔다. 근처에 맛집으로 유명하다고 추천받은 피자집을 향했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덴버에서 갔던 지오다노스였다. 메뉴판과 가게 분위기 비슷해서 다시 살펴보니 같은 가게였다. 그것도 모르고 맛집이라면서 감탄하면서 먹은 내가 조금 바보 같아서 머쓱했다.
배를 채우고 쇼핑몰인 워터 타워 플레이스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쇼핑을 했다. 저녁때가 되니 다행히 비가 그쳤고 우리는 다시 한번 리버워크로 향했다. 리버워크의 밤은 낮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서 다시 가기로 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낭만적이었다. 가로등 조명과 은은하게 강물에 반사되는 빛이 너무 예뻐서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영상통화를 안 걸 수가 없었다. 잠깐이었지만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순간을 함께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밤이었다. 낭만을 한 아름 안고 그렇게 시카고에서의 또 다른 하루가 지나갔다.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리버워크의 밤
넷째 날에는 네이비피어로 향했다. 커다란 대관람차과 넓게 펼쳐진 미시간 호의 연안을 눈에 담고 싶어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윈디시티라는 별명을 가진 도시답게 이날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다. 하지만 왜 윈디시티라고 불리는지 알게 되어서 날씨가 화창하진 않았어도 바람이 많이 불었어도 그것대로 좋았다. 가게 몇 군데를 구경하고서 우리는 스카이덱 전망대로 향했다.
리버워크에서 본 야경이 너무 예뻤기에 전망대에서 본 광경은 어떨지 너무 기대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재빨리 전망대에 도착했는데 발아래로 내려다본 시카고는 너무 예뻤다. 빤짝거리는 것이 꼭 은하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발아래 펼쳐진 야경을 보고서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시카고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기에 정말 맛있는 한 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간접등으로 은은하게 반짝이는 분위기 시카고의 야경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를 담당해 주신 서버분이 오클라호마 출신이었다. 오클라호마에 관해 몇 마디 주고받으며 기분 좋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시카고 극장을 보러 갔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시카고 극장 간판이 정말 화려했다. 화려한 간판을 보니 내일이면 떠나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마지막 날에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버킹햄 분수를 보러 갔다. 날씨가 너무나도 화창했기에 햇빛에 반짝거리는 분수대가 유리알 같았다. 마지막날이라도 화창한 날씨를 즐길 수 있어서 다행이면서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으로만 가득했다.
그날 산책을 하면서 시카고 얘기를 하기 전까지 나는 시카고를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시카고에 대해서 아무것도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로 가서 그런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시카고 여행이 너무 좋았다. 거리를 걷는데 건물들이 너무 예뻐서 좋았고 볼 것도 놀거리도 너무 많았다. 시카고에서 야경을 많이 봐서 그런지 반짝거리던 조명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래서 시카고 여행을 짧게 정리한다면 나는 “예상치 못하게 마주한 반짝임”으로 정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