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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하 Oct 11. 2024

접속3. 연기하며 살다가 쉬고 싶을 때

10.10. 짧은 일기

10.10 일기

연기(演技)하며 살다가 쉬고 싶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약간의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물론 '삶의 연기'는 진정성이 매우 높은 다큐를 전제로 한다. 남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내 삶을 연기하기 때문이다.


삶에 약간 연기를 함으로써 얻는 것은 어느 만큼의 명성, 평판, 돈과 함께 스스로를 대견히 여기는 약간의 락큰롤인데, 개인적으로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관심이 적다.


그 약간의 연기에도 우리는 여러 고통이 따른다.  그 자체로도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만 예의 바른 연기를 과하게 이용하려는 소위 빌런의 출현은 스트레스를 뛰어넘기도 한다.


다행히 스스로 또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호소하며 위로감을 찾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작은 연기'도 거부하는 내지 하기 싫은 거침(rough)이 본질일 수도 있겠다. 아기처럼!


거칠고 모난 돌이 세상이라는 강물 속에서 동그랗게 변화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에게는 예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자신의 모습을 잃는 것은 아닌가 싶어 가끔 하늘을 보며 슬퍼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다음 날 삶의 연기를 반복한다. 이것이 '삶의 연기' 아닐까!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그리고 너무 티 나는 연기도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아직 건재함을 참 열심히 연기하신다. 자식이 걱정할까 하여. 이것은 나 자신의 연식이 늘어날수록 알 수 있는데 감정이 참 묘하다. 감명 깊은 연기라기보다는 마음 쓰린 연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연기는 오래도록 보고 싶다.

그렇게 각자의 시공간에서 작은 연기를 하다가 가끔 이 연기를 놓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 다양한 방법으로 연기를 쉰다.


여행을 간다.

친구를 만난다.

운동을 한다.

술을 마신다.

음악을 한다.

글을 쓴다.

그냥 잔다.

가끔 삶과 이별을 통해 더 이상 '삶의 연기'를 바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연기(煙氣)처럼 사라지는 현상은 나 자신이 그러하지 아님에도 심장이 공격당하는 일들이 있다.


철없고 아무 권력 없는 내가 모든 우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조금 더 삶을 연기해 보게요"



나는 아직 늙은 연기를 하고 있진 않지만, 언젠가 그런 시간이 오면 내 가족에게 티 안 나는 완벽한 연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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