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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2.그리움은 당신의 당신에 의한 당신을 위한 순수다

당신은 지금 그리운가요?

by 고하

살면 살수록 그리움도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커지는 것을 자각한다. 보고 싶다'는 감정은 조금씩 세포들에 의해 두꺼워지다가 이내 마음 창고에 그리움으로 저장된다. 무공(武功)에 내공(內功)이 더해지는 격. 그러다가 문득 그 신경들이 깨어나면 창고문을 필터 없이 열어버리는 그리움은 부지불식간에 기억의 해마를 두드리고, 계산적인 전두엽을 눈물로 강타한다. 그래서 한여름에도 코 끝이 시리다.

"당신은 지금 그리운가요?"


그리움의 대상은 주로 사람과 상황이다. 사람과 상황은 일치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가족이 없는 사람조차 가지는 거의 모든 사람의 공통된 그리움이다. 살아계신 부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그리움으로 바뀔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린데, 돌아가신 부모와 가족에 대한 고맙고 미안한 그리움은 말해 무엇하랴! 이런 의미에서 세상 모든 가족의 이별은 폄훼(貶毁)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이다. 혹시 그 아픔과 그리움을 공격한다면 무엇이든 그것은 사람을 전제로 말하는 성선설과 성악설의 어디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非인간적임을 깨닫기를 기대한다.

"당신의 그리움은 무엇일까요?"


서로 너무 싫어져서 헤어진 경우가 아닌 가슴이 아려오는 사랑과 이별로 쌓인 그리움도 '연예대상' 감이다. 사랑하는데도 여러 사정으로 이별하고 살아가는 '연인들의 그리움'! 생명의 시간이 다 되어 어쩔 수 없이 이별하는 연인들의 그리움! 그리고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 어떤 사랑이든 심장에 빨간 염증을 불러일으킬 만큼 그리움의 깊이는 헤아리기 어렵다. 만일 이 그리움마저 가질 수 없었다면 심장이 불타 없어질 수도 있는 가족 다음으로 강력한 그리움이다.

"당신의 첫사랑은 끝사랑이 되었나요?"


특별한 시점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주로 그 시점의 특별한 사람들과도 연접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형형색색의 놀이터에서 흙장난하던 5살 손끝에도 달콤한 케첩 같은 그리움이 잔뜩 묻어 있고, 온 가족이 함께 첫 해외여행에 나서는 출국장에 선 두 발에도 인감도장처럼 그리움을 연신 찍어낸다. 그리움이 있다는 것은 삶이 꼭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당신의 인생은 언제가 피크였나요?"


좀 특이한 그리움도 있다. '한 번은 꼭 만나야 하는데!' 하는 소소한 마음의 -사랑과는 좀 다른- 그리움이다. 아마도 그 만남이 어떤 이유로든 '아쉬움'이라는 보자기에 묶여버린 경우이다. 특이한 것은 이 소소한 그리움이 오랜 시간의 마사지를 받으면 -소멸되기도 하지만- 아카시아같이 향기롭고 장미처럼 진한 그리움으로 성장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나는 이것을 '낭만적인 그리움'이라고 부른다. 단 한 번 마주했는데, 의도치 않게 다시 보지 못해 만들어진 그리움! 사는 곳도 연락처도 몰라 수신처 없는 그리움을 빨간 우체통에 넣고 또 넣는 영화 같은 그리움이다. 자주 보던 사람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은 장편소설처럼 많은 사연과 감정을 꺼낼 수 있지만, 단 한 번 만난 사람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은 꿈꾸고 일어난 아침처럼 애타고, 햇살을 머금은 고드름처럼 애처롭다. 그럼에도 이 짝사랑 같은 그리움은 다시 볼 수 있다는 실낱같은 기대를 독촉받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겐 삶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당신은 낭만적인 그리움이 있나요?


그리움은 '장기기억과 감정의 낭만적인 선물'이다. 이 세상에 그리움이 없다면, 감정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이리라! 수많은 기억 중에 그리움이란 특별한 감정이 있어서 내일의 희망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무엇도 되돌릴 수 없는 슬픈 그리움에 눈물이라도 맘껏 흘려보낼 수 있는 것 아닌가! 만일 내가 누구나 받으며 살아가는 이 낭만적인 선물을 조금이라도 못 받는다면, '대지(著者 Pearl Buck)'의 쩍쩍 갈라진 논밭에 허덕이는 왕룽의 아내 오란과 자식들의 모습이 시각화되고 동일시되고 만다. 생각만 해도 너무 불쌍하고 허망해질 만큼,


그리움은 당신의, 당신에 의한,

당신을 위한 순수다.


Kind Editor 古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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