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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따봉 Oct 06. 2023

D+9 고양이의 세상은 온기가 필요하다


길었던 연휴가 끝났다. '연휴가 끝나면'이라는 말로 미루어두었던 일들을 시작해야 할 때였다. 대학원에 입학 서류를 넣는 것부터 자잘하게는 중고거래로 판매한 타로카드를 택배로 부치는 일까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는지, 오늘은 늦잠을 잤다. 원래는 아침 9시면 자동으로 눈이 떠졌는데, 오늘따라 몸이 찌뿌둥했다. 어제 하루 종일 밖에 있다 들어와 기진맥진한 상태로 한참을 누워있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어제 봉사활동을 문의하러 쉼터에 다녀왔다. 송이의 입양 홍보를 위해 새롭게 SNS를 개설했는데, 고양이 관련 계정이다 보니 다양한 쉼터에 대한 소식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그중 눈에 들어오는 게시글이 있었다. 바로 지니네 쉼터에서 열리는 바자회 소식이었다. 때 마침, 사업을 하겠답시고 만들던 고양이 캣닢볼 생각이 났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카페에서 뜨개질을 하는데, 고양이들이 털실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다른 종류의 실도 있었지만, 특히 내가 가지고 있는 실을 좋아했다. 이유는 당시에 뜨고 있던 실이 100% 양의 털로 만든 울 사여서 동물 냄새가 나서 그런 듯했다. 당시에 실이 남아서 남은 실로 고양이 털공을 만들었다. 털공 안에 캣닢 가루를 조금 넣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고양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걸 살려서 고양이 수제 캣닢공을 만들어서 팔면 어떨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꽤나 진심이어서, 솜을 1kg이나 샀었었는데 한 10개 만들고 나니 손이 아파 포기하는 것으로 끝났다.


오늘부터 열심히 캣닢공을 만들기 시작하면 바자회에 팔 만큼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시에 바자회까지는 약 15일이 남은 시점이었기에, 열심히 하면 100개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바자회 신청을 했다. 바자회를 신청을 하며 혹시나 싶어 크라우드 펀딩 기획도 도와드릴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마침 쉼터에서도 오랫동안 크라우드 펀딩을 시도해 보려고 했던 상황인지라, 자연스럽게 지니네 쉼터와의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한 시간 정도 지하철을 타며, 대표님은 어떤 사람일지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길고양이를 위한 삶을 사는 사람이니까 포근한 인상을 갖고 계시려나, 아니면 단체 대표님이니까 카리스마 넘치는 분위기를 가지고 계실까.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았지만 비인간 동물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우리 집 고양이를 넘어 길에서 살아가는 모든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감정일지 생각해 보았다. 길에서 죽거나 다치는 존재에 대한 감각은 도시인으로 살아가며 차단한 지 오래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가 무감한 세상에서 홀로 고통을 느끼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그런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건물에 도착해서 만난 대표님은 내가 간절히 바라던 모습의 어른이었다. 자신의 일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 진심을 보여줄 수 있는 분이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문밖에서 고양이가 밥을 먹는 소리가 들리면 대표님의 세상에 불이 켜졌다. 나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생명이었을 존재에게 이름을 불러주는 모습이 생소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세상에서 보지 못한 종류의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존재의 안녕을 바라는, 언제 스러질지 모르는 영혼을 가족으로 부르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봤다. 나의 사고로 담을 수 없는 크기의 사랑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바라보는 것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송이의 상태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송이 코에서 콧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던 것이었다. 분명 송이가 있는 자리 밑에 전기장판도 깔아주고, 온도도 26도 언저리에서 유지했는데 송이에게는 너무 추웠나 보다.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전기장판만 믿고 고양이에게 이상적인 온도인 27도보다 딱 1도 낮게 유지한 것이 잘못이었다. 집에 오고 나서 달고 있던 감기가 조금 떨어진 줄 알았는데, 잠깐 마음 놓은 사이에 다시 송이의 감기가 도졌다.


일단 급히 보일러부터 틀었다. 알고 보니 고양이들은 사람보다 추위를 잘 타는 편이라 온도를 28도에서 30도 사이로 유지해야 했다. 30도? 생전 생각해 보지도 못한 숫자에 겁이 덜컥 났다. 평소에 온도가 25도 위로만 올라가도 덥다 못해 아파하는 성격인지라,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구조자님에게는 참으면 그만이라고 했지만 사실 잘 참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송이가 아픈데, 인간이 별 대수인가. 눈 딱 감고 보일러 목표 온도를 30도로 올리고 가습기를 틀었다.


문밖에는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방은 점점 더 후끈해지고 있었다. 땀이 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도저히 송이랑 같은 방에 있을 수가 없었다. 너무 더워서 거실 방만이라도 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까 싶었지만, 보일러와 에어컨을 동시에 트는 미친 짓을 하기에는 다음 달 고지서에 찍힐 금액이 무서웠다. 에라이 이판사판이다, 더워서 머리가 노곤해진 김에 낮잠을 자기로 했다. 달궈지는 방바닥과 함께 나의 뇌도 같이 말랑해졌고, 다른 날보다 더 쉽게 잠에 들었다.


한참 자고 일어나니 늦은 점심이었다. 점심을 먹을까 그냥 굶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옷 사이로 송이 발바닥이 보였다. 방의 온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송이는 다른 날과 달리 늘어지게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초보 집사가 보아도 송이가 숙면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송이는 집에 온 후로 항상 긴장 상태였어서 몸을 완전히 숨기고 지내곤 했다. 그동안 환경도 낯설고 방도 추워서 쉽게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는데, 방이 따뜻하니 긴장도 같이 녹아내린 모양이었다. 그 덕분에 처음으로 송이의 발바닥을 볼 수 있었다.


조용히 다가가 사진을 찍었는데, 아쉽게도 두 장 모두 초점이 나가있었다. 제대로 사진을 찍기 위해 다시 다가갔는데, 송이가 깨고 말았다. 그렇게 온전한 발바닥 젤리 사진은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송이의 입양 홍보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하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임시 보호 온 첫날부터 써 내려간 기록이 있으면, 아이에게 서사가 생겨서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고 했다. 내가 팔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짚어봤다. SNS 세상에서 재화로 통하는 예쁜 외모, 혹은 명품 가방과 같은 부, 가녀린 몸매, 힙스터 감성, 어느 하나 없었다. 내가 갖고 있는 것 중에 그나마 자신 있는 것은 글뿐이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마음을 모은 다음, 작은 성실함을 뿌려 간을 맞췄다.


그동안 쓴 글을 모아서 브런치스토리 플랫폼에 작가를 신청했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결과가 나왔고, 다행히 한 번에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었다. 그동안 모은 글들을 하나씩 꺼내며 다른 사람들이 쓴 작품들도 살펴보았다.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인 사람들, 도저히 클릭하지 않을 수 없는 소재를 갖고 있는 사람들, 또 많은 사람들이 전부 작가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나에게도 붙어있는 명찰을 보았다. 내가 저 사람들과 같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나도 언젠가 나의 글을 출판하게 될 수 있을까. 나보다 한참 앞서가는 사람들이 서있는 곳을 목표로 잡자니 나는 가진 것이 없었고,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나도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아 욕심이 났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앱에서는 계속 알림이 떴다. ○○님이 like를 눌렀습니다, ○○님이 like를 눌렀습니다, ○○님이 like를 눌렀습니다. 경매장에 올려 놓은 나의 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씩 like를 눌러주고 갔다. 글에 붙은 가격표가 달라졌다는 알림이 쉬지 않고 울렸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뿌듯할 줄 알았는데 숨이 막힐 뿐이었다. 나도 저 사람처럼 like을 모으고 구독자 수도 높여야 하나, 그러려면 어떤 글을 써야지 더 잘 팔릴 수 있을까. 한번 달리기 시작한 생각은 심야를 달리는 택시 미터기처럼 멈출 줄 모르고 돌아갔다.


결국 알람을 모두 차단하고 하나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매일 최선을 다해 하루를 기록하는 것.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서 내가 쓴 글을 보았을 때, 만족스럽다면 그걸로 됐다. 딱 그만큼의 욕심만 안고서 송이와 같이 살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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