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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따봉 Oct 23. 2023

D+18 태어나서 처음 맛본 대기업은 초콜릿 맛이었다.


지난 글에서 최선을 다해 쓴 글이라면 그걸로 됐다고 야심 차게 선언했지만, 사람의 본성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다. 조회 수에 신경 쓰지 않는 작가가 되겠다며 알람마저 모두 차단했지만 큰 의미가 없는 일이 되었다. 비록 핸드폰 자체에서는 알람이 울리지 못하도록 차단했지만, 직접 앱을 구석구석 뒤지며 오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like를 눌렀는지 확인하곤 한다. 


그리하여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은 글의 조회 수를 확인하는 것이 되었다. 그날도 보통과 다를 것 없는 숫자를 확인하고, 또 청파동으로 갈 채비를 했다. 다른 날처럼 버스를 기다리며, 선선한 가을 날씨가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할 수 없는 생각이었는데, 어느덧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라고 불리는 영역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사 오기 전에는 청파동에 살았었는데, 그때 살던 집은 참 예뻤다. 바다를 동경했던 나는 작은 조각들을 모아 집을 꾸몄고, 그 공간을 24m²의 바다라고 불렀다. 푸른빛이 감도는 원룸에서 유영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내가 집순이인가 보다 짐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집순이가 아니라,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해녀가 해산물을 캐러 물질하듯, 나는 세상에 볼 일이 있을 때만 나갔다.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모든 감각을 닫고서 잠수했다. 참은 숨이 모두 바닥나기 전에는 꼭 집에 들어와야 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는 일은 나에게 가끔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청파동 안에서만큼은 굳이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가끔 숨이 빠르게 바닥나는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꽤 자유로이 동네를 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6년이라는 시간을 청파동에서 보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결국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지만, 지금도 다양한 이유를 만들어서 청파동에 들르곤 한다. 


오늘 청파동에 가기로 한 이유는 깁스 한 다리 때문이었다. 4개월 전쯤, 새로 사귄 친구에게 푹 빠진 적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시간마저 아까워 친구랑 메시지를 나누며 내려가던 중 발목을 접질렸고, 그 뒤로 지금까지 아파도 참고 지냈다. 그러던 중 최근 발이 너무 아파서 병원을 갔고, 의사는 상태를 보자마자 냅다 발에 깁스를 채웠다. 그 친구하고의 관계도 결국 골절되어 이제는 연락하지 않게 되었고, 나는 다친 지 4개월 만에 깁스를 하게 된 것이다.


한쪽에는 다리에 깁스를 차고, 한 손에는 뜨개질 거리가 든 가방을 들고서 버스에 탔다. 여느 때처럼 이동하는 시간 동안 뜨개질을 하려다가, 잠깐 핸드폰을 켰다. 습관처럼 글의 조회 수와 like의 수를 확인하던 중, 기상천외한 숫자가 보였다. 아무리 많아야 두 자릿수를 겨우 넘던 조회 수가 300회가 넘어있던 것이다. 사람들의 유입 경로를 찾아봐도 브런치 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어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불안해하는 마음과 달리, 조회 수는 끝도 없이 솟았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1000회를 넘게 기록했고, 그럴수록 나는 원인을 알 수 없어 피가 마를 뿐이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을 것 같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내 글이 그래도 꽤 괜찮은 편이라는 인증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보통의 사람이 아닌 페미니스트였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좋게 말하면 나를 ‘꼴페미’라고 불렀고, 심하게 말하면 ‘위안부로도 못 쓸 년’, ‘조두순 감방에 간식으로 처넣을 년’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여성운동가라고 불렀지만, 쏟아지는 수많은 단어들에 묻혀 큰 의미가 없었다.


나에게 다양한 멸칭을 붙였던 사람들은 길고양이들도 마찬가지로 다른 이름을 붙였다. 그들의 집단에서 길고양이는 사람들로 인해 쫓겨난 존재가 아닌 ‘털바퀴’, 즉 털이 달린 바퀴벌레였다. 그들은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고양이와 ‘털바퀴’를 구분했는데, 그 기준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들 눈에는 길생활을 하던 송이도 역시 박멸해야 하는 ‘털바퀴’로 보였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탈코르셋을 했던 ‘꼴페미’가 이제는 ‘털바퀴’를 키운다라, 그들이 참으로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였다.


두려움의 원인은 실체가 없다고 했었나. 도대체 무슨 경로로 사람들이 나를 찾으러 오는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 공포심에 불을 질렀다. 쉬지 않고 오르는 숫자는 장작이 되어 나의 머리를 활활 태웠다. 조회 수가 1000회를 넘어 2000회가 되었고,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슨 정신으로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집을 향해 걸어가며 모든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 그들이 나를 불렀던 단어들을 집어넣었다. 내 손으로 나를 향했던 멸칭들을 써 내려가며, 왜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나의 글을 읽기 시작한 이유를 하나라도 찾을 수 있길 빌었다. 다시는 기억되고 싶지 않아 시체로 묻어버렸던 기억들을 다시 파내며, 그렇게 뒤지고 또 뒤졌다.



집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컴퓨터를 키는 것이었다. PC 화면으로는 접속 경로가 조금 더 자세히 보일까 싶어 찾아봤더니, 생각지도 못한 링크가 있었다. 바로 다음 메인 페이지였다. 내 글이 다음 메인 화면에 실렸다고? 살면서 관심은 많이 받아왔지만 이렇게 건실한 쪽으로 주목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보통 늘 나는 반사회적인 행보 - 페미니스트는 숨만 쉬어도 반사회적인 존재가 된다 -로 인한 것이었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그날 나의 글의 조회 수는 5천 회를 넘게 찍었고, 다음 날 애인은 축하한다며 케이크를 사 왔다. 언제나 자본주의의 반대편에서만 살았던 사람이었기에 처음으로 대기업의 자본을 맛본 것에 대한 축하였다. 애인은 초에 불을 붙이며 다음 메인 페이지에 글이 실린 소감이 어떻냐고 물었고, 나는 너무 어지러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며 삼켜야 했던 씁쓸함도 케이크의 달콤함에 녹아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정신 나갈 것 같은 하루를 후 불어서 껐다.





요즘 나는 대머리 아저씨가 염색약을 구경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 통장 잔고가 텅 비었음에도 불구하고 송이를 위한 캣타워를 알아보고 있다. 이유인즉슨, 송이가 옷장을 타길 시작한 것이다.


송이의 숨숨집은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바뀌었는데, 송이의 가장 첫 번째 숨숨집은 옷장이었다. 정확히는 셔츠와 바지가 줄줄이 걸려있던 옷장 1층이었는데, 걸린 옷들 사이로 들어가면 밖에서 고양이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다는 점에 있어 완벽한 숨숨집이었다. 하지만 송이가 옷장 바닥에 똥스키를 탔고, 모든 옷들에서 고양이 똥냄새가 나게 됨에 따라 첫 번째 숨숨집은 사라지게 되었다.


옷장 1층에 걸어두었던 옷들을 모두 정리하여 2층으로 올려두었고, 옷장 1층은 새로운 고양이 전용 숨숨집이 들어서게 되었다. 비록 전에 비해서는 완벽히 숨기에는 부족했지만, 숨숨집 앞에는 여전히 바지가 몇 자락 있어 송이는 나쁘지 않게 은신할 수 있었다. 송이도 나름대로 만족했는지 하루종일 숨숨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의 2/3 정도의 시간을 숨숨집에서 대자로 누워 지내는 것을 보며, 나름대로 인간 세계의 규칙과 냥생의 복지의 균형을 잘 맞췄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착각임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평소에는 아무리 펫 카메라를 들여다봐도 늘 숨숨집 안에서 잠만 자길래, 나는 송이가 유독 잠이 많은 고양이인 줄 알았다. 그동안 카메라를 통해 지켜본 바로는 송이가 숨숨집을 나오는 순간은 딱 두 가지였다. 밥을 먹으러 나오거나, 화장실을 가야 할 때뿐이었다. 이 마저도 밤 10시 30분에 규칙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렇기에 펫카메라 속 송이가 숨숨집에 없었을 때도 그리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만약 송이가 조금만 더 조심스러웠다면 아마 나는 송이가 옷장 전체를 캣타워로 쓰고 있었는지를 아예 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에 도착했을 때 분명 옷장 2층에 둔 다리미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옷장 2층을 뒤졌다. 세상에, 거기 송이가 있었다.


고양이를 키우다 보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고양이들은 매우 뻔뻔한 반응을 보인다. 아니 대체 옷장을 왜 올라탄거지라는 생각에 내가 얼어있는 동안, 송이는 옷장 2층마저 성에 차지 않는다며 커다란 유리병에 든 양초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고양이들은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모두 떨어뜨리며 다닌 다는 걸 알았지만, 그 물건에 쇠로 된 다리미와 1kg이 넘는 양초가 포함된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유리가 깨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송이는 뿅 하고 옷가지 사이에서 나왔다.


옷장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송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려왔다. 옷 사이로 파고들지 말라고 기껏 옷을 다 정리했는데, 송이는 그 계획에 동참할 생각이 없었나 보다. 다리미까지 떨어뜨리며 당당하게 2층 또한 자신의 자리임을 선언한 것과 달리, 송이는 나한테 들킨 이후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은 듯 했다. 벙쪄서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 송이와 눈을 마주치길 몇 초, 송이는 재빨리 숨숨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덕분에 귀여운 송이의 사진을 몇 장 얻게 되었고, 나는 옷장에 올라간 사이에 몰래 숨숨집을 청소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되었다. 송이의 숨숨집은 딱 봐도 지독하게 더러워 보이지만, 그 후로 송이가 숨숨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 한동안 송이는 먼지와 공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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