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 Nov 26. 2022

나는 이 동네가 좋아

2년 살고 또 2년 살고 있는 우리 동네 이야기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3년이 지나고 있다. 이사 왔다는 표현보다는 사실 결혼 후 둘의 보금자리를 여기에서 시작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만.


 처음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알아보러 다닐 때는 여기가 진짜 우리 집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꼼꼼히 보기도 하고, 여기가? 하는 생각도 들고 싱숭생숭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그리고 이곳에 세입자로 들어오면서 나는 이미 이 집과 동네까지 내적 친밀감이 가득해졌다. 이사 오는 날 시루떡을 사서 옆집 윗집 할 것 없이 이사 인사를 드렸다. 양가 부모님은 자가도 아닌데 굳이 인사를 하냐고 웃으셨지만 옆집 윗집 이웃과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다. 나에겐 그만큼 애정이 가는 공간이 된 것이다.


 사실 현대인에게 하루의 8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집이라는 공간은 잠을 자는 공간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집이란 사회에서 보내는 시간을 위해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추억을 쌓아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더불어 코로나 시대에 결혼과 독립을 동시에 했기 때문에 나만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극대화되기도 했고.


 집뿐만 아니라 옆집 윗집에도 내적 친밀감을 갖게 된 나에게, 이 동네도 물론 나에겐 큰 의미로 다가왔다. 스무 발자국만 나가도 한강으로 통하는 산책로부터, 걸어서 10분 거리에 9호선 급행 정차역이 있다. 그리고 그 역 주변에는 너무 번화하지도 않았지만 없을 것이 없는 다양한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고, 그보다 조금 더 걸어 나가면 무려 방송에도 나온 맛집 골목을 만날 수 있다. 이제 친구들이 동네에 놀러 오면 소개할 수 있는 맛집도 알아두었고, 기분 전환하고 싶을 때 찾아가는 감성 카페도 알아두었다. 맛있는 만두를 파는 곳도 알고, 신선한 과일을 판매하는 가게도 알게 됐다. 매 계절마다 깨끗하게 세탁해주는 세탁소도 알아두었다고.


 3년 만에 단골 병원도 생겼고, 어떤 아이스크림 가게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판매하는지도 빠삭하게 알고 있다. 선거를 하면 어디서 투표를 해야 하는지도 이제 아주 잘 아는 나는 이 동네 주민인 셈이다. 30년을 살아오신 어르신들도 계시지만 나도 나름 3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쏟은 곳이라는 점에서 동네 생활에서 꿀리지 않는 사람이 됐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데 1년 뒤면 이 정든 동네를 떠나야 할 수도 있다니, 솔직히 믿고 싶지 않다. 이제 옆집 윗집 이웃이 모두 바뀌어 다 모르는 사람이 되었음에도 이 동네에 너무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첫 신혼집에는 남다른 추억이 쌓인다더니 신혼집뿐만 아니라 동네에도 추억이 가득 쌓여버렸다. 집에서 둘이 얼큰히 취해서 쌀국수를 먹으러 가자며 호기롭게 걸어 나갔던 곳, 매주 주말마다 장 보러 다닌 마트, 신속항원 하러 갔는데 갑자기 확진 판정받은 병원, 여름마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가 뱃살을 얻어오기도 하고 말이야.


 여름마다 분홍빛 하늘을 보려고 역에서부터 열심히 뛰어오기도 했다구. 그런 나를 보기 위해 집 앞에서 기다려준 그도 생각난다.

 더 큰 집으로 가고 싶다가도 정든 동네를 떠나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내심 아쉬워진다. 이 근처에서 우리의 집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며. 1년 동안 우리만의 따뜻한 추억을 더 많이 만들어서 그가 이곳을 더더욱 떠나고 싶지 않게끔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지.

작가의 이전글 아무튼 퇴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