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강타 Apr 10. 2024

그 여자 그녀 이야기

그대의 휴가, 그녀의 늦잠



그 여자의 그대인 아들은 요즘 휴가 중이다. 그대가 다니는 회사는 만 5년이 지나면 보름간의 유급 휴가를 주는데 무급 보름을 더해 한 달을 쉬는 것이다. "제가 언제 편히 쉰 적이 있나요? 지난해가 휴가를 쓰는 해였는데 승진하면서 못 쉬고 또 일 년이 지났으니 이번만큼은 작정하고 쉴 거예요."라고 말했고 그 여자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어찌 사람이 일만 하고 산단 말인가? 그 여자가 봐도 미련할 만큼 회사일에 진심을 다했으니 그만큼 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누가 지애비 아들 아니랄까 봐, 좀 설렁하지 저렇게 하다 나가떨어질 텐데' 그 여자의 속걱정이 무색할 만큼 힘들어하면서도 잘 버텨주고 있는 것이 기특할 뿐이다. 자식의 나이가 60이 되어도 부모에겐 어린 아이라 '차 조심해라'라고 하듯 그 여자 역시 일 잘하고 진짜 어른이 돼 가고 있는 아들을 짠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휴가 2주 차

일주일 동안은 집에서 꼼짝도 안 하고 늦잠과 게임으로 보내더니 친가가 있는 제천을 경유해 강원도 일주를 하겠다며 제천으로 내려갔다. 제천에는 본가는 물론 큰집 작은집 할 것 없이 가까운 거리에 모두 살고 있다. 심지어 조카들 까지도. 그 여자는 시댁 식구들과 자주 왕래하고 소통하므로 모두 좋아해 주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므로 걱정거리는 없었다. 그대는 도착 후에 상황들을 걱정하고 있을 그 여자를 위해 카톡으로 상황과 사진들을 보내주었다. (큰집, 작은집, 형님, 동생들 만난 이야기, 작은 아버지와 하루 동안 여행 동행 이야기 등등) 그 여자의 그대는 아직도 운전면허증이 없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학원으로 달려가 면허증을 취득한다. 그러나 그대는 어찌 된 일인지 지금까지도 면허를 취득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대신 택시를 자주 이용한다)그래서 그 여자는 매일 아침 역전까지 그대를 태워다 준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취업 후 2년이 지날즈음 그날도 남들 다 쉬는 휴일로 기억하는데 출근한다는 그대를 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먼저 제안했고 그 이후로 매일아침 데려다주게 된 것이다. (자차로 가면 10분 거리인데 마을버스를 타고 갈라치면 30분이 걸리니 조금이라도 힘듦을 덜어주고자...)


출근을 남들 시간에 맞춰가면 좋으련만 서울까지 가야 하는 것도 있고 많은 사람들에 치이는 것이 싫다며 집을 일찍 나선다. 그러니 엄마인 그 여자도 아침을 일찍 시작할 수밖에 없다. 아침밥을 챙겨주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아침 두유 하나라도 손수 챙겨주고 역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시계를 아침 5시 50에 맞춰놓고 있으며 6시에 일상을 시작한다. 젊어서는 남편의 아침을 위해 지금은 그대의 출근을 위해 일찍 시작하는 아침이 그 여자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그대의 휴가 2주 차인 지금 그 여자의 아침 일상은 엉망이 되었다. 그렇게나 늦잠을 자고 싶었고, 그렇게나 원하던 늦잠이었는데, 하루, 이틀, 일주일 시간이 지남의 따라, 아니 늦잠의 의해 오전이란 시간이 다 날아가버렸다. (일찍 시작하는 아침은 할 수 있는 일도 공부도 많아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참으로 많다) 지금은 게으름의 극치를 치닫고 있다. 늦게 일어나니 몸의 반응속도가 느린 것은 물론이고 의욕도 상실되고 손, 발을 움직이기 싫어지는 게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고 말을 듣지 않는다. 오늘도 그랬다. 분명 어젯밤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건만 눈이 떠지는 시간은 휴가 전과 같은데 몸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 한 달이라는 숫자의 개념이 느긋함을 만든 것인지 그동안의 긴장감을 내려놓아서인지... 암튼 2주 차인 지금 이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한 것 하나 없이 오늘도 오전이 다 날아가 버렸다. 고양이 마저 제 집에서 자고 있는 지금은 어느새 2시를 향해가고 있고, 집안은 조용하며 할 일은 없다. 아니 안 하고 있다. 남들은 말한다. 왜 다 큰 아들을 끼고 사냐고, 왜 분가시키지 않냐고, 하지만 그 여자는 그러고 싶지 않다. 20살 적부터 결혼의 생각이 없다 하는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결혼을 하고 안 하고 가 그 여자에겐 중요하지 않다. 그건 각자의 삶이고 생각이라고 생각하기에,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이고) 그대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음으로 인해 그 여자가 할 일이 있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뿐이다. 분가를 시켜놓고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고 싶지 않고 함께 있을수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그 여자는 그대의 휴가가 끝나기 전에 다시 활기찬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작가의 이전글 그 여자 그녀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