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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영수 Oct 04. 2023

안중근을 향한 편지

김훈의 <하얼빈>을 읽고

아버지, 안녕하셨습니까. 뵌 적도 없는 당신에게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사실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라지로 떠나시던 그 날 그 단단한 등에 직접 여쭤봤다면 알 수 있었을까요. 신부님의 조언대로 학교를 세우셨다면 제자들을 통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을까요. 제가 알고 싶은 건 당신의 확신입니다. 고민들을 날려 보냈을 결심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당장 눈알에 박혀있는 것을 뽑아내고 떠날 수 있었던 힘입니다. 알고 싶습니다. 궁금한 것이 아니라 필요합니다. 저도 제 삶을 살아감에 있어 당신처럼 당당하고 싶으니까요.

 하루는 이런 날이 있었습니다. 채워도 모자란 날들이 반복되다 결국 텅 비어 빈자리에 부끄러움이 몰려오던 날이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은 자유입니다. 그런데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일이 폭력이 되면 어쩌나 주저했습니다. 시대가 끓어오를 때, 더 이상 주저함이 소극적인 방관으로 보일 것이 두려웠습니다. 가라앉는 얼음 위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다 익사했다는 오명이 두렵고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전란에 휩싸이지도 민주화의 물결을 바라본 세대도 아닙니다. 난세가 아니니까 그 안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감은 내 자의가 아니며 거기서 저는 떳떳함을 찾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부끄러움을 모면했습니다. 계속 겨우 부끄러움만 벗어난 상태로 사는 것은 제가 지켜본 당신의 당당함과 거리가 멀다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모습에는 그 이상의 힘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합니다. 이해가 되질 않아서요. 악으로 악을 무찌른 자리에는 악이 남는다면서요. 하얼빈 역에 악이 남으면 어쩌려고 그러셨어요. 도마라는 이름도 가지고 계시잖아요. 총리, 통감이기 전에 한 사람을 어떻게 총으로 쏠 수가 있어요. 그 사람도 칭찬을 들으면 웃음을 짓고 타국의 왕에게 예의를 갖춘다면서요. 차라리 불을 뿜는 괴물이었으면 편했을까요? 동양평화는 너무 멀어 보이지도 않고 당장 눈앞엔 가족과 그러지 말아야할 이유가 산처럼 쌓여 있잖아요. 어떻게 우라지로 떠날 수 있으셨나요? 그 걸음 하나마다 담긴 결심이 가늠이 안 됩니다. 개인의 삶이 흔들리다 못해 나라가 들썩일 결심이잖아요.

 홍연어의 일생을 다큐멘터리로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의 황해도부터 하얼빈까지의 여정을 지도로 보다가 그때 보았던 홍연어가 떠올랐습니다. 평생을 바다에 살다 생존을 위해,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강 상류로 폭포도 뚫어야만 하는 300km 거리를 이동하는 모습을요. 당신이 죽기로 결심하고 떠났던 하얼빈으로의 여정도 이처럼 생존을 위한 본능이었나요? 산란을 끝낸 홍연어는 거기서 죽음을 맞습니다. 잔인하게도 강과 새끼들에겐 풍부한 영양분이 된다고 합니다. 그게 성씨가 다른 저로 하여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만든 이유입니다.  

 홍연어는 바다에서 강 상류로 접어들며 외형이 변합니다. 여정 도중에 산란기가 가까워지면 윗주둥이는 튀어나오고 몸통은 자두보다도 붉게 변합니다. 신이 준 선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바다에 살다 기억도 나지 않는 출생지로 가서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여정을 떠나야 한다는 불합리함을 대체 누가 홍연어에게 말할 수 있을까요. 또 홍연어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눈으로 보이니까요. 부러운만큼 샘이 납니다. 너무 간편하잖아요. 종착지에 죽음이 있는 무모한 여정을 가는 연어에게 그 길이 맞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보여주다니요. 제가 연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곰을 향해 돌진하고 폭포에 몸을 던지는 일에도 생동감이 넘쳤을텐데요. 지금 저는 확신이 없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어떤 세기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그렇게 사는 것이 맞다고 일러주며 몸을 자두색으로 만들어 준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버지, 어떻게 눈에 확신이 가득한 연어처럼 폭포를 향해 삶을 던질 수 있으셨나요? 어떻게 곰 앞에서도 떨지 않고 당당히 동양평화를 논했나요. 총구가 늘 흔들렸다는 글을 봤습니다. 흔들리는 총구는 어떻게 조준이 되며 또 방아쇠는 누가 당길 수 있나요. 저도 땅에 결박되어 있으면서 땅 위에 설 자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방향을 몰라 하늘만 바라보고 확신이 없어 어디로 가든 돌아올 것을 항상 염두에 둡니다. 당신의 일생만큼 살아왔으면서도 여전히 주위가 어둡습니다. 조심조심 걷는 것이 가끔 부끄러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요즘 비가 많이 옵니다. 당신이 우라지로 향하던 그 어두운 밤에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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