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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묻지마대학생 Oct 07. 2023

이득과 모순과 방관자.

# 학교폭력 # 방관자 # 손실회피성향 # 인지부조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나 역시 사람이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얘기를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것 같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을 다그치기 위해 했던 말이었을까, 아니면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친구들을 지도하기 위해 했던 말이었을까. 무엇이 되었든 일리 없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어린이들은 자신의 몸을 가누지도 못해 부모의 양육이 절실하다. 이보다 나이를 조금 더 먹어 청소년이 되더라도 미성년자라는 이름으로 성인들의 보호 하에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다.


 대체로 평범한 청소년들은 부모와 한 가정 속에서 살아감에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책임을 면제받는다. 대신 그들은 서로 동등하다는 가정하에 학교로 모여 획일적인 교육을 받으며 약 12년을 소비한다. 국가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바라는 것은 각자가 제공받은 공평한 교육 기회를 이용해 성장하여 사회에서 각자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학교가 공평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장소인 만큼, 거기에 속한 학생들은 모두 공정한 대우를 받을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대한민국 학교 곳곳엔 드러나지 않거나 적극적인 해결을 쉬쉬하는 학교폭력이 존재한다. 어떤 아이는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학교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다른 학생들에게도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반면, 소위 일진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보호받는 입장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악용하여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자신이 남을 괴롭힐 자격이라도 있다는 듯 행세하며 약해 보이는 학생들을 괴롭힌다.


 학교에서 일진이 한 학생을 괴롭힐 때 이를 지켜보고 있는 학생들이나 선생들이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명확하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피해 학생을 도와주려는 이들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모두가 말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왜 현실에선 등을 돌리는가? 왜 모두가 인터넷상에서는 학교폭력 피해자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큰소리치지만 정작 아무도 행동하지 않을까?


바로 인간의 손실회피성향(Loss Aversion)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 낯선 사람이 자신과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게임의 내용은 간단한데,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당신에게 10,000원을 주는 것이고 뒷면이 나오면 주지 않는 것이다. 동전의 앞면이 나올 확률은 50%이기 때문에 당신이 게임에 참여했을 때 얻게 되는 수익의 기댓값은 5,000원이다. 이 게임은 당신에게 대가 없는 수익을 제공하기 때문에 참여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


 당신은 곧장 게임에 참여했고 운 좋게도 동전은 앞면이 나왔다. 낯선 사람은 약속대로 당신에게 10,000원을 주었다. 이어서 낯선 사람은 당신에게 변형된 게임을 제안한다. 이번엔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당신에게 40,000원을 주고 뒷면이 나오면 당신이 낯선 사람에게 20,000원 주어야 한다. 당신에겐 좀 전의 게임으로 받은 10,000원과 주머니에 넣어둔 10,000원이 있다. 이때 당신은 게임에 참여할 것인가?


 당신이 수학을 믿고 승부사 기질이 있더라면 게임을 할 것이다. 이번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의 기댓값은 10,000원으로 좀 전의 게임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이 2번의 게임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 수익은 무려 50,000원이다! 그러나 당신은 이번 게임에서 지게 된다면 좀 전의 게임으로 받았던 10,000원과 더불어 주머니에 있는 10,000원까지 잃는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당신은 손해를 보기 싫어 두 번째 게임은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자신이 얻게 되는 이익보다 손해를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이것이 손실회피성향이다.


손실회피성향이 방관자를 만든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피해 학생에게 붙이는 꼬리표는 지저분하고 터무니없다. 피해 학생이 덩치와 목소리가 작거나 주변에 자신을 도와줄 친구들이 없어 괴롭히고 싶었을 뿐인데 각양각색의 이유를 붙인다. 그리곤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가치를 높여줄 것이라고 생각해 가해 행위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한다는 생각과 주변 어른들조차 자신을 강하게 벌하지 않는 것에 기세등등해진다.


 즉, 가해자에게 괴롭힘이란 학교 내에서 자신의 권위를 만들고 자랑할 수 있으면서 손해 될 것은 전혀 없는 게임인 것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이 분명하지 않은데도 도덕을 실천하기 위해 승부를 던지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며 자신이 행동하면 부당한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 없다. 사람은 자신보다 상황의 힘을 더 크게 생각하고 피해자가 죽을 만큼 불편해하고 힘들어하는 것보다 자신이 조금 불편하고 힘들 수 있는 상황을 더 많이 고려한다.


 방관하기 이전에 적극적으로 선생님과 교육청과 경찰서에 해당 사실을 신고하고, 피해 학생의 상태를 적극적으로 조사하여 증거 자료를 수집하고 가해 상황에 크게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심지어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가해자를 저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여 피해 학생에게 평온한 일상을 되돌려줄 수 있고 학교의 부조리를 뿌리 뽑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방관자들은 자신에게 불똥이 튀기는 것이 걱정되어 '내 일이 아닌데 괜히 손 벌리고 싶지 않다.', '자기 일은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힘들었으면 피해 학생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가해 학생이 충분히 반성하고 있고 피해가 크지 않은데 이쯤에서 마무리 하자.', '나도 무서운데 누구를 도울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다.'는 둥의 말을 할 뿐이다. 자신이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만들어 손실을 줄이는 편을 택하는 것이 심적으로 더욱 편안할 테니.


 방관자들도 자신의 행동이 부당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영웅이 되고 싶지 않은 자는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것이더라도 무언가를 포기하면서까지 영웅이 되길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방관자들은 자신이 영웅이 될 수 없었던 이유를 말한다. 피해자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불구경만 했던 자신의 행동이 아무리 모순적이더라도 자신은 깨끗해지길 원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인지부조화 때문에 피해 사실이 밝혀진 후에야 가슴 아파하고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말아야 하지만 자신은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얘기이 줄곧 생기는 것이다.




 방관자에겐 피해자가 얼마나 힘든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단 가해자가 자신을 괴롭히게 되는 것이 무섭다. 피해자를 돕는 과정에서 남들에게 튀어 보이기 싫다. 자신이 이 문제에 끼는 것이 두렵다. 정의로운 누군가에 의해 모든 것이 밝혀졌을 때 자신을 철저하게 변호하는 것이 더 이롭다. 자신에겐 아직 정의가 남아있지만 아쉽게도 피해자를 돕지 못했다며 탄식하는 것이 쉽다. 자신과는 관련 없는 문제였다 기억 한편으로 묻어두는 것이 편하다.


 인간관계는 아릅답지 않다. 인생에서 끔찍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자신에게 선의를 품고 악인들과 당당히 맞서 싸워주며 기꺼이 구원해 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대다수의 사람은 이를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문제에 휘말린 누군가를 평가질할 것이다.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쟤는 왜 가만히 맞고만 있지?' 하면서.


 방관자들에게 정의로워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태어나서 살아오길 정의보다 실리를 추구하며 살아온 자들이다. 그 실리란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단 한 방울의 피해도 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적어도 이런저런 두려움에 절어 피하고만 있는 방관자 당신들을 스스로 좋게 포장하지는 말아라. 피해자가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칠 때 좋게 봐주진 못할 망정 가해자가 무서워 그들의 행동을 따랐을 뿐인 자신의 모순적인 행보를 감추기 위해 '쟤가 저러니까 괴롭힘이나 당하지.' 하며 욕하지나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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