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나의 첫 카메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욕심이 없었다고 한다. 흔한 인형, 장난감 등을 부모님에게 한 번도 조른 적이 없다고 한다. 내 기억 속에는 가지고 싶었던 것을 다 가지고 살았던 것 같은데, 아빠의 기억 속에는 욕심 없는 착한 딸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 크게 없었던 것 같아서 말을 안 했을 뿐인데 부모님은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눈치를 보고 가지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은 속 깊은 첫째 딸로 기억하고 있더라.
가끔 아빠와 술을 한 잔 기울일 때 ‘나의 첫 떼’에 대해 말을 한다. 아빠가 기억하는 나의 첫 욕심이었다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철이 없었던 15살의 어린아이였다. 15살 때, 갑자기 DSLR 카메라가 가지고 싶었다.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진지한 이유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아마 DSLR 가방을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여 사달라고 무작정 졸랐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100만 원가량했던 카메라를 적당한 이유도 없이 가지고 싶다고 해서 사주는 부모님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당연히 반대를 하셨다.
그 당시에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처음으로 바닥에 누워서 가지고 싶다고 엄청나게 떼를 썼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엄마는 강경하게 안된다고 했고 나도 제 풀에 지쳐 포기를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가 출근을 하지 않고, 동생과 나를 데리고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시내에 위치한 하이마트에 데려갔다. 카메라를 사주려고 데려온 것이었다. 그것도 엄마 몰래.
얼떨떨하긴 했지만 엄청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내가 알아본 가격보다 30만 원에서 50만 원가량 비싼 카메라를 보니 고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당시에 내가 사고 싶었던 카메라는 DSLR로 유명한 캐논과 니콘 브랜드의 카메라였는데, 거의 200만 원에 가까이하는 가격표를 보고 망설였다. 아마 아빠도 100만 원 정도 안 되는 가격을 생각을 하고 왔는데, 가격대가 비싼 카메라들을 추천해 주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소니 카메라를 고르며 이게 내가 원래 가지고 싶었던 카메라라며 아빠에게 사도 되냐고 물어봤고, 아빠는 흔쾌하게 ‘가지고 싶으면 사는 거지’라고 말을 했다. 나는 일단 DSLR을 가질 수 있다는 거에 너무 신나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지하게 카메라를 배울 생각도 없던 중학생에게 100만 원짜리 카메라는 너무 사치였다.
집에 오는 차에서 카메라를 만지는 나를 백미러로 아빠가 쳐다보며 ‘그렇게 좋냐’라고 물어보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엄마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큰돈을 썼으니 아빠도 눈치가 보였는지, 마트에 가서 수육을 할 재료를 사서 엄마가 퇴근 전에 아빠가 근사한 한 상을 차려줬다. 물론 엄마에게 아빠와 나는 꾸지람을 들었지만, 성적을 올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이후로 고등학생 3학년때까지 어딜 가나 내 분신처럼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그러다가 핸드폰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고, 대학교를 가고 하다 보니 이 카메라를 본가 집 한 구석에 두고 꺼내보지 않았다. 그리고 독립을 하고 나서 카메라를 챙겨 왔는데, 이 카메라는 중고로 팔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간직을 했다. 아빠에 대한 고마움과 내 분신 같았던 이 소중한 카메라를 어딘가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핸드폰 카메라 성능보다 못하고 배터리도 오래가지 못하지만, 이 카메라는 단순한 카메라가 아닌 내 소중했던 추억을 담아준 보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빠와 술 한잔 할 때, 왜 그때 카메라를 사줬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아빠가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15살의 내가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고 어린아이처럼 떼를 썼던 게 반가웠다고 한다. 한 번도 이렇게 떼를 써본 적이 없는데 비싸더라도 사줘야 후회를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때 카메라를 사준게 후회가 되지 않고, 아빠도 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인화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나를 보며 참 잘 사줬다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고 적지 않은 돈을 버는 지금. 아직도 이 카메라는 애착이 많이 간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찍어주고, 카메라 사용법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공부를 하고, 친구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선택해서 잘 나온 사진들을 인화해서 선물해 주고, 했던 좋은 기억이 이 카메라와 가득하다.
물론 29살의 나는 다른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지만, 취미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게 된 첫 시작점은 이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만약 그때 아빠가 카메라를 사주지 않았다면, 나이가 들어서 갑자기 카메라를 사겠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개발자의 카메라’의 첫 시작을 나와 처음 시작했던 이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