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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하 Jun 18. 2024

집안 내부 탐구 생활, 그리고 적응력

목발에서 비롯된 이동제한. 생각보다 답답하지만은 않다

2024년 2월 3일. 이태원에서 친구들과 아시안컵을 보고 집에 걸어가고 있었다. 적당한 알딸딸함과 함께 평온히 혼자 집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기분도 좋고 마음도 편안했지만 한남동의 인도는 그날 새벽 유독 미끄러웠다. 엇. 털썩. 앞에서 천천히 달려오는 차에 놀라 혼자 저항 없이 넘어지며 왼쪽 발목인대는 완전파열되고 왼쪽 종아리뼈는 골절되었다.


며칠 후 수술을 하고 7일 동안의 병원생활 끝에 집에 왔다. 목발과 세 달 이상의 동거생활이 시작되며 나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 사무실에 다녀오는 것을 제외하면 집에만 박혀있게 되었다. 앞날이 캄캄..


하다고 불평하면서 울상이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아까웠다. 하루의 80% 이상을 내 방에서, 20% 정도를 거실에서 지내며 맨날 외출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급속도로 내 방과, 그리고 집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올해 1월부터 재택을 안 하고 매일 출근을 하며 집은 저녁을 먹고 잠을 자고 유튜브를 보는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삶의 전부를 책임지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물론 다시 걷게 되는 그 순간 나는 또다시 매일 외출을 하겠지만). 하루종일 집에 있다 보니 평소에는 신경도 안 쓰던 거실에 걸려있는 액자를 탐구하고 일하면서 책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방창틀에 있는지도 몰랐던 곰방이를 보고 바로 제거하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거실에 걸려있는 액자 (1/125, F2.8, ISO 200)
액자를 탐구하다 비치는 동호대교가 아련해 보였다 (1/250, F2.8, ISO 200)
그닥 정갈하지 못한 책상 위의 아기자기함 (1/40, F5.6, ISO 320)
일을 마치고 곰팡이를 제거하니 술이 땡겼다. (의사 선생님 말씀: "한번 마셔보세요. 어떻게 되는지") (1/320, F2.0, ISO 2500)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고 힘들 줄 알았지만 알아채지 못한 집이 주는 안락함을 느끼고 있고 얼른 손 봐야 할 것들이 보인다 (곰팡이를 그냥 둘 수는 없지). 다르게 말하면 편하고 심심하지가 않다.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제한된 환경과 상황에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안정감을 찾고 아웃풋을 내려고 하는 느낌이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시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뭐든 해보려 하는 마음이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렇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응이 되었다고 해서 외출하기 싫은 건 절대 아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바깥세상 탐방.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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