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앉아서 쉬려다 어쩌다 보니 초면에 수다를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목적지가 없던 있던 터무니없이 멀지 않다면 무조건 걷는 걸 선택하는 편이다. 참고로 드디어 발목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일상생활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의 걷는 게 가능해져 당분간은 예전보다 더 행복하게 설레하면서 걸을 것 같다.
예전에는 걷는다면 무조건 이어폰이 나의 청각을 책임졌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자동차의 엑셀과 브레이크 소리는 내게는 소음공해로 느껴졌기에 외부 소리 차단용으로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어폰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가 힐링 모먼트로 변환된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시내버스의 문 열리는 소리, 아이들의 소박하면서 우렁찬 걸음걸이까지 이제는 소음공해가 아닌 평온한 소리로 들린다.
발목에 오랫동안 자리했던 철심을 제거 후 목발을 과감히 버리고 나는 바로 한강진으로 향했다. 오후 4-5시의 애매한 시간이었지만 사람들로 북적였고 여기저기서 수다소리가 흘렀다. 음악을 안 들으면서 걸으니 시야가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눈앞에 펼치진 연한 색상의 광경에 진한 색연필 터치 하나가 추가된 느낌이랄까.
한강진을 자주 가지는 않고 아는 곳도 별로 없지만 이 동네가 주는 아늑함과 평온함이 있다. 노을의 시간이 점차 다가오자 아늑함은 배로 커졌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 모두가 묘하게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주변의 소리를 필터링 없이 들으며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내게 가장 큰 힐링 모먼트다. 노을의 시간 직전이 주는 아름다운 색상과 다 색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면 나도 모르게 나의 마음이 힐링이라는 알맹이들로 가득 차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다리 회복이 아직 100%가 아니다 보니 5분만 걸어도 숨이 차고 다리에 통증이 올라온다. 자연스레 눈앞에 보이는 카페에 앉아 카페라떼 한잔을 마시며 사람들 구경을 했다. 그러다 나와 같이 카메라를 들고 커피를 마시던 한국에서 8년째 일하고 계신 미국인 한분이 무슨 카메라인지 질문과 함께 1시간 이상의 수다를 이어나갔다. 각자의 일얘기를 하며 지나가는 강아지들과 사람들을 사진기에 담아냈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수다 세션 중 시간을 보니 벌써 저녁시간이 다가왔다. 서로 만나서 반가웠다 인사 후 나는 나긋히 집으로 걸어갔다. 아주 만족스러운 힐링 나들이었다. 3달 만에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고 날씨가 좋아서 행복했으며 정다운 이야기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어찌 보면 행복해진다는건 엄청난 임무나 목표가 아닐 수 있겠다. 목적지 없이 동네를 걸으며 사람 구경을 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 비슷한 관심사를 토대로 이야기도 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 하루였다. 매일 순간순간을 눈과 귀에 정성껏 담는 것 자체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삶의 만족을 느끼며 그렇게 소소하게 행복해지는게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