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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들 Nov 02. 2023

플랑드르 미술의 세 폭 제단화

수리

플랑드르는 프랑스 북쪽 지금의 벨기에와 네덜란드 지역을 일컫는다. 플랑드르는 모직공업과 국제무역으로 경제활동이 크게 부흥하였고 이와 함께 부유한 시민계급이 형성되었다. 이들의 주문으로 이루어진 미술은 이전 귀족계급의 미술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면서 종교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사실적으로 반영된 새로운 미술을 발달시켰다. 15세기의 이탈리아 회화는 원근법이나 명암법, 고전의 발견 등 이론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회화의 가치를 높인 반면 플랑드르 회화는 여전히 고딕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적인 힘보다는 경제력이 우선하였던 플랑드르 지역의 미술은 비교적 소품이며 사적이고 친밀함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부유한 시민계급들은 귀족들을 모방해서 미술품들을 주문하였는데, 귀족들은 필사본이나 금속 공예품과 같은 값비싼 매체들을 주로 주문한 데 반해 이들은 제단화라는 매체를 선호했다. 제단화는 값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그림의 장면에 자신들의 실제 모습을 넣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제단화는 신흥 부르주아들이 획득한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과시하고 세속적인 욕망을 표현해줄 수 있는 새로운 매체였다. 성당 내 제단을 위해 엄청난 비용이 드는 제단화를 주문하는 것이 봉헌자인 자신과 가문의 영광을 위하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알리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기후적으로 습한 조건 때문에 프레스코화가 저조하였던 플랑드르 지역에서 제단화가 수용되자 급속한 발전을 보이며 제단화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에 15세기 세 폭 제단화는 플랑드르 제단화의 형식적 특징을 나타내게 되는데, 바로 이탈리아의 프레델라(하단에 위치한 수평의 작은 패널)를 생략하고 고정되어 있던 상단의 양쪽 날개를 열고 닫을 수 있는 형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러한 제단화의 황금기는 마치 현장을 그대로 살린 듯한 사실적인 회화를 탄생시켰다.


로베르 캉팽 <메로데 제단화> 1472년경, 패널에 유채, 64.1X117.8cm,뉴욕,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시민이 주문한 이 그림은 비현실적으로 미화된 귀족 주문의 필사본 그림과는 달리 매우 생생한 도시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세 폭의 제단화 중에서 가운데 수태고지 장면의 마리아가 있는 방의 모습은 당대 가정집의 내부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창문은 위아래를 따로 열 수 있는 방식이며, 나무로 된 천장은 격자로 엮어져 있고, 물을 담는 커다란 포트 옆엔 면 수건이 걸려 있다. 오른쪽 패널엔 남편 요셉이 그려져 있는데, 이 광경 또한 당시의 목공 작업실처럼 보인다. 그리고 창 너머엔 지붕을 삼각형으로 한 북유럽 특유의 집들이 뺵빽한, 바쁜 도시의 풍경이 정교하게 묘사되었다. 왼쪽 패널에는 이 그림의 주문자인 잉겔브레히트 부부가 그려져 있다. 제단화의 또다른 장점은 그림의 장면에 자신들의 실제 모습을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그림에 자신들의 집이나 생활도구를 넣을 것을 계약서에 명시하였다고 한다.



후고 반 데르 구스 <포르티나리 제단화> 1475-1476년경, 253X586cm, 패널에 유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이러한 사물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주문자의 강조는 15세기 후반 후고 반 데르 구스의 그림에서 더욱 매력적으로 나타난다. 이 그림의 주문자인 포르티나리 가족은 작고 그들 뒤에 그려진 이들의 수호성인들은 거대하다. 그리고 원경으로 이어지는 배경의 인물들은 또다시 아주 작게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일관성이 없는 인물의 비례는 마치 중세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대상의 묘사는 놀랍도록 사실적인데, 배경의 쓸쓸한 풍경은 플랑드르의 늦가을을 연상케하며 수호성인과 주문자 가족은 부유한 시민계급의 세련된 차림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목동들의 모습은 거친 들판에서 일하다가 막 뛰어온 듯한 순간적인 모습이며 투박하고 생기가 넘친다. 주문자를 대담하게 양쪽에 배치하고 목동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현실감을 더해주는 플랑드르의 전통적인 세 폭 제단화의 특성이 나타난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쾌락의 동산> 1505-1510년경, 220X389cm, 패널에 유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반면에,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반 에이크 전통의 리얼리즘과는 매우 다른 환상적인 그림의 세 폭 제단화를 남겼다. ‘쾌락의 동산’이라는 제목은 후대의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지은 이름이며 보스의 일생에 대해 제대로 알려져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일평생을 플랑드르 남단 지역의 시골에서 보낸 보스가 이런 창의적이고 환상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많은 의아함이 남는다.


쾌락의 동산은 바깥 패널의 흑백의 그리자유로 그린 우주의 창조로부터 시작한다. 물과 땅과 하늘이 있는 거대한 구와 왼쪽 상단에 창조자의 모습이 있다. 상단에 쓰여 있는 말은 '그가 말씀하시자 이루어졌고, 그가 명령하시자 생겨났기 때문이네'라는 시편 구절이다. 즉 바다와 땅이 생겨난 천지창조의 3일째의 장면이며 천지를 창조한 신이 내부 패널의 타락한 사람들의 세계를 보고 크게 실망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양쪽 패널을 열면 아담과 이브의 낙원에서 인간의 탐욕의 세계를 지나 지옥으로 이어진다. 창조의 낙원은 질서 있고 평화로운 데 비해 탐욕과 지옥의 세계는 무질서하고 기괴하다. 벌거벗은 인간들이 괴이하고 거대한 파충류나 식물에게 갇히고 잡아 먹히고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며, 쾌락을 즐기는 남녀가 관음적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이러한 수많은 탐욕은 아담과 이브의 유혹이며, 타락한 인간들은 오른쪽 패널의 지옥에서 벌을 받게 된다. 음악에 지나치게 탐닉한 사람들은 하프에 매달려 죽고, 어떤 이는 머리가 새인 반인반수에게 잡아 먹히고 있다. 화면 가운데의 한 인간의 얼굴은 화가 자신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인물은 마치 방관자처럼 이 모든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다. 


보스의 그림은 중세의 종교화에서 강박적으로 연상되는 지옥의 모습에서 대단히 벗어나 있다. 때문에 이 그림은 인간성에 대한 통찰로 얻어진 교훈적인 이야기로 보인다. 당시 북유럽 예술가들이 세상과 인간의 본성을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보스는 쾌락에 빠져 지내는 인간들의 죄악이 종말을 통해 신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메세지를 담아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참고문헌

1.     이은기∙김미정, 『서양미술사』, 미진사, 2006, p.213-221

2.     박성은, “15세기 플랑드르의 겐트 제단화 연구”, 『미술사논단』, 1997


도판 출처

1.     로베르 캉팽 <메로데 제단화>: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70304

2.     휴고 반 데르 구스 <포르티나리 제단화>: https://www.wga.hu/html_m/g/goes/portinar/index.html

3.     히에로니무스 보스 <쾌락의 동산>: https://www.sothebys.com/en/videos/hieronymus-bosch-the-garden-of-earthly-del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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