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팔이 없어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조각상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라 하면 보통 그림으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조각으로는 <밀로의 비너스>가 유명하다. 평소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라도 루브르 박물관 정도는 들러야 프랑스 파리에 다녀왔다고 얘기할 수 있고, 또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 정도는 봐야지만 루브르 박물관에서 미술작품을 감상했다고 생색을 낼 수 있다. 그러니 이들 두 작품 앞에는 늘 인산인해다.
특히 두 팔을 잃은 모습의 조각상인 <밀로의 비너스>는 고대 그리스 예술의 정수로 일부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두 팔이 없어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는 이색적인 호평까지 받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상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세계 3대 박물관인 루브르의 랜드마크라 해도 손색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는 아픈 기억을 간직한 작품이다. 이 조각상의 원래 고향인 그리스의 밀로스(Milos) 섬 주민들의 입장에서, <밀로의 비너스>는 두 팔을 잃고 프랑스에 약탈당한 민족의 아픔이 서린 문화재다.
파리의 낭만과 루브르의 문화적 풍요, 그리고 <밀로의 비너스가 발산하는 예술적 아름다움에 모처럼 취해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이 작품에 담겨진 역사적 진실을 함께 새겨본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가치관이 좀 더 깊어지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조각상이 프랑스 파리 루브르에서 전시되기까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자.
프랑스 측의 주장
밀로스는 그리스 키클라데스 제도의 가장 서쪽에 자리 잡은 섬이다. <밀로의 비너스>는 이 밀로스 섬에서 출토됐기 때문에 '밀로의 비너스'란 이름을 갖게 됐다.
원래 이 비너스 상은 1820년, 당시 오스만터키 제국의 식민 치하에 놓여있던 밀로스 섬에서 그리스인 농부 요르고스 켄트로타스란 사람에 의해 발견됐다. 켄트로타스는 집을 수리하려고 땅을 파다가 이 아름다운석상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스만터키군에게 이를 빼앗길까 우려해 집에 숨겼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결국 터키 당국이 강제로 이 석상을빼앗아갔다고 한다.
며칠 후 이 비너스상의 존재는 당시 밀로스 섬 부근에 정박 중이던 프랑스 해군장교 쥘 뒤몽드위빌Jules Dumont d'Urville, 1780-1842에 의해 프랑스 본국에 보고됐다. 프랑스정부는 당시 터키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샤를 프랑수아 드리파르도Charles François de Riffardeau, 1755-1842를 통해 <밀로의 비너스>를 구입하겠단 의사를 밝혔다.
군사강국인 프랑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불이익을 입을 것을 두려워한 터키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비너스상은 프랑스로 실려 왔고, 루이 18세 Louis XVII 1755~1824에게 바쳐져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됐다는 것이 이 석상의 프랑스 유입 경로에 대한 공식적인 이야기다. 출토될 때부터 팔이 없었던 작품을 터키를 통해 프랑스정부가 사왔다는 것이다.
그리스 측의 주장
하지만, 정작 밀로스 섬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좀 다르다. 석상을 놓고 현지에서 프랑스와 터키 해군 간 격전이 있었으며, 서로 가져가려다가 팔이 잘려나가 바다에 빠졌고, 이것을 프랑스 함대가 건져서 가져갔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루브르 박물관이 밀로의 비너스>를 정식 수입한 작품으로 꾸미기 위해 남은 팔까지 더 잘라내서 아예 팔이 없는 석상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로 인해 그리스 밀로스 섬에서는 <밀로의 비너스>를 프랑스의 전시 약탈 문화재로 규정하고, 밀로스 섬으로의 이전 귀환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리스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이 문화재가 발견된 지 200주년 되는 2020년까지 반환해 줄 것을 프랑스 측에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전시 작품 중 상당수가 해외 약탈 문화재인 루브르 박물관에서 해당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1820년 당시 <밀로의 비너스>를 프랑스가 무리를 하면서까지 약탈했던 이유로는, 앞서 나폴레옹 Napoléon Bonaparte, 1769-1821 이 이탈리아에서 약탈한 문화재인 피렌체의 <메디치의 비너스(Venus de Medici)>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다. <메디치의 비너스>는 피렌체를 지배해온 가문이자 중세 유럽의 정계와 재계를 뒤흔들던 메디치 가문이 소유했던 비너스상으로,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 당시 약탈했으며 1815년 나폴레옹이 패망하자 프랑스가 다시 피렌체에 반환한 문화재였다. 나폴레옹과 항시 대비되던 루이 18세의 복고 왕정 입장에서, <밀로의 비너스>를 약탈한 것은 그만한 정치상의 업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무리해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역사와 예술이 불편한 조우를 이어가는 곳
19세기 중엽 이후 서구 열강이 전 세계를 침략하기 시작하면서 문화재 약탈이 곧 국위선양이라는 인식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팔이 잘려나간<밀로의 비너스>와 함께 세계 곳곳의 문화재가 약탈되고 파괴됐다. 인도의 상징인 타지마할의 수많은 보석들은 영국 동인도회사가 뜯어갔으며, 스핑크스의 멋드러진 수염은 영국 박물관으로 실려 갔다. 1861년경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은 베이징을 침공해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 지었다는 청나라의 원명원(圓明園)을 약탈하고 불살라 버렸으며, 병인양요 당시 침공했던 프랑스군에 의해 우리의 외규장각 도서들이 침탈되기도 했다.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세계의 문화재들이 제국주의의 욕심 속에 침략국의 도시로 모이면서 피식민지 국민들은 오늘날까지도 자신들의 조상이 만들었던 수많은 유적들을 엉뚱한 나라의 박물관에서 보게 됐다.
사람들은 적지 않은 비용과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다하지 않고 파리에 도착하면 대부분 가장 먼저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다. 그렇게 큰마음 먹고 찾은 루브르에서 제국주의자들의 전쟁과 침략의 역사를 떠올리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예술은 한없이 아름답지만 그 속에 담긴 역사의 진실은 냉혹하다. 역사와 예술이 불편한 조우를 이어가는 곳이란 관점으로 루브르를 바라보는 건 어떨까.
참고문헌
미술관에서 만난 전쟁사 - 승자와 패자의 운명을 가른 역사의 한 장면 (이현우, 어바웃어북)
도판 출처
Vénus de Mi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