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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들 Dec 01. 2023

독일 표현주의 다리파 미술과 타자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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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표현주의 다리파 미술에서 발견되는 타자화 문제에 대하여-



 표현주의를 표방하는 독일의 예술 그룹 중 하나인 ‘다리파’는 격동하는 현대의 미술의 경향들과 개인,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연결을 추구하였고 공동생활과 공동 전시 등을 중시했다. 이들은 서구 사회의 변화가 순수한 인간성을 손상시키고 자연의 가치를 퇴보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극단적 물질주의에 회의감을 느끼고 이성과 합리로 만들어진 문명을 구태로 규정했다. 다리파는 자연성과 정신성의 회복을 목적으로 했는데, 이들의 이러한 의식은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리파의 작품들은 원시적 유토피아주의를 그 사상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주로 인간과 자연이 일체가 되어 그려진다. 그들의 작품 속에서 인간은 나체의 형상으로 나타나며 인체의 형상은 파괴된다. 그림의 배경과 인간이 구분되지 않는 표현은 원시적 자연과 하나가 된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으로 묘사된 것이다. 더불어 이들은 원시미술에서의 근원성을 작품에 구현하기 위하여 섬이나 시골에서 공동생활과 공동 작업을 실행하였다. 



Erich Heckel, <투명한 하루>, 1913

 다리파의 대표적 화가인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에밀 놀데, 그리고 에리히 키르히너의 몇몇 작품들을 예시로 들 수 있다.  헤켈의 <소파 위의 누드> 속 잘 꾸며진 거실은 현대적 문명을 상징한다. 이와 대비되는 여성의 누드는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난, 인간의 순수한 자연적 상태를 강조한다. <투명한 하루>에서 헤켈은 호숫가에서 목욕하는 여성을 그림으로써 자연과 하나되고 동화된 본능적 인간을 나타내고자 했다.



Ernst Ludwig Kirchner, <일본식 양산을 든 소녀>, 1909

 키르히너는 <일본식 양산을 든 소녀>에서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과 자연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림에 등장하는 일본(일본식 양산)은 서구의 합리주의 문명과 대립되는, 신비로움에 쌓여 있는 요소이며 여성의 벗은 신체는 자연성을 상징한다. 배경에는 문명과 반대되는 원시성과 본능에 따라 축제를 즐기는 인간을 등장시켜 자신의 의도를 한번 더 강조했다. 더불어 <황금 송아지 춤>에는 자연적 본능에 따라 춤을 추는, 문명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에밀 놀데가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은 원시성을 옹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그린 것이다.



 당시 독일의 전반적 사회 분위기와 다리파가 추구했던 목적, 그리고 사상적 배경을 보면 그들이 무엇을 의도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완성된 작품 세계를 보면, 항상 타자화된 존재가 등장한다. 예를 들어 키르히너의 <일본식 양산을 든 소녀>에 등장하는 일본의 양산, 즉 일본의 문명은 당대의 서구 문명과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철저하게 다른, 그들과는 다른 미개한 문명인 것이다. 


 다리파는 원시주의에서의 유토피아를 물질화된 서구 문명 사회의 부정적 요소의 해결책으로 떠올린 것은 맞지만, 그 오리엔트적 문명 요소를 서구 사회와 동일 선상에서 동등하게 파악한 것은 아니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도시화된 독일 사회와 비교하여, 비 문명화된 원시주의적 요소는 서구인의 입장에서 단지 하나의 변화시켜야 하는 미개한 상태를 의미했다. 결국 다리파가 주장하고 추구했던 원시적 유토피아주의와 자연성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다리파의 그림을 보는 당시 독일 관객은 일본식 양산과 소재를 보며 미개한 문명임을 재확인하고, 그들이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타자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Erich Heckel, <소파 위의 누드>, 1909

 이런 맥락에서 여성의 신체 또한 마찬가지이다. 키르히너의 <일본식 양산을 든 소녀>나 헤켈의 <소파 위의 누드> 같은 작품에서 여성은 남성으로 상징되는 문명과 이성에 대비되는, 자연과 감성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등장한다. 젠더의 이분법적인 태도가 그대로 작품에 드러난 것이다. 


 위에 언급된 작품들을 보면,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벗겨진 신체에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표현은 그 신체를 가진 존재의 인간적 특성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주로 얼굴로 표상되는 사람의 감정 상태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큰 특성 하나를 가려버렸다는 것이고, 이는 여성이 오로지 육체로 환원되었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관습적인 남성 주의적 관점에서 여성은 꾸준히 자연에 대응되어 왔다. 다리파 작가들은 지나치게 이성화, 문명화된 선으로 규정된 서구 사회의 관행을 균형적으로 맞추고자 자연을 끌어내린다. 이 자리를 보충해야하는 요소를 여성과 오리엔트로 상정한 것이다. 여성과 오리엔트는, 물질화 된 사회를 타파하고 자연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에 편입은 되지만 여전히 타자의 위치를 차지한다.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자를 끌어들였고, 결국 문제 해결의 주체는 남성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리파의 그림들에 등장하는 여성과 오리엔트적 혹은 원시적 요소는 남성, 서구 사회와 동일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수단으로 포섭된 타자들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로 독일 표현주의 다리파 그룹은 왜 여성과 원시적 요소로 그들의 문제를 보충하는가?의 논란과 함께 비판을 받아왔다. 



 다리파의 화가들은 물질주의가 팽배한 당대 독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문명에서 벗어나고자 그 대안으로 원시주의적 유토피아를 찾았다. 이러한 그들의 사상은 그림에 확연히 드러나 있다. 나체의 인간과 원시성을 드러내는 춤을 추는 사람들, 일본식 양산 같은 오리엔탈리즘적 요소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자연과 여성을 타자화하고 위계화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다리파가 활동했던 시기는 20세기이므로, 현대에 와서 이러한 비판점들을 가지고 작품을 고치라고 하거나 혹은 그들의 사상에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의 그림은 영원히 남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이들이 생각했던 것을 따라하지 않도록, 즉 오리엔탈리즘으로 상징되는 원시적 자연성이나 여성을 타자화하고 위계화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이러한 비판점들을 꾸준히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경남. "독일 표현주의의 회화에 관한 연구." 2001. 

조연주.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작품에 나타난 공동체 의식 연구." 2020. 

성민선. "독일 표현주의에서 키르히너와 놀데의 회화 연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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