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D-14
초등학생 시절 (벌써 20여 년 전) 방학숙제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생활 계획표 짜기.
학교를 나오지 않으니 집에서 충실히 계획 짜고 생활해라. 대충 그런 취지의 숙제였던 것 같은데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게 바로 그거다.
며칠 전부터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오늘 하루 굉장히 바빴는데 한 게 없는 것 같은 느낌.
아껴뒀던 연차를 몰아 써서 반강제로 퇴사를 간접체험 하는 중인데 출근을 안 하니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이게 쉰 건지, 일한건지, 그냥 돌아다니기만 했던 건지 가늠을 할 수 없는 지경.
8년간 회사가 짜준 시간표 안에서 살았는데 회사 없이 홀로서기를 하려니 방학 맞은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랄까.
이렇게 하루 이틀 흘려보내다 보면 정리되지 못한 상태로 몇 개월이 훌쩍 흘러가 있을 것 같아서
퇴사 후 실천에 옮길 생활 계획표를 짜보기로 한다.
근무 시간은 회사 다닐 때와 같거나 조금 더 많이, 점심시간은 넉넉히 한 시간 반.
하루 중 최소 한 시간은 자기관리하는 시간, 이왕이면 남편과 함께.
대충 6등분 정도 해서 할 일들을 적어 놓으니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인다.
어릴 때는 생활 계획표를 짜기만 하고 제대로 지켰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과연 어른이 된 지금의 나, 잘 지킬 수 있을까?
괜히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어른이의 방학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