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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Nov 13. 2024

매혹적인 이야기만으로 제주4.3을 들려주기에는 부족하다

고명철 교수의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비판적 읽기③

[특별기고]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비판적 읽기③    
"매혹적인 이야기만으로 제주4.3을 들려주기에는 부족하다"
-2024년 10월 9일 <제주의 소리>    
국내·외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최근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른 한강. 그가 2021년 발표한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는 제주4.3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서, 제주 독자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4.3을 널리 알리는 의미에서는 반가운 창작이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4.3을 수난사 중심으로 바라봤다는 비판적인 입장도 나온다. 제주 출신 문학평론가 고명철의 분석이 그러하다. [제주의소리]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고명철 평론가의 평론을 연재한다. 4.3 문학, 나아가 4.3 예술이 더 높이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번 평론은 반년 간 ‘지구적 세계문학’(2024년 상반기호)에 발표된 글이다. [편집자 주]     


3. ‘폭설의 이미지와 시적 산문수난사 중심의 4.3해석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독한 후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희부윰하게¹⁾ 쉽게 가시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눈‒폭설’과 관련한 한강 특유의 시적 산문이 자아내듯, ‘눈‒폭설’은 언어절(言語絶)²⁾의 대참사를 겪은 피해자들(죽은 자와 산 자)에게 오랫동안 맺힌 역사의 고통과 상처로부터 떠오르는 차갑고 비정한 그 어떤 배반의 역사는 물론, 역설적이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낸 그들의 뜨거운 삶의 열정으로 새롭게 생성되는 역사의 감응력을 표상한다. 그만큼 이 소설의 서사적 매혹을 강하게 떠받치고 있는 ‘눈‒폭설’에 대한 양가성은 시적 산문의 묘미를 배가한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³⁾는 꿈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작중인물 ‘경하’가 친구 ‘인선’의 부탁을 받고 ‘인선’의 작업실이 있는 제주의 중산간 마을을 찾아가는 도정에서 조우하는 ‘눈‒폭설’과 연루된 각종 사건에 대한 ‘경이로운’ 감응력⁴⁾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작별하지 않는다’의 서사적 매혹은 바로 이 ‘눈‒폭설’이 동반하는 시적 산문의 아우라에 기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남는 여운은 ‘경하’가 ‘인선’의 작업실을 찾아가는 길에서 목도한 제주 해안가와 중산간 마을을 휘덮고 있는 새하얀 눈과 폭설의 풍경이 전해오는 4.3사건의 전대미문의 수난을 감싸안는 기억과 치유의 생생한 갈피들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4.3사건 무렵뿐만 아니라 지금‒여기에서도 중산간 마을을 집어삼킬 듯한 무서운 태세로 쏟아붓는 폭설은 중산간 일대에서 자행된 반인간적 국가폭력의 실상을 비정하면서도 가장 뜨겁게 증언하는 메타포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같은 한강의 시적 산문이 한강 특유의 서사적 매혹의 동인(動因)이라고 하더라도 비껴갈 수 없는 비판의 지점이 있다. 분명,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4.3사건은 서사의 골격을 이룬다. 따라서 작가는 4.3사건과 연관한 인문사회적 공부를 등한히 할 수 없었을 터이다. 아무리 한강이 그만의 독특한 서사적 매혹을 보증하는 소설 쓰기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4.3사건을 서사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앞서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듯이 한강이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결여하고 있는 것은, 4.3사건 안팎의 정치사회 및 문화지리에 대한 총체적 세계인식이 바탕을 이룸으로써 기존 4.3문학이 놓쳤거나 접근하지 못했거나 혹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4.3을 새롭게 해석하는 서사적 작업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서사적 결함을 피해가거나 보완하기 위해 ‘시적 산문’은 작가의 미학적 이데올로기를 매우 효과적으로 완충시켜주는 몫을 맡는다.    

 

어쩌면 한강에게 4.3사건과 관련한 예의 공부거리는 아예 관심사 밖이었을지 모른다. 한강에게 가장 주요한 서사적 관심사는 4.3사건의 역사적 피해자를 애도하는, 즉 수난사 중심의 제주 민중이 겪은 대참상을 한강의 독특한 비의적⁵⁾ 소설 쓰기로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눈‒폭설’의 이미지는 그러므로 한강에게 더 없이 훌륭한 시적 산문의 감응력을 배가하는 4.3사건의 비극을 표상하는 최적화된 메타포인 셈이다. 가령,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매우 인상적인 ‘눈‒폭설’의 시적 산문을 음미해보자.    

 

처음에는 새들이라고 생각했다. 흰 깃털을 가진 수만 마리 새들이 수평선에 바싹 붙어 날고 있다고.     

하지만 새가 아니다. 먼바다 위의 눈구름을 강풍이 잠시 흩어놓은 것이다. 그 사이로 떨어진 햇빛에 눈송이들이 빛나는 것이다. ㉠해수면이 반사한 빛이 거리 곱절로 더해져, 흰 새들의 길고 찬란한 띠가 바다 위로 쏠려 다니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강조-인용, 59쪽)    

 

일어나서 움직여야 한다. 더 체온을 잃으면 안 된다.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 ㉡가야 할 방향도 모른다.(중략)     


그 잠깐 사이 이렇게 어두워진 걸까.     


그러지 않았다고 믿었지만 나도 모르게 정신을 잃었던 건가.   

  

떨리는 왼손을 들고 소매를 걷어본다. 눈앞에서 손목시계를 만져보지만, 이미 스스로 알던 것처럼 바늘들은 야광이 아니다. ㉢보이는 것은 암흑뿐이다.   

  

(중략)   

  

내가 잘못 들어서서 미끄러져 내려왔고 지금 누워 있는 이 길은, 길이 아니라 건천인 것 같다. 우묵하게 파인 지형에 살얼음이 얼어 있었고 그 위로 눈이 쌓인 것이다. (중략)     


문제는 내가 얼마나 멀리 미끄러져 내려왔는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삼사 미터일 수도 십여 미터일 수도 있다. ㉣이 어둠만 아니라면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거다. 라이터 하나, 성냥갑 하나라도 주머니에 있다면.(강조-인용, 125-128쪽)     


㉠~㉣은 ‘작별하지 않는다’의 ‘눈‒폭설’의 메타포가 작중인물과 4.3사건의 관계를 잘 드러낸다. ‘경하’의 시선에서, 제주의 수평선에 걸린 눈 폭풍은 ㉠처럼 ‘착시’로 다가온다. 그런데 머지않아 이 눈 폭풍의 착시는 ‘눈‒폭설’의 날씨로 제주의 중산간 마을과 ‘경하’를 엄습한다. 이것은 4.3사건의 역사에 대한 메타포로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만큼 해방공간의 제주를 에워싼 어떤 새롭거나 가공할 정치 사회적 기운의 엄습을 ㉠처럼 표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 ㉢,㉣에서 확연히 읽을 수 있듯, ‘경하’가 폭설이 쏟아붓는 중산간 마을의 한밤 길을 잃고 발을 헛디뎠는지 건천에 빠진 채 방향을 가늠할 수 없어 자칫 동사(凍死)의 위기에 놓인바, 이 일련의 시적 산문이 함의하는 4.3사건에 대한 작가의 정치적 무의식이 그동안 악전고투 속에 진전시킨 4.3사건의 역사적 진실에 둔감하든지 퇴행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경하’가 이러한 험난한 역경을 거치며 ‘인선’의 가족사로 대변되는 4.3사건의 상처와 고통을 조우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하’의 ㉡,㉢,㉣과 연관한 시적 산문이 우려되는 점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지배하고 있는 역사의 광풍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이것에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강에게 4.3사건이 수난사 중심으로만 다가오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한강에게 ‘인선’의 가족이 살았던 중산간 마을은 여느 중산간 마을 또는 제주의 곳곳에서 속절없이 무고하게 희생당한 양민의 학살 현장으로만 유의미한 공간이지, 그곳이 무엇 때문에 주민들이 집단 학살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방홧불’의 폐허로 남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제주의 중산간 일대가 피해와 수난의 현장만이 아니라 해방공간에서 조국 분단을 저지하고 평화적 통일독립 국가의 정치적 상상력을 ‘봉홧불’로 타올랐던 제주 민중의 항쟁과 혁명의 공간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관심이 전혀 없다.     


한강에게 제주의 중산간 일대는 ㉠의 눈 폭풍이 제주를 고립시켜 ㉡,㉢,㉣에서 표상하듯, 역사의 어둠 사위에서 제주 민중의 삶의 방향 감각을 잃게 된 채 국가폭력의 역사의 광기로 희생을 당한 ‘애도와 추모’의 서사적 공간의 가치를 가질 따름이다.      


정리하면, 한강에게 ‘눈‒폭설’의 이미지와 작중인물과 4.3사건을 에워싼 시적 산문은 수난사 중심의 제주 민중을 향한 ‘애도의 서사’의 미학을 전유하는 것으로, 한강의 시적 산문이 ‘재현의 윤리’에는 충실할지 모르지만, ‘작별하지 않는다’가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재현의 정치’에는 비판적으로 검토할 문제가 제기된다.      


[옮긴이 註]

1) 희부윰하다 : 빛이 희고 좀 부옇다.     

2) 언어절(言語絶) 인간이 사용해온 언어로는 그 참사를 설명할 수도, 묘사할 수도 없을 때를 말함.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어떤 악행도 그 악행에 필적할 수 없기에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것.     

3)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9쪽. 이하 각주 없이 본문에서 해당 (쪽수)를 표기. (필자의 註)  

4) 감응력(感應力) : 자신의 내면과 외부 세계에서 에너지의 흐름과 양상을 읽어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를 수신하고. 가장 높은 주파수의 에너지를 찾아 그것과 어우러지는 능력을 말한다.     

5) 비의적(秘儀的) : 신비한 또는 난해한 (=esoteric) (秘儀 : 비밀스러운 종교 의식)    


고명철 교수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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