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양훈 Nov 15. 2024

초승달

한강 산문집『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中

초승달

노오란 눈물 흘리면

그 눈물 따다

곱게 목걸이 만들어 걸고

그대의 나라로 가리     


기다린다고

기다린다고

하얀 어깨 들썩이던 그대를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말해 주며 그대 품에 안기리     


언젠가는


이상은이 강변가요제에 나와 탬버린을 흔들며 <담다디>를 부르는 공연 실황을 나는 텔레비전으로 봤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래전의 일이다.     


“음, 저 사람이 대상이다.”

“그렇지? 내 생각도.”     


함께 보던 어린 동생과 그렇게 의견을 같이하고는, 예상이 맞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이상은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노래 잘하는 대중가수라는 느낌, 나름으로 호감을 주는 성격이라는 느낌 정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퍽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늦은 시간에 켠 텔레비전에서 그녀를 다시 보았다. 단순한 무대 가운데 긴 스툴 위에 앉아, 여위고 성숙해 보이는 얼굴의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 진지하게 노래했다.     


외롭고 웃긴 가게에 들어오세요

오렌지색 가발을 쓰고서

시간은 흐르고

빛을 뿜어요

새들이 헤엄치듯이

거짓말처럼

거짓말처럼     


나를 그때 감동시킨 것은, 그녀가 그 독특한 노래를 부르며 정말로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온전히 그녀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담담히 말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그녀가 무엇을 겪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한 사람이 그렇게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그 뒤 ‘아시아식 처방’이라는 시디를 사서 들으며, 그녀가 아이돌 스타였던 시기에 가장 불행했다는 것, 탈출하듯 유학을 떠나 그림을 배웠다는 것, 긴 모색 끝에 자신의 음악을 들고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이력 때문일까.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먼 길 위에 혼자 있는 사람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서 있거나, 걷고 있거나, 노래하고 있거나.     


파도가 뭍으로 밀려온다. 모든 것이 밀려오듯 다가와서, 모든 것이 밀려가듯 물러난다. 무한히 반복되며 밀물과 썰물이 유려한 곡선을 그린다.    

 

달이 그렇게 한다. 찼다가 기울며 바다를 끌어당기고, 놓아주고, 다시 끌어당긴다. 달이 찼다가 이지러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차오르는 리듬, 바다가 밀려왔다 물러가고 다시 밀려오는 리듬,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다시 나무가 불꽃럼 피어오르는 리듬.   

  

파도의 그 철썩이는 리듬 위로 이 노래는 불린다. 내면이 느껴지는, 섣부른 기교 없는 이상은의 목소리는 달빛처럼 파르스름하다. 처연한 내용의 가사와 선율을 담담히 가라앉혀주는 건 저 파도 소리다.


밀려왔다가…… 침묵, 밀려갔다가…… 침묵, 다시 밀려갔다가…… 다시 침묵, 그 고요하고 무한한 리듬 때문에, 유한한 이 노래는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한강 산문집『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초승달)

"지금 생각해 보면  '담다디' 때 나는 꼭 명절에 친척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나중엔 너무너무 창피하고 화가 났다. 어떻게 내 자신이 그랬나 싶을 만큼. 그때 어른들은 나보고 그랬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그랬던 너 자신이 귀여워질 거라고. 그 말에 코웃음치며 만든 음반이 <공무도하가>다. 미국까지 멀리멀리 방황하다 돌아온 것이다. 지금은 그게 결국 나였구나 하는 것을 알 것 같다. 멀리 도망을 갔다가 와서 방에 누워 있는데 문득 그때가 그리워지는 거다. 그럴 때 깜짝 놀라며 알게 된다. 그 두 가지가 다 나라는 것을. 친척들 앞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를 부르는 것도, 사르트르나 니체를 읽는 것도 나였다." -이상은

公無渡河歌(공무도하가)
---
公無渡河
임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임은 끝내 물을 건너셨네
墮河而死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가신 임을 어찌할꼬

고조선 시대에 창작되어 기록상 현존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로, 공후인(箜篌引)이라고도 한다. 저자는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아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거울 저편의 겨울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