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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거리를 헤매노라면

백석 번역의 푸시킨 詩

by 김양훈

소란한 거리를 헤매노라면¹

푸시킨


소란한 거리를 헤매노라면,

사람 많은 교회로 드노라면,

철없는 젊은이들 속에 끼여 앉노라면,

나는 하염없는 생각에 잠기여라.

이 내 하는 말 ― 세월은 살 같이 내달아,

여기 우리네 얼마나 눈에 띄기로,

우리 모두 같이 영원한 하늘 밑으로 가는 것이여라 ―

그리고 누구의 때는 이미 가까웠어라.

공도란히² 선 참나무 하나 바라보노라면,

이 내 념하는 마음 ― 뭇 나무의 군왕은

그는 내 조상들의 세대를 지나쳐 살 듯이,

이 내 얼빠진 세대도 지나쳐 살아갈 것이다.

귀여운 어린이를 내 어루만져 사랑하노라면,

어느덧 이 내 생각 ― 용서하라!

내 너에게 자리를 내여주마,

나의 때는 썩고 네 것은 꽃이 피나니.

날은 날마다 해는 해마다

그 가운데 앞에 올 죽음의 기일

애써서 알아 마치려 하며,

골돌한 생각 속에 보내는 내 버릇.

그 어데랴, 팔자가 내게 죽음을 보낼데는?

싸움판에, 방랑의 길에, 물결 속에?

아니면 이웃한 골짜기

내 싸늘한 송장을 받아들일려나?

아무 것도 모르는 몸둥이여라,

어데서 썩으나 다름이 있을리야,

그러나 살틀한 지경 가까이

나는 그대도록 영원히 눕고 싶어라.

죽음으로 들어가는 길 어구에서

젊은 목숨이 놀게 두어라,

아무런 시름도 없는 자연이

영원한 빛에 빛나게 하라. (1829년 30세)


[옮긴이 註]

1) 1828년 12월에 푸시킨은 모스크바로 왔다. 그리고는 모스크바에서 최고의 미녀 곤차로바와 무도회에서 처음으로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1829년 4월에 푸시킨은 마침내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다. 그러나 푸시킨은 성급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청혼에 대한 답변도 듣지 않고 카프카즈로 여행을 떠났다. 한편 이와는 다르게 곤차로바의 어머니가 푸시킨의 청혼에 강하게 반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암튼 그 여행은 푸시킨에게 내려진 황제의 여행 금지령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었다. 이 시는 이런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2) 공도란히(≒외로이) : "공도란히"는 "외로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표현으로, "홀로 되거나 의지할 곳이 없어 쓸쓸하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외로이"와는 달리 "공도란히"는 특정한 문맥에서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공도란히 지내던 시절이 생각나요"와 같은 문장에서 사용될 수 있다.


[詩評]

백석의 푸시킨 번역 시(詩)는 언어의 변환을 넘어, 푸시킨이 창작한 러시아 대륙의 감수성을 조선어의 정서로 재창조한 문학 행위다. 특히 위 작품에서 드러나는 죽음의 명상과 자연 속에서 찾아낸 영원성에 대한 성찰은, 백석의 번역을 통해 조선의 미의식과 정조(Tone)로 바뀌어 재탄생한다. 이는 원문의 구조와 이미지를 충실히 보존하면서도, 러시아어가 갖는 정조를 한국적 정서의 결로 다시 짜는 섬세함을 보여준다.

원문에서 푸시킨은 도시의 소란과 젊음의 소동 속에서 문득 찾아드는 죽음의 예감을 묘사한다. 이는 어느 순간 삶의 덧없음을 깨닫는 내면의 흐름을 백석은 부드럽고 호흡의 긴 조선어 문장, 그리고 구어적 리듬을 통해 구현한다. “소란한 거리를 헤매노라면”과 “하염없는 생각에 잠기여라”와 같은 표현, 즉 작품 속 화자의 이어진 독백은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의 사색에 동반하게 만든다.

또한 백석의 번역은 세대 교체라는 시의 중심 모티프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형상화한다. “나의 때는 썩고 네 것은 꽃이 피나니”라는 구절은, 원문의 생물학적·철학적 대비를 넘어서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조선 전통이 갖는 순환의 미학을 강조한다. 이는 푸시킨의 딱딱한 훈계보다 백석 특유의 정감어린 삶의 철학으로 치환된다.

언어 선택에서도 백석의 언어 미학이 돋보인다. “얼빠진 세대”, “살틀한 지경”, “골돌한 생각” 등은 현대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고전적 어휘다. 백석은 이들을 사용함으로써 시의 공간을 비현대적·영원한 시간 속으로 돌려놓는다. 그래서 이 시는 특정한 역사적 과거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인간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사색의 장이 된다. 이는 원문의 철학적 명상을 동양적 무상감(無常感)과 접속시키는 언어 전략이다.

원문에서 푸시킨은 죽음을 공포가 아닌 자연 회귀의 과정으로 노래한다. 백석은 이를 더욱 선명히 조율하여, “자연이 영원한 빛에 빛나게 하라”는 종결부를 해탈의 정서, 곧 자연과의 평화로운 합일로 번역한다. 이는 서구 합리주의가 갖는 죽음론보다 불교적·샤머니즘적 세계관에 가까운 영혼의 귀속감으로 변주되며, 러시아의 영원성(вечность)이 동양의 생명 순환(순환적 생명관)으로 변환된다.

그래서 백석의 번역은 원문에 충실함을 넘어, 문화 간 정서와 세계관을 중개하는 시적 해석의 결과물이다. 백석은 원문의 구조·이미지·철학을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언어적 감각과 정서를 명확히 한글의 고유한 리듬과 음율로 재조립한다. 백석의 러시아 번역시를 두고 평론가들이 이것은 번역이 아니라, 또 다른 백석의 시 창작물이라 비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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