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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과 헤어짐

헤어진다는 그 의미에 대하여

나는  그동안 숱한 이별(離別)을

경험했다.


어렸을 때

아마 국민학교 2학년 때 즈음

친한 친구를

더이상 볼 수 없는 세상으로 보냈다.


그리고 2년 후

나를 낳고 길러주신 어머니를

하나님은  불렀다.

목발을 짚고 간신히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던 막내아들을

남겨두고 떠나야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하나님은 알고 계실까?


렘브란트의 작품

아브라함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제물(祭物)로 드리기 위해

제단(祭壇)이 있는 모리아 산으로 향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이지만

"내게 바쳐라"고 명령하시다니.

게다가 아브라함의 나이 일백일십오세인데.

사흘간 사춘기(思春期)  아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브라함의 마음에

이와같은 질문이 있지   않았을까?

'당신은 내 마음을 아시나요?'


그리고 죽마고우(竹馬故友)를

먼저 보내고  그의 아내의 눈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슬픔의 눈물을

보면서 ...


나이들어 아버지도

구십세라는 나이에

편하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종묘(宗廟)  담  너머 파란 하늘이

이제 이 땅에 남은 오남매(五男妹)의 맞이인

큰누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부모가 떠난 뒤

이제 자녀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큰누님이 앞장  서게 되니

그 다음 형제가 다음 순서가 될 것이고

조만간에 나의 순서가

쉬 다가오리라고 생각하니

착잡하기보다 준비를 잘 해야겠다는

다짐이 앞선다.


일주일 전만 해도

서로 이름을 부르며

생사확인(生死確認)을 했는데

이젠 한 줌의 흙이 되어

땅과 하나가 되니...


인생(人生)도

세월(歲月)도

누구의 말대로 "덧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떠남과 이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리라.


이 땅에 온 것도

내 의지(意志)와 무관했던 것 처럼

떠나는 것도 매한가지이다.


가끔 낙태(落胎), 살인(殺人)  등의 행위같이

사람의 마음대로

생명을 어찌하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임에 틀림없다.

삶에는 백지와  같은 여유가 필요하다

우리는

삶의 의미

만남과 헤어짐의 의미를 찾아

항상 마지막이자

시작이 되는

오늘을 가치있게 살아갈 뿐이다.


차마

이 마저도 없다면

과연 인생이

무슨 가치가 있으랴.


나는

나와의 이별

나  자신과의 헤어짐을

준비하려고 한다.


"나는 매일 죽노라."


그리고

"나는 매일 다시산다."


이 고백을 새롭게 뱉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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