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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理性)과 감성(感性)-4

서양에서의 이성과 동양에서의 감성

서양은 이성(理性) 중심의 사회이다.

소크라테스(Socrates)

"반성(反省)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Unexamined life is not worthiving.)"고  다.

여기에서

 "반성없는 삶(Unexamined life)"

이성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삶을

가리킨다.

데까르트(Descartes)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I think therefore I am.)"

"의심은 지혜의 근원이다.

 (Doubt is the Origin of Wisdom.)"이라고

말했다.


"생각한다"는 말도 이성적 사고를 가리킨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노골적으로

이성을 중심으로 책을 저술했다.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이

그것이다.


비록 칸트는

이성(Reason)을 비판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이성을 통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왜 서양철학은 "이성"의 역할을

이렇게 중시했을까?


미루어보건대 이렇게 추론(推論)하면

어떨까?

서양역사를 살펴보면

기원전부터 전쟁의 역사였다.

영토확장과 자원확보

그리고 군주제를 통한 갈등이 핵심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소위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씨앗인

토론과 합의라는 형식을 통해

의견을 모아가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따라서 가능하면 정서적 요인을 제거하고

이성의 역할을 강조했다.

설령 감정이나 정서적 측면조차도

이성의 작용 하위범주에 두었다.


반면에 한국은 어떠한가?

산과 골짜기, 시내와 강물을 중심으로

지리적 경계와 친족의 기준이 마련되고

자연스럽게 정적인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이로인해 "우리"라는 단어가

"나"라는  단어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 아내, 우리 남편"이라는

문법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말을

손쉽게 통용하기도 했다.


이런 문화와 습관 그리고 전통에는

장점이 있지만

단 합리적인 사고와 원칙을 배제하는

부분에서는 단점이 확연하다.


실질적으로

화랑제도, 유교, 불교가  정치철학의 기초였던

당시에도

합리적인 기초보다는 정서적인  가치가

더 영향력이 강했다.


소위 세속오계(世俗五計)라는 것도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통해 전수(傳受)된 것이다.


따라서 서양은 이성을 중심으로

학교(Scholar)가 활성화되었다.

한국은 가르침  중심의 서당(書堂)이

사회의 기반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고찰은 차차  진행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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