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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장애인을 만나다.

정신지체가 뭐지?

힘겹게 올라간 그곳에는 낯선 공동체가 있었다. 1957년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전쟁고아는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물론 전쟁에 참여하여 부상을 입은 상이군인(傷痍軍人:현 보훈대상자), 남편을 떠나보낸 과부(寡婦),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이산가족(離産家族)도 해결해야 할 난제(難題)였다. 더더욱 큰 문제는 북한보다 현격히 뒤처진 경제상황이었고, 정치는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태중(胎中)에 있었다. 실질적으로 문맹(文盲)에 가까운 국민수준, 한글과 한자, 일본어가 혼용되고, 일부 극소수의 지식인들은 사회주의에 깊이 빠져있고,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빨갱이와 빨치산으로 일컫는 공산주의 추종자와 자유/자본주의가 대립과 혼용되는 소용돌이에 빠져있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베이비붐(baby boom)시대를 맞이하여 인구를 증식한 채 하루살이처럼 생계유지를 위해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감당해야 하는 시기였다. 이런 와중에도 일제치하에서 친일(親日)을 한 덕에 누리던 부(富)를 마치 자유주의 사회 아래 수고한 결과를 누리는 척하며 정치-사회-경제를 넘나들며 호의호식하는 이들이 여전히 사회 지배계층을 구성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기독교정신을 갖고 전쟁고아를 위해 자신이 재산을 투입했던 자선사업가(慈善事業家)들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미군부대에서 제공하는 구제품(救製品)을 얻어다가 양식과 의복이 없는 전쟁고아를 돕는데 사용하는 헌신적인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날 이분들이 사회복지분야의 1세대들이다.

세월이 흘러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자 고아(孤兒)를 대상으로 하던 고아원에 변화가 생겼다. 전쟁고아 내지 빈민고아들이 성장해서 사회로 진출하게 되니까 고아원에 빈자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부 고아원을 운영하던 분들이 고아원을 폐쇄하고 다른 분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때 정부는 이들을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1970년 당시 국제사회에서 주요한 이슈로 떠오른 주제가 바로 "장애인(the disabled)"이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재활의학분야를 중심으로 "장애와 재활(the disabilities and the rehabilitation)"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국가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전쟁후유증으로 장애를 겪게된 사람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를 기초로 장애관련법률들이 제정 반포되기 시작했고 국제연합(UN)도 장애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세계인권선언"에 기반한 "정신지체인권리선언""지체장애인권리선언" 등을 선포하는 등 국제적인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한국에서도 장애인(당시에는 '장애'라는 용어가 부재하여 '불구자'라는 용어를 사용함)분야에 무엇이든지 해야 했다. 그래서 고아원을 운영하다가 문을 닫고자하는 분들을 설득하여 장애인시설로의 전환을 추구했다.

마치 "복지사회의 실현"이라는 구호를 가지고 출범한 전두환정권은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하여 장애인 복지시설의 근거를 마련했다.

이렇게 생긴 장애인 시설을 처음 방문한 것이다.

이때까지 내가 어렴풋이 알고있던 장애범주는 "지체, 시각, 청각"분야에 한정되었다.

나는 양복도 없었다.

형이 입었던 갈색(?) 양복에 몸을 맞추어 장애인 시설을 방문하게 되었다.

자애로운 인상을 지닌 설립자 이사장님과 대면을 하게 되었다.

"이곳은 전쟁고아를 돌보았던 고아원에서 장애인 시설로 전환하여 정신지체아를 돌보고 있는 시설입니다."

이사장님은 1957년부터의 길고긴 역사를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처럼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셨다. 나는 흥미롭게 들었다.

강의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왔을 때, 갑자기 한 여자아이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15-6세 되어보이는데 코에서 하얀 기차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빠-----"하고

소리를 지르며 두손을 벌리고 나를 향해 뛰어왔다.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안아주어야 하나? 아니야. 지금 입고 있는 양복은 형의 옷인데 저 친구의 코로 더럽히면 안되지. 아니 그렇다고 밀쳐내야 하나?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오는데."

내가 주저하고 있을 때, 마침 함께 서 있던 직원이 내 앞을 가로막아 섰다.

"이곳에 처음 오신 손님이에요."

이 한마디에 그녀의 발걸음은 멈추었다.

"정신지체라고? 뭐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다.

이렇게 해서 정신지체(현 지적장애/발달장애)인과 함께 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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