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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막혔어요

어디로 가야하나?

눈이 내리기 전

이상하게도 거리는 하얗다.

"이게 뭐지?

아직 눈이 내리기 전인데."


나는

차도(車道)를 뒤덮은 그것의 정체가

매움 궁금했다.


"여보! 땅이 하얘요."


그러자 아내는 말한다.

"염화칼륨을 길바닥에 들이 부어서...

돈이 썩었나봐...

저거 다 중국산인데...

결국 땅이 녹으면 죄다 한강으로 흘러갈텐데.

도대체.. 게다가 차도 다 망가질 것이고,

당신 전동휠체어 조심해서 다녀요.

그것도 부식되기 쉬어요."


한마디 물었더니

한 나라의 환경문제까지 걱정하는

아내의 심정이 분노로 표출되었다.


하루가 지나서 출근했다.

밤새 내린 눈은 이미 다 치웠다.

그러나 염화칼륨의 흔적은 여전했다.

주민센터에 출근하니 많은 공무원들이

게스츠레한 눈빛으로 나를 반긴다.

'밤을 꼬박 새우셨군요.

제설작업(除雪作業) 때문에 .

고생이 많군요."

해마다 눈이 내리면 보이지않는 곳에서

공무원들이 고생을 한다.

뉴스를 보니 추**의원이 서울시장을 공격한다.

"정신나간 여자.

자기는 눈 하나 치우지도 않으면서."

갑자기 누군가를 비방하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 나온다.

"어이쿠 양치해야지.

공연히 더러운 이름을 들먹거렸네."


일이 시작되기도 전에 문자가 뜬다.

"장례식... 결혼식..."

정년퇴직을 하고 난 뒤, 줄어든 수입에

축의금(祝儀金)과 조의금(弔儀金)은

꽤 부담이 된다.


퇴근을 하고 차를 끌고

조문을 나선다.

"이젠 조문할 시간이 이 때 밖에 없어."

예순 셋.

건강하고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 지인을

조문하기 위해 동두천까지 가야한다.

'흠. 한시간반은 걸리겠지?

적어도 왕복 세시간 이상 소요되네.'


캄캄한 밤에 운전을 하고

게다가 눈이 내렸던 도로는 안전하지 않고

여러가지 염려가 머리 속을 채운다.


이미 떠난 길은 예상대로 차로 가득하다.

'길이 막혔어요.'

이미 장례식장에 도착한 이의 전화에

나는 이같이 대답한다.

길은 외길.

'어디로 가야하지?'


부질없는 고민을 하며 꽉막힌 도로를 응시한다.

아포리아(aporia)

그래. 현정국과 같구나.

출구(出口)를 잃어버린 현실.

두시간 이상 걸려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한 지인들의 인사를 받고

고인(故人)의 사진 앞에서

그와 함께 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가 먼저 떠나야 했는데

왜 그대가 먼저 떠나야했는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핸들을 잡은 나는 속으로 외친다.

"길이 막혔어요. 어디로 가야하지요?"


내 인생도 출구를 잊은 것 같다.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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