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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하드 Feb 22. 2024

아끼면 똥 돼!!

2024. 02. 09. 일기장

황금만능주의 쩌는 첫째는 명절이 오면 마음가짐이 바쁘다.

1년 1번 있는 대목, 설 명절 세배 날이 온 것이다.


우리 집을 닥친 역병의 기운에 그나마 생존자인 푸 신랑과 첫째 망아지만 설 세배 하러 양가에 갔다 왔다.

며칠 전부터 세뱃돈 수금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이제는 훌쩍 커서 손목, 발목이 훤히 나오는 작아진 한복을 꾸역꾸역 입고 가질 않나 어르신들 앞에서 장기자랑을 보여줘야 한다며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인

'나루토 춤'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서 연습하더니 명절 당일 첫째의 철저한 준비성을 귀엽게 봐주신 시댁 친척분들에게 두둑이 세뱃돈을 받았다.


이번에 '나루토 춤' 히트로 수금이 두둑해진 첫째는 원래 그날 시댁에서 신랑이랑 하루 자고 오기로 했는데돌연 듯 저녁 일찍 집으로 컴백했다.

한 살 어린 사촌 남동생이랑 밤새 놀 생각에 자고 가겠다고 떼쓸 때는 언제고 안 자고 빨리 왔냐고 물어보니 답은 안 하고 정산부터 해달라는 마음 급한 망아지.

봉투를 꺼내더니 이건 누가 줬고 누가 줬고를 설명하며 그럼 자기가 받을 돈이 얼마이냐고 빚 받으러 온 채무인처럼 구는 첫째.

오로지 머릿속에는 세뱃돈 정산 생각에 장난기 심한 푸신랑이 세배 돈 밑장 빼기를 할까 봐 시댁에서 잠도 안 자고 차만 타면 잘 자는 망아지가 잠도 떨쳐가며 1시간가량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집으로 왔다고 한다.

그렇다. 아빠도 믿을 없다며 수금 현장에서 바로 근거지로 온 것이다.

세뱃돈의 일정 부분을 떼주기로 약속했는데 정산 후 12만 원을 번 첫째.

그 와중에 무슨 애한테 10만 원을 넘게 주냐고 하이에나처럼 뜯어먹을 생각만 하는 푸 신랑.

결국 아빠의 조름에 치킨 사 먹으라고 2만 원을 떼어주는 모습을 보며 오락실에서 초등학생 코 묻은 돈을 뺏는 고등학생이 연상되었다.

그렇게 첫째는 공돈 10만 원을 본인만 아는 곳에 고이 숨겨둔 뒤 그제야 잠자리에 들었다.

바로 5분 안에 잠든 걸 보니 긴장감이 장난 아니었나 보다.


가끔 푸신랑과 그런 얘기를 한다.

" 우리가 작품을 낳았어. 첫째가 없었으면 심심했을 거야~ "

그 와중에 받는 용돈이면 용돈 다 엄마에게로 갖다 바치는 둘째는 왜 이렇게 이쁠고.

첫째는 재밌고 둘째는 귀엽고ㅎㅎㅎ

        < 탕진 잼을 보여 주는 첫째의 '설날 용돈 계획장' >


다음 날 아침 눈 뜨자마자 다이소를 간다는 첫째.

어제 돈 받고 오늘 바로 돈 쓰러 가냐고 하니 망아지의 대답.


아끼면 똥 돼!!


어디서 개똥철학을 내미는 건지~~~

그동안 사고 싶었던 팬시, 소품을 쓸어 담더니 하루 만에 다이소에서 1/3을 플렉스 한 첫째.

그리고 명절이 열흘이 지나고 잔고 2만 원 남은 너를 어쩜 좋니.




( 에필로그 ) 

어느 날, 하교 길에 첫째랑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 엄마가 성인이 되면 독립해서 살아야 한다고 했잖아. 그때가 되면 친구 OO랑 자취를 하기로 약속을 했어."

" 아하하하. 그래? 자취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데 생활비는 어떻게 하? "

" 그 친구랑 가위바위보해서 진 사람이 회사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이긴 사람은 집에서 놀기로 했어"

아니 가위바위보로 직장인게임이라니 이건 무슨 오징어게임도 아니고~ 어이가 없어~

" 넌 다 계획이 있구나"라고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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