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농도

행복의 농도와, 온도, 향.

by 보라색 콩






행복에도 농도가 있다. 걸쭉하고 진한 것, 물을 탄 듯 연한 것, 초콜릿같이 사르르 녹는 것.

행복에도 온도가 있다. 뜨겁고 빠른 것, 차갑지만 영원한 것, 미지근하지만 느린 것.

행복에도 향이 있다. 달콤하지만 의심스러운 것, 상큼하지만 일시적인 것, 고소하면서 편안한 것.

행복의 농도, 온도, 향은 시시각각 달라지는데, 우리가 보통 인지하는 행복은 걸쭉하고 진한, 뜨겁고 빠른, 달콤한 것들에 가깝다. 자극적이면서도 일시적인 것들. 그래서 물을 탄 듯 연한 행복이 오면 " 난 행복하지 않아!!"라고 소리치며 행복의 농도를 높이려 애쓴다.

행복의 농도는 그 감정이 얼마나 각인되는지,

행복의 온도는 그 감정이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행복의 향은 그때의 경험과 환경에 따라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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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온 지 1년 반이 되고 난 이후 한국에 돌아갔을 때, 방 매트리스에 앉아 멍하니 말했다.

" 있잖아, 나는 캐나다에서 한 번도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 근데 한국에서 다시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됐어. 그래서 캐나다에 가는 게 너무 불안해. 내가 한국에서 느낀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할까 봐 너무 무서워."

말하는 순간에도, 내가 느낀 그 행복이 뭔지 오래도록 알지 못했다.

그 행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안정감이었다. 나를 사랑하고 나보다 나를 더 확신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안정감, 평생의 생활에 익숙함에 만들어진 안정감, 나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 속해있다는 소속감. 그 안정감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캐나다에 돌아온 며칠 후,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글을 쓰며 책을 읽고,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봤다. 뭔가 이상했다. 내가 한국에서 느꼈던 감정의 향이 느껴졌다. 편안하고 무언가 두근거리는 감정.

내가 잊을까 봐 무서워 안에 꼭 간직하려고 주머니에 넣어뒀던, 충분히 느끼려고 기억하려고 했던 그 감정.

충분히 행복했다.

그때 당시에 나는 "나 왜 행복하지?"

라며 얼떨떨하게 헛웃음을 지었다.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함. 혹은 그러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아주 사소하더라도 내가 그것에 만족감을 느끼고 흐뭇하다면 행복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차를 마시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작은 시도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아주 사소한 성취감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하지 않아도, 내가 흐뭇하고 만족스럽다면 행복이다.



행복은 한 종류가 아니며, 농도와, 온도와, 향이 있다. 잠깐 걸쭉하게 있다 사라지기도 하고, 잔잔하지만 오래가기도 한다. 향긋하다가도 고소하기도 하다. 그 행복은 불안감, 초조함, 압박감, 두려움 속에 숨어 나타나거나, 그 감정의 형태로 남기도 한다.

온도와 향이 꼭 강하고 자극적이어서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때론 미지근하고 오래간다면 연하더라도 빠르고 사라지는 것보다 가치가 있다.


그 행복의 농도와 옅은 향을 구별해 내는 방법은

내가 느끼는 감정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 내가 어떨 때 편안함을 느끼지?"

"나는 어떤 곳에서 휴식하는 게 가장 잘 쉬어지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의 차이점은 뭐지?"

내가 안정적으로 지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뭐지?"

"내가 즐기는 행동과 안정감을 얻는 행동은 뭐가 다르지?"

"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한다면 뭐지? 왜 그런 거지?

하나씩 집요하게 스스로 질문할수록,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게 된다. 내 행복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고귀하고 놀라운 일이다.


당신의 행복이 물 탄 듯이 미지근하더라도, 천천히 농도와 향을 구분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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