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부터 내가 미술 입시를 할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사실 너무 자연스러웠다. 이미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은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물흐르듯 예고 입시를 시작했다.
내가 준비했던 입시는 스카치테이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작업이였다. “그럼 테이프만 죽어라 그리면 되겠네!”라며 호기롭게 시작한 입시는 점점 희미해져 빛을 잃어갔다. 꽤 고통스러웠다. 단순해서 더욱 고통스러웠다.
물체는 한 모습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시점에 따라 물체의 모습이 확연하게 바뀐다. 물체의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올바른 형태로 그리는 것은 수십 번의 ,수백 번의 노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게 있었다.
내가 그림을 너무 못 그린다는 사실이었다.
한국 입시에서는 친구들과 그린 그림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바닥에 깔아 단체 평가를 하는데,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자리에 모든 그림을 모아놓으면 보고 싶지 않아도 비교되는 부분이 보였다. 마치 100점인 성적표와 내 이름이 써진 25점의 성적표를 함께 보는 듯 했다. 그래서 그 시간이 끔찍하도록 싫었다. 바닥을 볼 수록 그 그림들이 나를 향해 비웃었다.
시험을 보는 시간보다 시험이 끝난 순간이 싫어질 때쯤, 선생님이 유난히 튀는 내 그림을 유심히 보더니 똑바로 내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너, 얘내랑 같은 학교 준비하는 거 맞아? 정신 차려. 너무 비교되잖아.” 그 말이 꽤나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그날 집에 어떻게 돌아갔는지도 모른 채, 두 시간 정도 쉬지 않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흘렸다.
그때였다. 그때가 시작점이었다. 그제야 내 부족을 스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독해졌다.
다른걸 그리고 싶어 “ ”다른 걸 그리고 싶어 “라고 몇 번이고 울붖으며 되뇌면서, 손은 멈추지 못했다. 이 모든 노력들이 무용지물이 되는 게 죽도록 싫었다. 그래서 더 독해지고 싶었다.
매일 이른 아침에 힘겹게 눈을 떠서 미술학원으로 행했고, 모든 끼니를 그곳에서 해결했다. 그리고 날이 밝아질 때쯤 집에 왔다. 선생님께 혼날 때면 화장실에 뛰쳐나가 문을 잠그고 울기를 반복했다.
너무 지쳐 그만두고 싶을 때쯤, 정리하고 다시 연습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같이 그림을 그리던 친구가 선생님께 말을 걸었다. “저도 이렇게 그리면 여기 남아서 선생님이랑 더 연습할 수 있어요? ”
투명하고 악의 없는 말은, 가슴속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직시하고 싶지 않은 날카로운 현실을 눈앞에서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 열정의 표면은 고등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노력에 배신당하고 싶지 않은 오기와 자존심 때문이었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그저 증명받고 싶었다. 내가 노력한다면 이뤄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동이 틀 때쯤 미술학원 불을 나올 때의, 그 묘한 쾌감으로 생활을 지탱했다. 사실 노력한다는 감각 자체에 취했던 걸지도.
그 생활이 반복되어 머리가 멍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늘 그렇듯 한 자리에 서서 모든 그림을 모아 평가하던 중, 선생님이 입을 떼셨다.
“얘들아, 수빈이 그림 좀 봐봐. 얘, 몇 달 전까지 이렇게까지밖에 못 그렸어. 근데 지금 보여? 엄청나게 발전했어. 이렇게 연습하면 늘 수 있어. 그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계속 그려. ”
그렇다. 난 더디지만 발전하고 있었다. 천천히 쌓아온 내 조각들이 마침내 드러났다.
자존심과 오기뿐이었던 내 마음속은, 점점 성취감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내가 이 입시에서 배웠던 것은 노력한다면 내가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한 번의 굵고 길었던 성취경험은
내 자존심을 자신감으로 바꿀 수 있게 이끌어 줬다.
그리고 최종 시험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