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열어보는 나의 불안-01

판도라의 상자 자발적 개봉기

by 이정안

ㅡ 불안과의 첫만남


1. 불안의 자각

내가 그토록 외면해오던,내 안의 불안을 ‘불안’이라고 자각한 것은 32살 신입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직장에서다.


긴 수험생활을 결국 원치 않는 방식으로 끝내고, 준비 끝에 새로운 직무로 취업을 했다.

숫자 다루는 것을 못하고 싫어하는 내가 결코 선택하지 않을 직무,

왜 그랬을까? 돌이킨다면 다시 하지 않을 유일한 선택이 바로, 이 직무로 취업한 것이다.

주로 숫자를 다루고, 수많은 이들의 날선 말들을 안팎으로 받아내며 야근을 해야하는 직종.


아무래도 그때의 나는 긴 수험생활로 찌그러져있던 내 모습이 싫어,

지금까지와는 반대의 모습으로, 원했던 일과는 반대의 일을 하며 새로운 삶을 꿈꿨던 것 같다.


몇 푼의 월급과 하나씩 쌓여가는 업무 경험들로 새로운 미래를 그렸지만, 그 그림은 추상화에 가까웠다. 막연했고, 나조차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뭉그러진 그림이었다.

그리고 어느 새 나는 일머리도 없고, 추진력이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 역시 이전의 나와는 반대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때 멈춰서서, 어느 샌가 나를 압도하고 있는 불안을 마주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때 나는 이미 이 일을 하며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외면했다.

여기에서도, 이것마저 실패한다면 나는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새 커져버린 불안을 알량한 커리어를 방패삼아 외면했다.



그러던 중, 신이 주신 기회로 사고를 당했다.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내 모든 선택을 바로잡을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난 아직도 내 진짜 불안을 파악하지 못했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또다시 수험생의 길을 택한다.

엉킨 매듭을 풀어 새로운 매듭을 짓겠다는 각오로.

내 모든 불안의 원인은 수험생활 실패 때문이라고 여겼으니까.



2. 불안과의 첫 대면

이때 선택한 두 번째 수험생활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선택이 되고 만다.

억지로 재워서, 덮어두고 숨겨둔 불안이 넘쳐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불안의 요동으로 내 모든 능력이 파괴되었다.

또 다시 반복된 실패경험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모두 앗아갔다.

거대했던 불안을 외면할 수 있었던 건 단 한 톨의 자신감 덕분이었는데, 이 마저도 사라지니 불안은 더욱 활개치며 내 모든 의욕을 황폐화시켰다.


황폐해진 내 의욕들을 되찾으려 했지만, 나는 살아갈 의지마저 잃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나를 채웠던 자기확신, 자신감의 자리에 요동치는 불안만이 가득했다.



나는 그제서야 거대한 몸으로 내 안에서 날뛰는 불안을 처음으로 대면했다.

불안은 기다렸다는 듯 정체를 드러냈다. 불안의 정체는 내가 꿈꾸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였다. 내가 안팎으로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각하는 괴리의 격차가 커질수록, 불안은 점점 그 기세를 키워나갔고 나를 잠식했던 것이다.



정체를 알고나니, 불안은 생각보다 거대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꽤나 끈질기고 끈적거리는 놈이라 내 안 여기저기 여기저기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불안이란 놈이 내게 흔적을 남긴 채 사라졌다는 것을.

이놈은 내 자기확신의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언제든 불쑥 찾아와 다시 집채만큼 커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불안이란 놈을 완벽히 제어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판단이 아니라 나의 솔직한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내 안의 불안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그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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