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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여름이다.

여름에는 역시 물놀이지.

by 희서

입김조차 얼어붙을 것 같던 겨울 어느새 지나갔다. 메말랐던 가지다 새싹이 나고, 짙푸른 풍경 만들어졌다. 자연의 섭리는 으로 신기한 일이다. 한낮의 열기를 고스란히 받아내던 땅의 기운은 밤이 되어도 식을 줄 몰랐다. 잊지 않고 찾아온 이 계절이 고맙기도, 기특하기도 하지만, 며칠째 자비 없이 내리쬐는 양 광선에 세상이 녹아내리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아니, 그전에 내가 먼저 녹아내릴지도 모르겠다.


"희서야, 수영장 가자."


느닷없이 찾아온 친구는 버스 타고 열 정거장쯤 가면 새로 오픈한 수영장에 갈 수 있다고 했다. 할인 행사로, 오픈 한 주간은 입장료 반값이라며 당장 가야 한다고 들갑이었다.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나서, 필요한 것들을 주섬주섬 챙기고, 친구를 따라나섰다. 내 몸이 더 이상 녹아 흘러내리면 안 되니까.


어른 없이 떠나는 열두 살의 스 여행길 그렇게 시작되었다. 7월의 공기는 뜨거운 습기를 머금었고, 할머니들의 양산마다 형형색색 꽃이 피었고, 아기를 업고 있는 새댁의 얼굴은 번들거렸고,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재잘거리는 동네 아이들은 여전히 놀 궁리에 바빴다.


그전에도 한두 번 해본 일이지만, 엄마 없이 버스를 탄다는 건, 여전히 긴장되는 일이었다. 혹시나 목적지가 바뀐 버스를 탈까 봐서. 버스가 목적지에 다다르지 않을까 봐서. 엄마 없이 버스를 탄다는 건,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를 믿어 보는 작은 모험.


얕은 해방감에, 쉬지 않고 종알거리면서도 버스가 수영장 건물을 지나치지는 않는지, 신경 한 가닥은 차창 밖을 향했다.


"희서야, 두 정거장 뒤에 내릴 거야."


친구는 나보다 조금 더 어른스러웠으므로, 예리한 시냅스를 통과한 말들로 나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도착한 수영장은, 먼지 가득한 운동장을 몇 바퀴째 달리고 난 뒤, 마시는 물 한 잔이라고나 할까? 내 열두 살 수영장의 기억은 사막 한가운데서 맞이한 오아시스였다.


수영을 본격적으로 배워보고자 마음을 먹은 건 스무 살이 넘어서었다. 공립 수영장 강습 추첨이 그렇게나 치열한 줄은 몇 년이 더 흐른 뒤에 알았다. 그때 나는 여전히 어렸으므로, 중년 여성과 남성이 섞인 단체 강습에서 혼자만 진도를 못 따라가는 게 부끄러워서 수영을 그만두었다.



삶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공황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년의 여성이 제 발로 수영장을 다시 찾아갔으니. 맨몸으로 물에 뜨기만 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수영이었는데,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되다. 끊을 수 없는 이것. 도대체 이것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길래.


아팠고, 물 몸을 담갔고, 기운이 났고, 다시 아팠다. 사이 물이 주는 안식을 알아버다. 내가 애쓰며 물살을 가를 때마다 '꼬르륵꼬르륵' 화답하는 물의 소리. 그것은 엄마의 자궁 안처럼, 태초의 움직임처럼 나를 가만가만 안아준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힘이 닿는 동안 물은 나의 친구가 될 것이다. 변치 않는 친구로. 힘들면 힘든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나의 모습 그대로 물은 받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수영하러 간다.





그동안 제 수영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마음을 나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수영 에세이는 여기서 마무리되지만, 제 수영 이야기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빌런 강사와의 강습을 신청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여전히 망설이고 거든요^^;;

우리 같이 용기 내어 수영해 볼까요? 여름이잖아요:) 유후~~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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