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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신미 Feb 04. 2024

산 이야기

산이된 아버지를 생각하며

속초에서 서울 다녀오는 길은 백두대간 끝없는 산봉우리들의 파도가 동행하는 경이로운 시간이다. 몇 년 전 개통한 60번 고속도로는 긴 터널이 많기로 유명한데 그만큼 높고 깊은 산이 많음이다. 무구한 세월 꿈쩍도 없는, 그리고 그 품에서 쉬이 떠나가지 못하게 하는 그 막대함 때문에 산은 아버지 같다고들 했던 것일까. 그래서 자식들은 비탈진 산마루 아버지 가슴 여기저기에 구멍을 후벼 파 놓고 떠나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흘러 들었던 ‘산 같은 아버지’라는 말이 절실하게 들리는 건 나도 이제 뿌리 깊은 산 같은 부모여야 하기 때문인지. 


원격으로 일해도 된다는 핑계로 멀리 속초에 내려와 머무는 동안 가끔 아버지를 뵈러 다녀왔다.  서울까지 두세시간 운전 하는 내내 강원도의 산들이 겹겹이 동행해 줘서 지루하지 않았다. 하나하나 명산은 아니어도 어릴 적 아버지의 팔베개를 베고 듣던 옛날 이야기들처럼 시시 때때 무궁무진 멋지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서리서리 배어 있는 산들. 그가 품은 계절과, 오랜 세월 침묵해온 고독과, 그 속의 생명들과, 그리고 그가 주는 것을 먹으며 살아온 사람들의 고달픈 애환. 저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은 저 산을 무어라고 부를까, 봉우리 하나하나의 이름을 알고 싶기도 하다. 


강한 뿌리로 박혀 있으면서도 철 따라 변화하는 부드러움도 갖춘 산들의 성격도 운전하며 감상하기에 늘 충만하다. 봄날 꽃피는 다정함, 여름의 깊고 시원한 초록, 가을의 성숙한 정취, 섬뜩한 기상으로 만물을 잠잠케 하는 겨울,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신비한 변화는 산들이 들려주는 산더미 같은 이야기의 보고이다. 그 이야기들을 다 찾아서 글로 쓰고 싶은 건, 어린 날 출근하며 내주시던 아버지의 즐거운 숙제 같은 것. 산은 아직도 아버지처럼 나를 키우고 있는가 보다. 


빨리 와서 응급실로 모시고 가라는 연락을 받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산들이 안타까워 지켜 주었던 것만 같다. 마법 같이 길을 열어주며 힘을 보태 주었던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는데 사고 없이 도착해 있었다. 백세가 거의 다 된 아버지는 눈 내린 장군봉 같이 백발을 무겁게 내려 놓고 누워 계셨다. 내가 이날까지 아버지가 누워서 사람을 맞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우리들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날마다 집안일 봐주러 오는 분들 앞에 서도 체크무늬 셔츠 단추를 목까지 채우고 늘 반듯이 앉아 계셨지 않은가. 산도 눕는구나. 가장 사랑하여 커서까지도 손을 잡고 다녔던 나를 깜박깜박 몰라보시는 모습도 낯선 산처럼 두려웠다. 백세 가깝도록 외국어도 잘하시고 컴퓨터 도 혼자 포맷해서 사용하시던 아버지였는데. 무엇보다 병원에서 노령이라고 입원시켜주지 않는 것과, 응급실에서 집이 아니고 요양병원에 가야 할지를 의논해야 하는 것이 막중한 슬픔이었다. 해 넘어간 산그림자로 누워 계시던 아버지와 그의 컴컴한 침묵.


응급 중환자실에서 밤을 새는 와중에 아버지의 가장 간절한 것을 들어 드리고 싶어서 여쭤 보았다. “아버지, 지금 아버지가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예요?” 돌아가신 할머니라고 하면 할머니 추억담을 나눠드리려 했다. 항상 한복을 칼같이 차려 입고 반듯하시던 모습, 할머니방 장롱 밑에 숨겨 놓으셨던 사탕 주머니와 오빠에게는 선선 했지만 언니와 내게는 ‘계집아아가 무슨’ 하며 인색하셨던 할머니의 사탕 인심. 그건 아버지는 모르셨지요? 아버지보다 먼저 가신 엄마가 보고 싶다 하면 엄마도 틀림없이 아버지가 가장 보고싶으실 거라 말해드리고, 오래동안 서로 안보는 외아들 장남인 오빠나 누운 아버지가 무섭다고 안보시는 새어머니라고 하시면 어떻게든 설득해서 불러오려는 각오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갑자기 나를 맑은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더니 대답하셨다. “나는 항상 니가 제일 보고 싶다.” 산도 그리워하는구나. 아버지가 틀어 놓은 눈물의 물고는 쉬이 잠가지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의식이 없는 아버지를 두고 속초로 돌아오는 길은 아버지 가슴에 구멍을 뚫으며 떠나갔던 날들을 되짚으며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터널의 연속이었다. 어두워서 산들도, 산뿌리 가까이에 붙어 사는 마을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폐가 될까 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던 아버지는 겨울산처럼 누워있다가 산으로 가서 산이 되셨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를 바라보고 계시려고 그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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