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담은 한 끼의 식사
3일 단식을 마치고 일주일간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체중은 2.5킬로 줄었다가 조금씩 원래대로 회복되고 있다. 다이어트의 목적이 아니었기에 천천히 현재의 몸에 맞는 체중을 찾아갈거라 생각한다.
가장 좋은 건 정신적 허기짐으로 찾는 해로운 음식에 대한 갈망이 없어졌다. 나의 경우 밀가루와 설탕으로 만들어진 달달한 디저트와 불닭같이 아주 매운 음식이 해당되는데 현재로서는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이다. 단식으로 민감해진 몸에 자극적인 음식을 넣는 건 말도 안되게 느껴진다. 이렇게 디톡스를 마치고 일주일에 하루 단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하고자 내일 하루 단식을 앞두고 있다.
마음 공부는 내면 뿐 아니라 몸을 잘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음식은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우리가 하루에 먹는 음식을 종이에 적어본다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무심코 먹는 음식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인도의 요가 철학은 모든 사물과 물체가 세 가지 상태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그것은 Tamas, Rajas, Sattva로 각각의 특징이 있으며 시간 또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Tamas - 어둡고 무겁고 게으른 상태
Rajas - 과잉 에너지, 열정, 중독
Sattva - 조화와 균형, 고요하고 평온함
우리가 추구해야할 상태는 당연히 사트바이다. 하루 중 가장 사트빅한 시간은 해뜨기 직전 고요하고 활기있는 새벽이다. 사트빅한 음식은 신선한 채소와 과일, 비정제된 곡물처럼 풍부한 생명력이 담긴 것이다. 타마스적인 음식은 고기, 생선, 인스턴트와 같이 무겁고 죽어있는 인공적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라자스적인 음식으로는 맵고 신 자극적인 맛과 카페인이 들어간 커피, 초콜렛이 있다.
섭취한 음식의 성질에 따라 몸의 상태도 바뀌게 되므로 "You are what you eat"은 정말 맞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와 미용에 관심이 많은데 단지 살을 빼겠다는 마음만으로 칼로리를 세며 식욕을 억누르지 말고 음식이 가진 고유한 특성과 (요가용어로 '구나') 에너지를 통해 나의 몸과 정신을 사트빅하게 유지하기 위한 목적을 우선한다면 보다 수월하게 건강한 몸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무거운 성질의 육류, 특히 가공육과 인스턴트를 피하고 깨끗한 제철 과일과 채소를 섭취하면 우리를 가장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타마스적 음식은 원래 좋아하지 않지만 라자스적 음식 (커피, 초콜렛) 을 조절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채식을 향한 나의 사랑은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20대 후반 영국 런던에 1년간 파견되어 지내면서 채식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당시는 2000년대 초반으로 한국에 채식문화가 보편화되기 전이었다. 또한 바쁜 직장생활에 끼니를 차려먹을 여유도 없었다. 점심과 저녁 메뉴를 독단적으로 고를 수 없는 회사생활 특성 상, 그냥 남들 먹는대로 먹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런던에서의 생활은 달랐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올 수 있었으며 야근이 없어 저녁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다. 정말 다양한 베지테리안 식당과 카페가 많아서 원한다면 쉽게 채식을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요가와 여러가지 관심사로 채식을 하고 싶었던 나는 1년 가까이 해산물,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을 했으나 한국에 돌아와 몇 달의 고군분투 끝에 결심을 접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직장생활하며 비건생활을 하는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체 회식에서 다들 삼겹살 먹는데 혼자 양송이 버섯만 깨작이고 있는 내 모습이 보기 안좋았을 게 뻔했다. (요즘 직장문화는 안그렇까?) 또한 당시 부모님과 살았는데 제발 까탈 좀 부리지 말라는 엄마의 원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팔순이 되신 할머니가 손녀딸을 위해 힘겹게 차려주신 밥상을 골고루 먹지 않는 것도 불효였다. 나의 고집으로 어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상황에 따라 다시 고기를 먹게 되었고 심지어 삼겹살과 치킨은 종종 생각나는 음식이 되었다.
그러나 타고난 체질은 어쩔 수 없는지 점점 다시 클린식으로 되돌아와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주로 채식을 하고 있다.
사실 채식이냐, 아니냐를 논하기보다 우리의 몸이 무엇을 먹었을 때 가장 편안하고 조화로우며 차분해지는지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몸을 이해하고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면, 깨끗하게 정화된 몸과 마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절제와 비워짐 속에 가장 활기있고 맑은 컨디션이 찾아온다.
명상과 맑은 정신에 음식이 큰 영향을 주는 것을 실제로 체감하니 더욱 클린한 식사를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어떤 식사를 해야하는지 기준을 잡을 수 있었던 Omega Instititute에서의 일주일 워크샵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Omega Institute는 뉴욕 주의 라인벡이라는 작고 조용한 마을에 위치한 마음 공부를 위한 센터이다. 우리가 아는 에크하르트 톨레, 존 카밧진, 페마 초드론 등의 유명한 영성가들 외에도 수많은 작가, 명상가, 요가지도자, 힐러들이 이 곳에서 워크샵과 강연을 한다. 워크샵에는 숙박과 식사가 포함되어 있는데 숲 속의 오두막같은 낡았지만 깨끗하고 소박한 시설에서 비용에 따라 독방 또는 공동 숙소 중에 선택해서 머무르게 된다. 내가 머물렀던 독방에는 나무 침대, 책상, 거울이 전부였고 화장실에 조그마한 새 비누가 어메니티의 전부였다. 수건은 일주일에 한 번 새로 받을 수 있었다. 방청소는 스스로 한다. 마음 공부와 수련을 위해 먼 시골까지 온 사람들에게 이것보다 완벽한 시설이 있을까? 우리가 얼마나 불필요한 물건들과 소비에 익숙해져 있는지 일깨워주는 경험인 것이다. 밤 9시 이후 대화를 자제해야 하며 당연히 술과 음악은 금지이다. 워크샵이 있는 동안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 식사가 식당에 준비된다. 뷔페식으로 준비된 식사는 100% 채식이며 요거트와 버터 등의 간단한 유제품이 곁들여 진다. 이 곳에서 세 끼를 먹으면서 채식만으로 얼마나 만족스럽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지 감동할 정도였다.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아침 식사는 통밀 토스트와 아몬드 버터, 과일과 코코넛 요거트, 그래놀라, 견과류 등이 준비되어 매번 맛있게 먹었다. 인스턴트와 화려한 재료 없이도 이렇게 충분한 식사가 된다는 것을 일주일간 경험하고 평소에 비슷하게 먹고자 따라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클린식은 제철 채소와 과일, 되도록이면 로컬 농장에서 재배된 작물을 먹는 것이다. 아마 땅이 넓은 미국 특성 상 로컬 재료의 중요성이 한국과는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미국의 슈퍼마켓 체인은 대형 농장에서 공장식으로 재배된 식재료가 많기 때문에 조금 비싸고 번거롭더라도 로컬 농장과 농부들을 지원하고 유통과정이 짧은 신선한 오가닉 채소와 과일을 먹는 건 의미있는 일이다.
또한 조리 과정에서 튀기거나 많은 양념을 더하여 오랫동안 끓이고 조리는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긴 시간을 불 앞에서 소모하기 보다 간단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편이 좋다. 단백질은 두부, 낫또, 렌틸, 콩에서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견과류와 치즈, 과일, 꿀이 더해진 요거트 등은 건강한 간식이다.
밀가루 대신 병아리콩이나 코코넛 파우더로 만든 또띠아 등 정말 다양한 글루텐 프리, 비건 식재료들이 나오고 있어 채식하기 참 좋은 요즘이다. 흔히 양상추와 당근, 오이만 먹을 것 같은 채식에도 정말 풍부한 식감과 맛을 주는 향신료와 식재료, 창의적인 음식의 조합이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