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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련일기

Surrender

by Stacey J
온전한 너로서 살아가도 괜찮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찾아야 했던 지난 날은 길고 어두웠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말처럼 행복해지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샘물을 찾아 헤매이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27살 겨울 우연히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을 만났다. 아하! 그동안 간절히 필요했던 지난 날들의 모든 질문과 답이 책 한 권에 담겨 있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그 무렵 인생에 대한 허무함을 비롯,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핑계로 수 년째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있었다.


"어차피 나란 존재는 하필이면 1980년대, 하필이면 대한민국, 하필이면 서울, 하필이면 우리 부모님 사이에서 큰 딸로 태어났기 때문에 주입된 문화적, 사회적, 개인적 가치관들이 일방적으로 혼합되어 만들어진 하나의 개체일 뿐이잖아. 심지어 내 외모와 건강, 재능, 지능과 성향은 DNA의 랜덤 조합이야. 모두 우연의 일치로 만들어진 나인데 어디에서 어디까지 셀프를 정의하며 앞으로 무엇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거지? 진짜 나는 누구이지?"



보수적인 집에서 자라 성실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는 모습은 숨쉬듯 자연스러운 퍼포먼스와 같았지만 내면에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들끓던 시절이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에서 '에고, 고통체, 집단의식, 자유, 명상......' 처음 접해본 개념을 알게 된 것만으로 그동안 타오르듯 뜨거웠던 끓는 점이 내려가고 마음 속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물론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지층이 한번 크게 흔들어졌다고 오래 누적된 생각과 행동의 패턴에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내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의식이 아주 느리고 작은 진동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깨어난 진동은 십여년의 시간동안 멈추지 않고 점점 커져서 마침내 견고한 벽을 허물고 현재의 자유한 삶으로 이끌어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무언가 알 듯 말 듯, 실천할 용기와 자신감이 부족했던 그 시기는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과정이었다. 지금 내가 어떤 통로로 그 때의 나를 만나러 갈 수 있다면 아침 햇살이 코 끝에 닿는 기분 좋은 감촉으로, 방긋 웃는 낯선 사람의 인사로, 무심코 차오르는 마음의 울림으로 나직하게 전해주고 싶다. 언젠가 가장 온전한 너 자신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실재하지 않는 대상을 만족시키기 위해 흉내내며 살지 않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고. 필요한 경험에 활짝 열려있되 그 과정에서 결코 좌절하거나 지레 포기하지 말라고.





내려놓음, 놓아버림, 항복으로 번역되는 Surrender는 요가와 마음 공부에 자주 나오는 단어이다.

굳게 형성된 에고를 내려놓음으로 참나, 신성, 배경 자아, Oneness 등으로 일컬어지는 커다란 나를 만난다는 말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것을 좋아해. 나는 무엇을 잘해. 나는 어떻게 대접받아야 마땅해. 끝없이 이어지는 '나'라는 메아리를 탐구하면 과연 내가 믿고 있는 '나'란 존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과연 '나'는 실재하는지 묻게 된다. 어쩌면 그 질문은 낯설고 난해하여 피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지할 곳 없이 바다를 표류하는 뗏목처럼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떠밀려 스스로의 행불행을 외부의 조건에 내맡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외부 조건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늘 그 자리에 있는 무한한 나를 찾는 여정, 그 출발은 내려놓음 Surrender부터이다.

평생에 거쳐 애써 쌓아올린 에고의 실체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겠다는 결심은 아프고 힘들 수 있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것처럼 외로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수술을 강행해야 하듯, 정확하게 보겠다는 결의로 용기를 내면 좋겠다.


나는 나를 모른다.

지금껏 내가 그토록 굳게 믿고 지키고자 애써온 나는 허상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렇게 살아있다.

다른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가?

내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의 명상 선생님은 수업 중에 그런 말을 자주 하셨다.

"You're bigger than that. We're bigger than what we think we are."

스스로 정의하는 '나'라는 작은 틀(Small self)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인간 본성에 흐르는 고요함과 만나게 된다. 모른다는 말은 자유로 가는 첫번째 열쇠이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을 만나기 전 나는 자의식이 흘러 넘치던 젊은이였고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있다고 믿었다. 스스로의 한계에 좌절했고 떄론 부풀어 오른 자만심에 취했다. 모든 것은 일시적이었다. 외부적 조건의 변화로 인해 어떤 날은 행복했고 다음 날은 슬픔을 느꼈다. 그러니 대부분 불안했다.






온유한 사람은 에고가 사라진 사람이다. 그들은 순수 의식은 자신의 참 본성에 눈을 뜬 사람이며 다른 모든 사람들, 모든 생명 형태 속에서 그 본질을 인식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음을 열고 순응하는 형태로 살아가며 전체와 '큰 근원' 안에서 하나됨을 느낀다.

(NOW by 에크하르트 톨레)



우연히 접한 책 한 권, 누군가가 건넨 이야기, 무심코 바라본 하늘을 통해 네가 찾는 열쇠는 외부가 아닌 바로 네 안에 있다는 메세지를 세상은 보내주고 있었다.

그 내면 탐구의 긴 여정을 하나씩 나누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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