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가 아른거리는 검은 아스팔트 바닥이 꼭 나를 익히기 위한 거대한 프라이팬처럼 서서히 데워진다.
그 열기가 몹시 불쾌한 방식으로 나를 사방에서 옥죄어온다. 한시라도 빠르게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나는 누가 봐도 더욱 빠른 귀가를 염원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걸음걸이를 하고 성급하게 걸어간다.
그 시커먼 바닥에서, 이색적인 주홍빛 메리골드 꽃잎 두 장이 솟아 나와 파다다닥 요란하게 부딪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암어리 표범나비 한 쌍이었다. 자기보다 몇백 배는 큰 불청객의 등장에도 아랑곳 않고, 사방을 달구는 열기도 개의치 않고, 그들은 하늘을 밟으며 술래잡기를 계속한다. 그 움직임을 악보 위에 묘사하자면 연주 용어는 틀림없이 '*볼란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둘은 춤추듯 가볍게 톡톡 거리며 아스팔트 도로 위로 새로운 길을 만든다. 문자 그대로 그 길은 '접도(蝶道)', 나비길이다. 그렇다, 그들은 *접도를 개척해 가며 접도(接道)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의 언어유희가 내겐 죽고 싶을 만큼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위도 잊고 멈춰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순간, 수컷이 앞서가던 암컷을 불쑥 따라잡는다. 그로 인해 한놈의 날개가 다른 쪽의 날개에 뒤엉켜 바닥으로 와락 떨어진다. 가을 낙엽에 흙바닥이 살포시 덮쳐지는 꼭 그 모양으로, 그들은 사뿐히 한 자리에 드러눕는다. 그조차도 마냥 즐거운지, 그들은 낭랑한 소리로 한바탕 마주 보고 웃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드럽게 입을 맞춘다. 서로의 눈, 이마, 몸통을 오르내리며 가볍게 키스한다. 그들이 맞닿는 곳마다 작고 동그란 꽃이 피어나고 커다란 날개 두 쌍이, 기다란 더듬이 두 쌍이 잇따라 가늘게 떨린다.
팔락, 팔-락.
전율 같은 떨림이 잦아들면, 그들의 날개에 느긋하고 평화로운 리듬이 되돌아온다. 그들은 이내 열기를 식히듯 서로를 향해 손부채질을 해준다. 서로의 그늘 속에 서로가 들어가 쉰다.
이윽고 암놈이 다시 폴짝,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른다. 멍하니 앉아있던 숫놈이 이를 알아채곤 황급히 그 뒤를 쫓는다.
그들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반짝이는 길이 남는다. 사랑의 조각을 공기 중에 아름답게 흩뿌리며 그들은 난다. 그리고 그들의 날개가 스치고 간 나의 손가락에도 황금빛의 인분이 남아 빛을 낸다.그 가루의 결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니, 그 모양이 꼭 메리골드 꽃잎 같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금계국의 꽃잎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여태껏 금계국 꽃잎을 직접 만져본 적이 없기에, 그 감촉을 알지 못하기에, 그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그냥 내 멋대로, 메리골드라 여기기로 했다- 아, 사실은 그저 질투에서 배어 나온 심술이다.
그런 쓰잘데기없는 논쟁을 홀로 펼치던 나는,이제는 황금빛을 넘어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반사시키며 찬란한 무지갯빛을 발하기 시작한 그 가루를 잠시동안 응시하다 이내 손가락을 문질러 그것을 털어내어 버렸다. 비록 그 빛깔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은 내 소유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으므로. 가질 수 없는 것을 동경하고 부러워하기보단 빨리 털어버리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쓸쓸한 가을의 색이 여름을 덮을 듯, 가루처럼 바람에 부스러져 흩날린다.
그 풍경이 그냥 노-랗게 보인다. 그 속에서 나는 번개같이 메리골드와 금계국을 떠올린다.
메리골드, 금계국. 메리골드, 금계국. 암어리, 아모르...
번개같이 떠오른 그 단어들 중에, 다행히도 엉겅퀴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 곡예 같은 비행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기에, 그 길이 아름다웠던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아름다울 것이다.
비록 쓸쓸하게 끝이 나더라도 여전히 눈이 부시도록
연신 반짝인다.
그 아름다운
사랑이,
늘.
*메리골드 꽃말: 이별의 슬픔,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이 글에서는 전자의 의미 차용) *금계국 꽃말: 황금빛 미래, 항상 즐거움, 상쾌한 기분 (세 가지 의미 모두 적용하였음) *엉겅퀴 꽃말: 고집, 엄격함, 고독한 사랑 (종합적으로 '고집과 엄격함이 초래한 고독한 사랑'을 의미)
*볼란테(volante): 악보에서, 경쾌하게 또는 나는 듯이 가볍게 연주하라는 말.
*접도를 개척해 가며 접도(接道)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비가 다니는 길을 '나비길' 또는 '접도(蝶道)'라 칭한다. 또한 도로에 닿는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도 '접도(接道)'이다. 이 글에서는 나비들이 비행하며 그들의 길을 개척하는 동시에 아스팔트 도로에 톡톡 닿아가며 비행하고 있기에 이러한 언어유희를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메리골드가 '이별의 슬픔'이 아닌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