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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혹

by 목소빈

(현재 구상중인 소설의 일부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내 마음 안으로

벌레가 기어들어왔을 때


달콤함을 가장한 채

썩어가는 마음 속으로

벌레가 기어들어왔을 때


나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애써 감추며

그것이 저절로 떨어져 나가길 기다렸다


그러나 그 자그만 벌레는

기어이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은 채

심장을 갉아먹으며 진득하게 붙어있었고


결국 그 자리가 기이하게 부풀어 올라

내 마음에는 불룩한 혹이 생겼다

커다랗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혹이


그것을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아서,

이후에는 나조차도 그 존재를 잊게 되었고

그렇게 모두의 기억 속에서 혹이 잊혀질 무렵에


그것들은 터져나왔다.


누군가가 나에게 준 크고작은 상처들이 모여

내게 달려있던 혹을 날카롭게 갈랐고

한 무리의 벌레가 새까맣게 나를 덮어갔다


그것들은 나의 심장을 덮어서

내 가슴이 즐거움에, 분노에, 뛰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그것들은 나의 목구멍을 막아서

내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했고


그것들은 나의 손을 물어뜯어서

내가 뭔가를 써낼 수 없도록 막았고


그것들은 나의 머리로 가서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군말없이

내색없이


벌레의 집이 되어준 대가는 가혹했다

모든 것을 다 참고 견디는 것만이 답은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온몸이 새까맣게 뒤덮인 채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벌레가 내게 들어서려 했을 때

그때 나는 그것을 떼어냈어야 했다

나를 갉아먹게 두지 말고 곧바로 떨쳐냈어야 한다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아무도 내게 들러붙은 벌레를 떼주려하지 않았다

오랜 기간을 그렇게 새까만 벌레들과 살았다


그 무렵, 나는 내가 꼭

한 마리의 커다란 벌레가 된 것만 같다고 느꼈다

실은 내가 벌레에 뒤덮인 게 아니라 원래부터 조금씩 썩어가는 벌레였던 게 아닌가, 하고


그 때 그가 나타났다


나조차도 손대지 못하던

바글바글한 그 벌레들에게

스스럼없이 손을 뻗어 하나하나 떼어준 사람


벌레와 함께 살아온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을 들여서

마침내 모든 벌레를 내게서 떼내었을 때


그는 황홀하게 나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도 말로 다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웠다

서로를 아름답다고 여기며, 우리는 사랑을 키웠다


그렇게 아름다운 미래만이 우리 앞에 펼쳐질 줄로만 알았으나, 나는 곧 절망적인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름다웠던 그는 벌레에 온몸이 뒤덮인 채,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나는 텅 빈 눈으로 그의 몸에 붙은 벌레 한 마리를 바라보다가, 이내 떨리는 손끝으로 그것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그것들을 삼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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