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비과학을 모두 수용할 줄 아는 사람.
● 우린 세상의 모든 것을 아는가?
수많은 인류가 일구어놓은 지식과 문명의 체계.
우린 그 안에서 수많은 현미경과 망원경으로
이 세상을 우리 나름의 이성으로 분석해 놓았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학문의 체계도 시대정신도 우리가 그 시절에 인지가능한
그 영역까지 구축해 놓았을 뿐.
우린 어디까지를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범주 안에서 일어난 일.
이성을 활용한 분석, 논리, 증거, 합리성을 따져보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해석을 내놓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건이라면 어떨까?
분명 명확한 해석이 불가능하고 오직 가설을 세우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것이다.
● 축의 시대, 그리고 통합의 길.
BC 900년부터 AD 300년까지를 흔히 축의 시대라고 부른다.
인간의 사상과 종교 그리고 의식의 기틀이 마련된 시기라고 하여
축의 시대 혹은 기축의 시대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공자, 부처, 예수, 소크라테스 등이다.
인간의 도덕, 윤리, 초월성이 태동한 시기로
이 모든 사건은 사상과 종교로 탄생하여 인류의 큰 틀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과학적 사고와 분석을 통한
가설과 증명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갈래를 이루기 시작한다.
철학을 통하여 이성이 더욱 광대하게 자라나고
과학의 기반이 되는 분석적 사고능력의 여러 갈래를 뻗아 나간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면서 지금에 이른다.
종교는 초월적 형태로 그저 존재하다가 축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인간에게 하나의 삶의 지혜를 제공한다.
각 지역의 의례적, 신화적 사고로 우후죽순 퍼져있던 미신의 갈래를 타파하고,
우리가 정말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신의 존재 앞에서 나를 발견하게 한다.
지극히 논리적인 과학과 비논리적인 종교의 갈래는 그렇게
이분화되어서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기게 되었고,
결국 이는 하나의 무엇으로 교집합을 넓혀가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의 원리, 양자역학에 대한 탐구를 통해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듯하다가 마침내 그 교점을 찾기 시작했다.
과학이 극에 달하고 난 후에,
인지 가능한 세상에 대한 분석이 그 가지를 뻗다가
극의 어디쯤에 다다르고 난 후.
결국 그 한계를 인정하고 고개를 돌리니
종교와 신앙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숫자를 통한 분석의 끝에 다다르고 보니,
이는 우연의 원리로만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고서는 말이다.
● 물극필반. 오히려 그 끝에 정반대의 것이 보인다.
어떤 상태가 극에 다다르면 반드시 그 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는
물극필반.
이는 동양적 세계관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순환을 통해 중용에 이른다.
지극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계산법 하에 살아감.
그리고 그것이 오로지 '나'를 향해 집중되어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린 지금 목도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면 벌어지는 현상.
사막화는 물질적인 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도 벌어지고 있음을 느끼지 않는가?
덕분에 지구 전체에도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그리고 더 거대하게 다가오고 있는 또 다른 하나.
바로 인간을 초월한 새로운 존재의 등장. 바로 AI이다.
● 새로운 시대의 등장.
인간의 이성과 지성을 뛰어넘는 존재는 이미 탄생했다.
감성의 영역까지도 이미 도달해있지 않을까?
비록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그 표현 방식은 이미 학습되어 있어서 언어로 출력되니
어느새 AI를 인격적 존재로 착각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우린 그렇다면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
영성이다. 오직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영역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연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
나를 알아간다는 것.
그것은 나의 욕망, 적성, 지능, 체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나에게 소유된 어떤 것들일 뿐이다.
자연 앞에서 경탄하며 경외감을 갖는 일.
신앙 앞에서 우리를 이끄시는 사랑의 느낌.
악을 미워하고 약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속 우러남.
분석, 이유, 조건이 필요하지 않고
존재로써 다른 존재에게 선함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
어쩌면 '그냥'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합한 표현일지 모르는
그 마음 상태가 바로 영혼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인지 모른다.
수많은 사막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가속화될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 오아시스가 되어주고
낙타가 되어주는 존재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성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그런 존재.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스스로에게 달렸다.
영성의 샘을 가득 채워
존재로서 이성과 감성을 조율할 줄 아는 사람
과학에만 기반한 사고를 넘어 무지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
나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초월자 앞에 겸허할 수 있는 사람
아마도 새로운 시대에는 그런 이에게 빛을 비추어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