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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 blue Oct 24. 2023

소율이의 마음속 축구공 하나

 

  어른도 아이도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다. 책보다 훨씬 많은 정보와 재미를 주는 스마트폰 때문이다. 잘 아는 편집장으로부터 코로나 이후 판매율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십여 년 넘게 동화를 써 온 나는 그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십여 년 전에 쓴 책이 보름이 안 돼 2쇄를 찍었다면 최근에 나온 책은 석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아이들이 읽지 않는 동화를 계속 써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교실에서 아침 시간은 책 읽기 좋은 시간이다. 고작 30분이지만 일주일이면 150분이나 된다. 학원 다니랴 숙제하랴 바쁜 아이들에게 이마저도 할애하지 않으면 책과 담을 쌓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나는 이 시간만큼은 지키려 노력한다. 컴퓨터에서 눈을 떼고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다.

  많은 학교에서 월별 혹은 학기별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아이들에게 다독상이라는 걸 준다. 스스로 책을 찾아 읽기 어려운 저학년은 스티커를 주거나 독서 통장을 만들어 동기를 부여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책 읽는 습관을 들이자는 취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는 아이들은 정해져 있다. 평소 한 권도 안 읽는 아이가 갑자기 서른 권을 읽을 리는 없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스스로 골라 읽게 하려면 구체적인 독서계획이 필요하다. 아이들마다 관심분야가 다르고 읽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정하거나, 읽은 권수로 계산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독서리스트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출판사나 도서 연구회 등에서 보내주는 도서목록을 참고할 수도 있고 인터넷 서점을 검색할 수도 있다. 아이들이 고른 책 리스트를 모아 그 책들이 학교 도서관이나 학급문고에 있는지 확인한 다음 매 학기 신간도서 구입 요청을 할 때 제출한다. 예산이 부족해서 구입할 수 없을 경우 공공도서관을 활용하도록 한다.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요일을 정해 동시를 낭송하는 것도 좋다. 시는 현실에서 느낀 자신의 심경을 짧은 글 속에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글이기에 진솔한 마음이 드러나 있다. 또 짧고 리듬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놀이로 생각할 수도 있고 시간이 흘러서도 기억할 수 있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시를 골라주었다. 가급적이면 짧고 아이들과 친근한 소재를 골라 낭송하도록 했다.


  바다로 나가려고

  몸살하는

  바구니에

  담아놓은 꽃게들     


  이정석의 ‘어린이’라는 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꽃게가 어떻게 하고 있어요?

  “바다로 가려고 해요.”

  “어린이들도 답답하면 나가고 싶어하나요?”

  “네.”

  차근차근 묻고 대답하는 사이 아이들은 시인이 어떤 마음에서 썼고 나는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알아냈다.    

  다양한 방법으로 낭송을 하도록 했다. 혼자 소리 내어 읽기, 짝과 함께 외우기, 최종적으로 앞으로 나와 낭송을 하고 나면 모든 단계가 끝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던 아이들이 점점 그 시간을 기다렸다. 귀로 들으면서 음미하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시 낭송은 글자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시의 정서와 운율을 이해해야 한다. 시인이 시를 쓰고 낭송하는 사람은 자기 목소리로 전달하는 것이다.

 “다 외웠어요!”

  잘 안 외워지던 시가 어느 순간 입에 착착 달라붙으면 아이들은 큰소리로 환호성을 지른다. 평소 시집이라면 쳐다보지도 않던 아이들이 직접 시를 고르는 모습, 은유와 상징을 찾아내는 걸 보고 뿌듯했다.  

  실제로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외웠던 시를 지금도 낭송한다. 선생님 얼굴도 교실 모습도 떠오르지 않지만 그 시만은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할머니가 보내셨구나

  이 많은 감자를,

  야, 참 알이 굵기도 하다

  아버지 주먹만하구나

  올 같은 가물에

  어쩌면 이런 감자가 됐을가

  할머니는 무슨 재주일까?     

  화롯불에 감자를 구우면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 저녁 할머니는 무엇을 하고 계실까!

  머리가 허연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보내 주신 감자는

  구워도 먹고 쪄도 먹고

  간장에 조려

  두고두고 밥반찬으로 하기로 했다.


  교과서에 나온 장만영 시인의 ‘감자’가 왜 특별히 마음에 와 닿았을까.  

  감자는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작물이다. 어머니를 따라 직접 심기도 하고 캐서 쪄먹기도 했다. ‘감자’를 읽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감자가 이토록 정겹고 따뜻한 생물이라는 걸. 어디나 굴러다녀서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저 흙 속에서 자라는 먹을거리로만 여겼다. 감자를 키운 사람이 내 가족이고 감자를 먹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가 있어야 하는지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공부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머리로만 이해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재미도 없고 나중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말도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감자’는 내게 살아있는 자연 공부이자 사람 공부 자체였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불러내고, 감자를 키우는 사람의 노고를 헤아리고 거기다 조리법까지 알려주었다. 물론 가만히 읊조리면 떠오르는 구수한 풍경과 함께 입가에 맴도는 노랫말의 리듬은 덤이다. 그날 이후 나는 감자를 새로 보게 되었다.


  소율이는 말이 없는 아이다. 처음에는 실없는 농담이나 말장난을 좋아하지 않는 과묵한 성격인가 했다.

  “아, 아파!”

  그런데 누가 조금만 스치고 지나가도 자지러지는 소리를 냈다. 정작 상대방을 불러 물어보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한다. 소율이는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이었다. 아무에게도 곁을 내어주지 않아 늘 혼자 다녔다.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 내는 것만으로 벅찬데 지켜야 할 규칙은 왜 그리 많은지. 친구들과의 관계도 어긋나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 그럴 때 옆에서 힘이 되고 의지가 되어주는 사람이 누굴까? 부모도 선생님도 아닌 바로 친구다. 소율이처럼 친구가 없는 학교생활은 생각보다 힘들고 외롭다. 관계에 지쳐 자발적 외톨이가 되어도 항상 무리 속에 끼고 싶어한다.

  아이들의 친구 관계는 시시각각 변한다. 기분에 따라 취향에 따라 친했다가도 틀어지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이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소율이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될 거라 여겼다. 그런데 그럴 기미가 안보였다. 하루는 조심스럽게 불러 타일렀다. 친구를 사귀려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라, 다 친해질 필요는 없고 딱 한 명, 같이 밥 먹고 놀 친구를 사귀게 되면 지금보다 학교생활이 즐거울 거라고.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가만히 고개를 떨구고만 있었다.   

  소율이는 자주 학교에 늦었다. 왜 늦었는지 물어보면 단답형으로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늦잠자느라요.”

 “다음부터는 엄마한테 깨워달라고 하렴. 아니면 알람을 하든가.”

  처음에는 야단도 쳐보고 늦은 만큼 쉬는 시간을 덜 주겠다고도 했다. 한동안 지키는 것 같더니 도로 마찬가지였다. 소율이 때문에 교실 분위기가 흐트러지자 묵과할 수 없어 야단을 쳤다.   

  가만 보면 지각하는 것도 습관이다. 항상 약속 시간에 일찍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번 늦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신뢰가 가지 않는데 소율이도 마찬가지였다.


  시 낭송을 시작한 지 한참 지났을 때였다. 어쩐 일로 소율이가 시집을 들고 내곁으로 왔다. 내가 부르지 않으면 옆에 오지 않는 아이라 웬 일인가 싶었다. 시집을 펼치더니 자기가 찜한 시를 보여줬다.


  놀이공원 늦겠다

  어서 일어나 씻어

  또 저번처럼 학교로 새면 안 돼

  아니, 놀이공원 가는 애가 교과서를 왜 갖고 가?

  교과서는 나중에 집에 와서 봐도 되잖아     

  지금 학습지 푸는 거니?

  엄마가 몰래 공부하지 말랬지     


  전자윤 시인의 ‘듣고 싶은 말’이었다. 소율이가 왜 이 시를 골랐을까? 얼핏 지나가는 말로 학원을 일곱 개나 다닌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구나?”

  소율이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휴우!.”

  내가 넘겨짚자 기다렸다는 듯 꾹꾹 눌러두었던 불만을 쏟아냈다.

  소율이는 1학년 때부터 밤 아홉 시까지 학원을 전전한다고 했다. 그걸로 모자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가 정해준 양의 문제집을 풀어야 했다. 소율이가 자주 지각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소율이 부모는 그저 자기 자식이라고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끌고다녔다.  

  며칠 후 나는 소율이 엄마랑 꽤 긴 시간 통화를 했다. 그러고 곧 소율이가 기쁜 소식을 전했다.   

  “선생님, 학원 한 개 끊었어요. 다음에 또 한 개 끊을 거예요.”

  “그래? 잘 됐다.”

  짐짓 모른 척 미소를 지어보였다. 소율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

  동시 낭송으로 그치지 않고 아이들이 직접 시를 써보게 했다. 일부러 멋진 말을 찾아쓰려 하지 말고 자기 생각을 진솔하게 표현하면 된다고 했다.

  소율이는 제법 시를 잘 썼다. 나는 소율이가 쓴 시를 아이들 앞에서 읽어보게 했다.  

 “우와! 잘 썼다!”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다른 아이들도 함께 칭찬했다.

  아이들이 쓴 시를 모아 도서관에서 전시도 하고 공모전에 출품도 했다. 우리 학교 아이들 여러 명이 상을 받았다. 그중에 소율이도 있었다.

  나는 김수영의 시를 읽으며 험난한 젊은 시절을 헤쳐온 경험이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기 힘든 현실을 시를 통해 위로받고 내일로 나아갈 의지를 다졌다. 김수영은 “시는 나의 닻”이라 했다. 세상이라는 험난한 바다와 배를 맞대고 물수제비를 뜨던 시인은 시를 쓰며 잠시라도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자 했다. 소율이도 시를 통해 힘든 시간을 딛고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시를 읽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눈앞에 있는 작은 사물과 존재의 의미를 찾아내고 나를 투영하기도 한다. 시를 쓰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내 마음의 소리를 불러낸다. 너는 내게도 오고 나는 네게로 가서 세상은 더 따듯하고 넓어진다. 시는 나의 닻이고 너의 돛이다.                 

  


  2

  선생님, 저 소율이에요

  저는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고 취미도 없어요. 그런데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는 엄친딸 얘기를 하면서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해요. 엄마처럼 힘들게 살지 않으려면 남들이 놀 때 공부하고 남들이 잘 때도 공부해야 한다고요. 놀 때 같이 안 놀면 바보가 되고 잘 때 안자면 머리가 안 돌아가는데. 엄마도 공부하기 싫었다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저의 장래 희망은 댄서예요. 1학년 때 방송 댄스부 선생님이 잘한다고 했고 저도 좋아해서 그렇게 정했어요. 춤 연습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요? 비밀인데요,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학원에 가면 저처럼 공부에 취미도 없는데 다니는 애들이 많거든요? 틈만 나면 같이 휴대폰 보면서 연습할 수 있어요. 함께 춤을 추고 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기분도 좋아져요.

  여섯 살 때인가‘달님이 따라와요’ 라는 시를 어른들 앞에서 낭송한 기억이 나요. 그때는 지금하고 달리 부끄러움도 덜 타고 감정도 풍부했었나 봐요. 두 손을 둥그렇게 모으고 귀여운 소리로 낭송하자 어른들이 웃으면서 박수를 쳤어요. 초등학교에 들어온 뒤로는 그런 즐거운 일이 없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문제집을 풀고 학교에 왔는데 또 책을 읽으라고 해요. 그냥  쉬고 싶은데 책을 읽으라고 하니 얼마나 귀찮겠어요? 그것도 모르고 선생님이 왜 인상을 쓰고 다니냐고 했어요. 웃을 일이 없는데 억지로 웃을 수는 없잖아요. 화가 나 있는 사람한테 화내지 말라는 말이나 똑같은 말이예요. 어른들은 하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녀요. 왜, 라는 말은 하지 않아요. 왜 그런지 알아보면 다 이유가 있는데 말이에요.      

  

축구공 하나가

            김현숙

  여름 한낮

  축구공 하나가

  동네 아이들

  다 데리고 나갔다



  화난 상태로 지내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시를 읽어주었어요. 문득 어른들 앞에서 시를 외우던 그때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시는 제가 하고 싶은 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말을 콕 집어서 알려주어서 좋아요. 시를 쓴 어른도 아이였던 적이 있어서 마음을 잘 아는 거겠죠?

  축구공을 낭송할 때 선생님은 공처럼 탱탱 튀는 목소리로 환하게 웃었어요. 선생님은 풍경을 떠올려 보라고 했어요. 데구르르 축구공 하나가 운동장으로 튀어나가가자 친구들이 우르르 따라나가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저는 그 시를 듣고 너무 기분이 았고 금방 외워버렸어요. 축구공도 둥글고 보름달도 둥글고 제 마음도 꽉  찬 기분이었으니까요.

  수학 문제 풀이는 많이 풀면 풀수록 머리가 아픈데 시는 그렇지 않아요. 단순해지고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선생님 앞으로 더 좋은 시 들려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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