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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 blue Nov 07. 2023

아줌마가 선생이야?

  “3학년 선생님들, 앞으로 나오세요.”

  드디어 새 학년 학급을 뽑을 차례다. 차례대로 교감 선생님이 내미는 봉투 중 한 개를 받아들고 자리로 왔다. 아무런 정보가 담겨있지 않은 명단을 훑어보는데 오지랖 넓은 전년도 담임이 다가와 말했다. 

  “이반에 ○○라는 애가 있는데 조심하세요.”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미리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기에 더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어디든 상식을 넘어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그때그때 부딪혀 나가면 될 거라 생각했다. 

  새 학기 첫날 그 아이를 대면했다. 준서는 볼이 발그레하고 웃을 때 눈이 감기는 귀여운 아이였다. 공부에는 별 흥미가 없어 수업 시간에 장난을 치거나 한눈을 팔았지만 봐줄 만 했다. 준서는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늘 주변이 떠들썩하고 자잘한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단호하게 주의를 주었다. 준서 같은 경우 조금 잘해준다 생각하면 예의없이 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1학기 중반까지 무리없이 따라와 주었다. 어쩌면 선입견 때문에 지나치게 준서한테 근엄하게 군 것도 있었다.  

  그러던 6월 어느 햇볕이 뜨거운 날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저만치서 준서가 황급히 달려오며 소리쳤다. 무슨 일인가 싶어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 

  “제가 가는데요, 헉헉, 4학년 어떤 형이 발을 걸어 넘어뜨렸어요.”

  그래서 다친 데는 없냐고 하니 오른쪽 팔꿈치를 내밀었다. 살펴보니 살갗이 벗겨져 있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어서 안심시키고 보건실로 데려갔다. 처치를 한 다음 4학년 형을 데려오도록 했다.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일이 있어 일찍 집에 갔다는 것이었다. 한구석이 찜찜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어 내일 아침에 하기로 하고 준서를 보냈다. 준서도 거기에 동의했다. 가벼운 상처지만 준서 엄마한테는 알리려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준서가 돌아간 지 삼십 분도 채 안 되었을 때였다. 교감 선생님에게 준서 일을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교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교감 어딨어?” 

  짧은 머리를 한 남자가 냅다 소리를 쳤다. 깜짝 놀라 쳐다보는데 퍼뜩 준서 아빠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직감이 들어맞았다.  

 “아, 준서아버님 오셨어요? 어서 오세요.”

  교감 선생님이 얘기를 하다 말고 부랴부랴 다가갔다. 다행히 교감 선생님은 이런일에 대처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준서 아빠가 나타나는 순간 학교가 마비되었다. 각종 회의며 업무처리를 하려던 오후 일정을 젖혀 두고 준서 아빠에게 매달렸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소홀히 대한다고 트집을 잡고 온갖 험악한 소리를 퍼부을 거라서.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선생님은 교실에 가 있으세요.’

  교감 선생님이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많은 경우 학부모 민원은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당사자인 아이가 중간에서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거나 시간이 지나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서 오해가 빚어진다. 그러면 대화로 차근차근 풀어가면 된다. 어렵더라도 상식선에서 풀어나가면 될 일이지 도망칠 일은 아니었다.

  초면인 준서아빠에게 인사부터 했다. 이유를 짧게 설명하자 내 말을 싹둑 자르고 반말로 소리쳤다. 

  “다 필요 없고, 당장 그 애미 애비 내 앞에 데려다 놔.”

  “준서가 많이 다치진 않았지만 속상했을 겁니다. 다치게 한 아이가 멀리 갔다 하니 전화로 사과를 하도록 하겠으니 내일 아침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학교가 뭐 하는 데야?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야?” 

  내 얼굴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정상적인 대화를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귀한 내 자식이 다쳤는데 부모가 찾아와서 사과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빨리 4학년 학부모를 데려오지 않으면 경찰서에 신고할 거고 교육청에도 민원을 넣을 거라라며 박박 떼를 썼다. 

  그래도 기다려달라고 하자 씩씩거리며 복도로 나가더니 준서를 데리고 들어왔다. 공포에 질려 따라 들어온 준서는 도살장에 들어온 짐승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대체 어쩌자고 이런 자리에 아이를 데려온단 말인가? 아빠가 선생님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고 배우라고? 아빠는 선생님 따위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센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준서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복도에서 아빠가 내지르는 소리를 듣고 저도 부끄러웠을 것이다. 

 “아버님, 하실 말씀이 있으면 준서는 보내고 해요. 교육상….”

  정서 학대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교육은 내가 시킬테니 잔말 말고 빨리 데려오기나 하라고.”

  어린아이처럼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교감 선생님까지 옆에서 거들어도 막무가내였다. 

  “준서아버님, 준서를 위해서 이러면 안 되잖아요? 제가 연락할 테니 이제 그만 준서는 보내죠.”

  준서 손을 잡아끌고 교무실을 나가려고 했다.

  “아줌마! 아줌마가 뭔데 훈계야?”

  “네? 아…줌마라고요?”

  “그래. 아줌마!”

  놀라서 쳐다보자 친절하게 짚어주었다.

  충격으로 숨이 턱 막혔다.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어 4학년 담임인 김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그날 김선생님은 몸이 아파 병원에 가려던 참이었다. 분위기를 대강 파악했는지 준서 아빠와 마주 앉자마자 휴대폰 녹음기능을 켰다. 

  교사들은 학부모 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오죽하면‘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민원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일을 적고 녹음하는 분위기는 아무도 나를 보호해 주지 못하니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는 의식의 발로였다.   

  준서 아빠가 보기에 김선생님의 행동이 아주 거슬렸던 모양이다. 

 “아줌마!”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마치 자기 자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 낮추어 부름으로써 통쾌함을 느끼는 것같았다. 김 선생님 역시 나처럼 놀란 듯 즉시 학부모에게 연락을 취했다. 학부모는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5시쯤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날 나는 준서 아빠의 화풀이 대상이자 감정의 쓰레기통이었다. 그럼에도 보복이 두렵고 무서워서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 저녁 내 머릿속에 ‘아줌마!’라는 단어가 쩌렁쩌렁 울렸다. 나는 선생님인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적어도 학교 안에서는 아이들이나 동료 교사 모두 선생님이라 부르고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에게는 당연한 말이었다. 물론 학교 밖에서는 간혹 아줌마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 어감이 별로 좋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사전적인 정의로 보면 아줌마는 ‘결혼한 여자를 일반적으로 부르는 말’ 이거나 ‘성인 여자를 친근하게 또는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정제되지 않은 말과 폭력적인 행동에 노출되어도, 학부모가 잔뜩 화가 나서 민원을 넣고 관리자가 학부모에게 사과를 종용해도 참을 수밖에 없다. 2020년 아동복지법이 강화되어 학교 안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이 법은 교사들에게는 일명 저승사자법으로 통하는데 정당한 교육활동이라도 자신의 자녀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면 학부모가 아동학대, 정서학대로 신고할 수 있다. 신고당한 교사는 즉시 수업에서 배제되고 고소를 당할 경우 혼자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경찰서를 오가며 죄인 취급을 받고 수년에 걸친 재판 끝에 무죄가 밝혀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참 못할 일이다. 

  그 후로도 두 번 더 그런 일이 벌어졌다. 우리 반은 아니고 방과 후 동네 놀이터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아이들끼리 소소한 말다툼이 벌어졌는데 이를 두고 같이 놀았던 아이들의 부모를 모두 불러 무릎을 꿇도록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준서 집에 놀러 간 친구가 실수로 장난감을 고장 냈는데 두 배로 돈을 물어내라고 했다고도 한다. 

  나중에 보니 준서아빠의 목적은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변변한 직업이 없는 데다 아내와 불화가 심했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무력감과 소외감, 불만을 엉뚱한 곳에 풀었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아이들을 폭력으로 제압함으로써 우월감을 느끼는 비굴하고 찌질한 어른에 불과했던 것이다. 또한 민원인이라는 삐뚤어진 권위를 악용하여 폭력적인 방식으로나마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어른이었다. 그게 사랑하는 자식 준서에게 독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을 정말 모르고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의 폭력이 강할수록 아이들은 작아지고 약해진다. 대화와 타협, 관용, 이해, 소통 대신 지시, 억압, 폭력, 오해, 불통이 자리 잡는다. 그게 싫으면서도 익숙해지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물이 든다.  

  존중받고 자란 아이는 존중받는 어른이 된다. 존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그것이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들은 어른이 아니다. 어른이 되기까지 수많은 날들이 있고 때로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할 것이다. 준서는 아빠와 선생님의 태도를 함께 지켜보았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지도 배웠을 것이다.

  유난히 길고 조마조마한 일 년을 마치고 준서는 4학년이 되었다. 또다시 담임 발표를 하는 날이 돌아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4학년 담임들도 가슴을 졸이며 봉투를 뽑았을 것이다. 

  준서가 어느 반이 되었는지 나는 알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그 담임도 소문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리 겁내지 말기를, 하나하나 헤쳐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풍랑을 만나기도 할 테지만 그 또한 다 지난 일이 될 것이라고, 부디 힘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준서의 일기

  6월 3일 수요일 날씨 : 조금 더움

  제목 : 아빠     

  오늘 점심은 내가 싫어하는 카레가 나왔다. 잔반을 남기면 안 돼서 코를 틀어막고 억지로 욱여넣었다. 자장은 좋지만 카레는 별로다. 냄새도 별로지만 진득하게 달라붙는 게 성가시다. 누런 이빨을 보면 우웩, 똥같다. 

  겨우 먹고 놀이터 쪽으로 가는데 이균이랑 준혁이가 보였다. 이균이랑 마주치기 싫어 얼른 뒤돌아섰다.. 

  어제 이균이랑 쉬는 시간에 말다툼을 했다. 내 반지를 보고 “남자애가 이런 걸 다 하고 다니냐?”며 놀려서다. 내가 반지를 끼건 말건 무슨 상관이냐고 하자 이균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기분이 너무 나빠 나도 손가락 욕을 해주었다. 무슨 반지에 남자와 여자가 따로 있는지 부아가 치밀었다. 욕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려고 했지만 겨우 참았다. 순간 아빠를 말리던 엄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주먹이 나가서 난장판이 되었다면 나는 아빠와 똑같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게 두려울 때가 있다. 

  원래는 준혁이랑 나랑 친했다. 그런데 이균이가 중간에 끼어들어 나와 준혁이를 갈라놓았다. 일부러 보란 듯이 준혁이랑 딱 붙어 다니며 약을 올려서 감정이 안 좋았다. 준혁이는 내가 재미는 있는데 자기 말을 안 들어주어서 그런다고 하지만 그건 순전히 개뻥이다. 이균이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킨 거다.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일주일에 한 번 용돈을 준다. 그걸 모아 선물의 집에 가서 마음에 드는 반지나 팔찌를 사는 게 취미다. 오늘도 학교 끝나고 엄마랑 동생이랑 선물의 집에 가기로 했다. 친구들은 맘대로 안 되지만 엄마는 내가 말하는 건 다 들어주니까 좋다. 

  어후, 그런데 아빠 때문에 계획이 틀어졌다. 

  교실로 가려고 본관과 후관 사이에 있는 통로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4학년 아는 형이 갑자기 나타나서 내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운동 신경이 좋아 그나마 팔뚝이 살짝 벗겨졌지 안 그랬으면 코가 깨졌을지 모른다. 그 형은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하고 가버렸다.

  너무 화가 났다. 선생님이 나를 보건실로 데려가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그 형이 몇 반인지 아냐고 해서 안다고 하자 반장을 부르더니 같이 가서 데려오라고 했다. 그런데 재수없게 벌써 집에 갔다고 했다.  

  엄마한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자 속상해하셨다. 동생이 와서 외출하려고 하는데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가 그 얘기를 하자 아빠가 곧바로 왔다. 

  “어떤 새끼가 그랬어? 네 선생은 뭐라 해?”

  아빠가 눈에 불을 켜고 소리쳤다. 괜찮다고 말하려는데 무서워서 말이 안 나왔다. 아빠는 잘해줄 때는 잘해주지만 한 번 화가 나면 정말 무섭다.   

  “당장 학교에 가.”

  아빠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엄마가 별거 아니니까 일 키우지 말라고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억지로 아빠 차에 태워졌다. 사실은 아빠 차가 아니라 빌려온 차였다. 집 한 채만큼 비싸다고 하는데 얼마인지 모르겠다.  

  1학년 때 일이 생각나 마음이 불안했다. 그때도 짝꿍이랑 별일 아닌 일로 다퉜는데 아빠가 이렇게 나왔다.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교감 선생님한테 삿대질을 하고 쌍욕을 하고 짝꿍 엄마 아빠를 데려오라고 윽박질렀다. 대체 아빠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것일까? 

  그 뒤로 교감선생님은 나만 보면 반갑게 달려와 안아주셨다. 그때는 아빠가 무서워서 그런 줄 알았다. 특별하게 대해준다는 생각이 들어 은근 기분이 좋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런 아빠를 둔 내가 불쌍해서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별로다.   

  학교에 도착한 아빠는 나를 복도에 세워놓고 교무실로 들어갔다. 큰 소리가 들리더니 아빠가 나를 데리러 나왔다. 아빠 손에 끌려가면서도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필이면 우리 선생님이 그 자리에 계셨다. 너무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아빠가 소리 지를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계속 소리를 질렀다. 쪽팔려서 죽을 뻔했다. 아빠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일부러 딴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아직 아빠 소리가 귀에 남아있다. 

  어릴 때 아빠는 나랑 잘 놀아주고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주려고 했다. 돈 때문에 엄마랑 싸울 때만 아니면 괜찮은 아빠였다. 여전히 가족을 사랑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정말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가족에게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 아니다. 내 속에도 욱하는 아빠가 가끔 들어있다. 나는 아빠의 거울이 되기 싫은데 나도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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