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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하마 Aug 12. 2024

수능을 망쳐 본 아줌마의 하소연-2

차선으로 입학한 곳에서 제대로 공부해보다

  IMF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졸업하면 안정적인 직장으로의 취업이 보장되던 교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덕분에 점점 입시 커트라인이 올라가더니 2006학년도 입시에서 정점에 달했다. 서울교대에는 전 과목이 대부분 1등급이여야 입학할 수 있었고 그 외 지방교대도 1등급과 2등급이 적절히 섞여 있는 성적표여야 안정적인 지원이 가능했다. 또한 수시전형은 아예 없이 정시로만 학생들을 선발하면서도 전 과목의 내신점수를 반영하는 콧대 높은 행보를 보였다.

  성실하게 공부시간과 양으로 승부했던 나는 내신성적은 참 좋았다(당시 내신은 상대평가 등급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평준화지역 인문계고등학교의 내신시험은 선생님들께서 내주신 예상문제만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전 과목이 'All 수'였다(당시 수우미양가 라는 평어점수가 있었다. '수'는 원점수 90점 이상이다). 하지만 내신점수가 아무리 좋으면 뭘 하나. 워낙 우수하고 성실한 학생들이 교대에 대거 지원했기에 내신점수는 변별력이 거의 없었다. 대신 수능점수, 특히 변별력이 컸던 수능 수학점수가 높은 학생들이 유리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수능 수학점수를 올리고자 하루 다섯시간 이상은 수학에 투자했던 내가, 수학 때문에 교대에 떨어진 꼴이 됐다.  정시전형 가나다군 중에서 대부분의 교대가 나군에 몰려있었고, 나는 교대 중 그나마 그 전 해 커트라인이 가장 낮던 춘천교대를 지원했다.


가군에는 내 점수에 맞춰 지방 모 사범대학 특수교육과를,

 나군에는 대폭 상향지원으로 춘천교대를,

다군에는 대폭 하향지원으로 서울 하위권 대학 어문학부를 지원했던 나는

 

결국 나군 춘천교대에서는 낙방하고 말았다.


수능점수를 보면 불합격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요행을 바랐던 나는 나군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도 엉엉 울었다.


내 점수에 딱 맞춰 지원한 가군 특수교육과에 합격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이마저도 감사한 일이다. 아니 오히려  결과적으로 더 잘 된 일이다. 특수교육과 입학 후 참 행복하게 지내고 공부를 제대로 했으며 현재도 특수교사로서 매우 만족하며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능 성적표가 나오고, 대학교에 원서를 넣고, 합격 발표가 나던 그 땐 하루하루가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고등학교 3년간 교대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한 것이 참 부질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의 3년이 너무 아깝다는, 참 어리고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사실 살다 보면 수능, 입시는 참 사소한건데. 고등학교 3년의 모든 시간이 수능점수로만 치환되는것은 아닌데. 스무 살이 채 안된 당시의 나는 그게 참 커 보였다.


3년 내내 바라봤던 교대에 떨어졌으니 재수를 할까 잠시 생각했지만, 사실 자신이 없었다. 수능을 준비하며 내가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 공부법에 확신이 없는 채로, 더군다나 자신감이 완전히 바닥난 지금 이대로 재수했다가는 더 안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특수교육과에 입학했다.


새내기 첫 학기. 물론 대학생활 자체는 참 재미있었다. 부모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기숙사에서 지내는 것, 친구들과 마음껏 놀러다니는 것, 당당하게 술한잔 하고 머리모양도, 옷 입는 스타일도 내 맘대로 꾸미는 것 등등. 모든 게 어설프고 촌스러웠지만 그땐 그 자유에 푹 빠져 지냈다. 하지만 수능을 망친 트라우마 때문인지 대학교에서도 첫 학기에는 시험을 볼 때마다 지나치게 긴장했다.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첫 학기 성적도 별로 좋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학기부터 인근 특수학교로 봉사활동도 나가고, 실습 위주의 수업도 들었다. 봉사활동과 실습을 병행하며 이론수업(장애학생의 특성, 수업 방법 등)을 들으니 그 내용이 쏙쏙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교육학과 전공 공부가 점점 재미있어졌다.


그제서야 제대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교수님의 수업에 푹 빠져 열심히 듣고, 수업 시간에 다루는 전공 서적을 즐거운 마음으로 정독했다. 각 챕터의 핵심어들을 파악한 후 그 개념을 줄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파고들었다. 제대로 공부했다는 생각이 들자 긴장감 없이 모든 시험을 볼 수 있었다. 2학기에 결국 성적장학금을 받았다.


'공부'라는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드디어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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