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망쳐 본 아줌마의 하소연-1
아직도 생생한 그 날의 기억
2005년 11월 23일,
200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날이었다. 원래 일주일 전인 16일날 치르려던 것을 APEC정상회의 개최 날짜와 겹친다 하여 미뤄졌던 그 해 수능이었다. 최초로 수능샤프라는 것이 배포됐던 그 해 수능이었다.
1교시 언어영역.
문제지를 받았는데 웬걸.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는 말을, 국어교과서에서.. 어려운 상황에 대한 좀 과장된 표현으로만 봤지 실제로 국어 시험을 치면서 경험하게 될 줄이야. 문제지를 받자 마자 어떤 문제들이 나왔는지, 이 지문에서 어떤 답을 찾아내야하는지 재빠르게 살펴도 모자랄 판에 몇 분을 그렇게 멍하니 있었다. 수능시험 전까지 너무 많이 걱정하고 긴장한 탓일까, 내가 공부를 열심히만 했지 제대로 된 방법으로 하지 못했다는 불안감이 컸던 것일까. 그 둘 다인가. 내 마음으로 이미 이 공부법은 틀렸다고, 나는 수능이라는 시험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인정했기에 그랬을지도.
멍하니 있다가 '고득점을 위해서는 절대 틀리지 말아야 한다는' 듣기평가(당시엔 수능에 국어 듣기평가도 있었다.) 문제도 한 문제 놓치고 말았다.
다 맞아야 하는 듣기평가조차 놓쳤다는 생각에 더 멘붕이 돼 내 유리멘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문의 내용을 파악하려 집중하기보다 '정신차려야지'라는 각성을 더 자주 하는 채로 언어영역 시험을 치르고 말았다.
그 해 언어영역은 정말 쉬워서 만점자가 속출했다.
1개 틀리면 1등급, 2개 틀리면 2등급, 3개 틀리면 3등급, 4개 틀리면 4등급이 될 만큼 쉽게 나온 시험이었다. 이전 수능까지 1교시 언어영역이 지나치게 어려우면 수험생들이 좌절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한다고 하여 그렇게 했다나 뭐라나. 그러면 뭐하나, 나는 자신감이 바닥난 채로 잔뜩 긴장한 바람에 그 쉬운 시험도 쉬운지도 모르고 낑낑거렸다.
2교시 수리영역.
수학. 고등학교 3년 내내 하루 평균 다섯시간 씩 붙잡고 있던 과목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가장 약한 과목이었다. 그래도 원하는 교대에 가려면 반드시 잘 봐야 하는 과목이었다.(당시 교대의 커트라인은 지방교대가 평균 2등급, 서울교대는 평균 1등급이었다. 정시로만 선발했기에 수능을 잘 봐야 했으며, 수능 4개 영역을 모두 같은 비중으로 중요하게 반영하는 빡센 교대입시 시절이었다.) 늘 자신 없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루 다섯시간씩 문제를 풀어댔는데도 점수는 오락가락했다. 내신 수학시험은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풀어 주신 문제 모음을 열심히 풀면 다 맞을 수 있었는데 수능을 대비하던 모의고사점수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많이 연습해도 안정적인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어떤 모의고사에서는 2등급이 나왔다가, 어떤 모의고사는 3-4등급이 나오거나 절반도 못 맞는 경우도 많았다. 수능 보기 전날까지 내 수학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내가 많이 풀어본 유형 위주로 출제돼 운이 좋게 내가 맞아본 가장 높은 등급을 맞길 바랐다. 즉, 요행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수리영역 시험지를 받았다. 처음 15문제는 술술 풀렸다. 숱하게 반복해 풀었던 신*고/디*돌/해* 등 문제집들에서 봤던 비슷한 문제들이었다. 즉 기본 유형의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16번부터 30번까지는 풀다가 모든 문제가 턱턱 막히기 시작했다. 체감하기에 생전 처음 본 문제유형이었다. 이제껏 어느 문제집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낯선 문제들. 대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것일까, 남은 15문제 중 제대로 풀리는 문제가 한 문제도 없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당황해서 질질 짜며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종료령까지 5분밖에 남지 않았다. 망했다.... 5분동안 15문제를 한 번호로 찍고, 종료령과 동시에 답지를 제출하자마자 엉엉 울었다. 눈물의 수능 도시락도 먹었다.
3교시 외국어영역.
영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다. 수학과 달리 단어를 많이 외우고 문장을 많이 읽다 보니 쭉쭉 점수가 올랐던 과목이었다. 내신도, 수능모의고사 점수도 안정적으로 올라 계속 1등급만 나왔던 과목이었다.
시험지를 받았는데 다른 때보다 난해하게 느껴졌다. 지문도 길고 어휘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 시간 내 상태는 자포자기상태였다. 실컷 울고 '이미 수능은 망했다'라는 생각이 들자 한결 마음이 정화된 것일까,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읽고 문제를 풀었다. 평소 영어지문 읽기를 좋아하기도 했다.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라기보다는 그냥 해탈한 마음으로 봤다. 평소 자신있던 과목인데다, 다 내려놓는 심정으로 편히 본 시험이라 그런지, 어려운 문제여도 막상 풀면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료령까지 10여분이 남도록 여유 있게 모든 문제를 풀고도, 틀린 문제는 거의 없을거란 확신도 들었다. 외국어영역 시험은 무사히 마쳤다.
4교시 사회탐구영역.
내가 수능을 보던 그 때는 최대 4과목까지 선택할 수 있었다. 외국어영역을 잘 봐서인지 집중을 잘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고 내신시험도 잘 봤던 과목들로 선택한 사회탐구영역이었다. 문제는 평이했다. 그 해부터 EBS교재와의 연계성도 강화한다더니 정말 EBS교재와 비슷한 지문과 그래프들도 보였다. 자신감을 되찾고 사회탐구 시험도 무사히 마쳤다.
3,4교시 시험은 해탈한 마음으로 편하게 잘 봤지만, 이미 1,2교시 시험은 정말 망쳤다는 생각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성실하게 고등학교 생활을 했다고 자부하던 나였다.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모범생이라 칭찬했던 학생이었다. 친구들이 '나도 너처럼 열심히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의지가 대단하다'라고 입을 모아 응원해줬던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엉덩이힘으로, 공부시간량으로 밀어붙이면 좋은 성적이 나오던 내신시험과 달리 수능모의고사 점수는 좀처럼 나오지 않아 전전긍긍했다. 비슷한 성적의 친구들이 모두 서울 상위권대학에 1차수시로 합격하며 옆 책상이 비워지는 것을 보며 흔들리다가도(당시엔 1차수시에 합격하면 합격자 발표가 2학기 초반쯤 났다. 수능시험을 보지 않아도 됐기에 일찍부터 그 친구들은 합격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게 학생들 사이의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한다고 하여 나중에 사라졌다.), '그래도 난 목표가 다르잖아'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나였다.
이런 내가 수능시험을 망쳐버렸다. 모든 시험 종료 후 핸드폰을 받으려고 대기하는 시간 내내 그간 고등학교 생활을 떠올리며 펑펑 울었다. 시험장을 나와 아빠 차를 타고 집에 가는 내내도 엉엉 울었다. 아빠 차 라디오에서 '이번 수능 언어영역과 수리영역은 대체로 평이했다'라는 방송을 들으며 더더욱 대성통곡을 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시험에서, 중학교 때보다 성적이 많이 올라 함께 한껏 올라갔던 나의 자신감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조금씩 내리막을 보이다가...
그 날 수직 하락하고 말았다.
스무살 첫학기까지 도무지 '시험'에 대한 자신감이 회복되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