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 따라하다가 월세까지 받게 된 과정-9
텅 빈 곳이 많아진 33평 아파트
하루하루 실천하는 미니멀라이프가 즐거웠다.
불필요한 물건을 없애고, 꼭 필요한 물건만 손에 잘 닿고 한 눈에 보이는 곳에 두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소중히 관리하며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주방 싱크대 옆 공간에 항상 무언가 올려져 있었다. 아침마다 사용하는 믹서기, 후라이팬, 믹싱볼, 조리도구들 등등. 따로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자리를 정하기에는 그 물건들이 너무 많았고 주방 선반들은 모두 꽉 차 있었다. 다시 넣으려면 테트리스하듯이 끼워 넣어야 했는데 그러기가 너무 번거로웠다. 또한 선반에 넣으려면 설거지를 하고 물기를 닦아야 하는데, 그게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냥 올려놓으면 저절로 마르고 몇 시간 후 또 사용할 건데 뭐하러 물기를 닦아서 넣어두나'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도구만 남기니 싱크대 옆 공간을 비워둘 수 있었다. 몇 개 안되는 도구들을 설거지해 그때그때 물기를 닦아 정해진 자리에 수납했기 때문이다. 갯수가 얼마 안 되니 설거지 하고 물기를 닦아 완전 건조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전에는 설거지의 마지막 단계가 '세제 물로 헹궈내기'였다면, 이제 '그릇을 원래 자리에 넣어 두기'가 되었다.
싱크대 옆 공간이 생기자 조리할 수 있는 공간도 넓어졌다.
예전 24평 아파트에 살 때는 조리할 공간이 너무 좁아 힘든 줄 알았다. 그래서 33평에 오자마자 '이제 요리할 공간이 충분해서 좋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반대로, '진작 이렇게 식기를 관리했으면 24평 좁은 부엌에서 요리하기도 좁지 않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대와 붙박이 옷장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사용하는 화장품만 소량 남기니 화장대 전체가 텅 비었다. 얼마 안 되는 기초/메이크업 화장품들을 모두 욕실 수납장 안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욕실에서 세안을 하고 화장대로 가서 화장을 하는 것보다, 세안을 한 그 자리에서 욕실 수납장만 열어 바로 화장을 하는 게 훨씬 편했다.
우리 세 식구가 자주 입는 옷만 남기니 옷 한 벌 한 벌이 소중해졌다. 그래서 옷을 좀 더 세심히 관리했다. 연한 소재는 건조기를 쓰지 않고 햇볕에 말렸으며, 캐시미어나 울코트는 옷솔을 사용해 보풀을 수시로 털어냈다. 구김이 가지 않도록 속옷과 양말이 아닌 모든 옷을 원목 옷걸이에 걸었다(세탁소에서 딸려 오는 철사 옷걸이는 옷 모양을 변형시키는 것 같아 버렸다. 원목 옷걸이가 개당 2000원정도이지만 옷의 가짓수가 많지 않으니 생각보다 원목 옷걸이를 많이 사지 않아도 됐다.)옷의 가짓수가 많지 않으니 옷을 관리하기 수월했으며 붙박이장의 절반이 비워졌다.
화장대와 붙박이옷장이 비워지니 그곳에 쌓인 먼지를 자주 닦게 됐다. 이전에는 먼지가 쌓이는지도 몰랐는데, 이제 먼지를 수시로 닦다 보니 '아예 화장대와 옷장이 없으면 먼지가 쌓이지도 않겠는데'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빈 공간이 많아진 집은 우리 가족이 정말 소중히 여기는 물건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이들을 깨끗하게 다루기 위해 가사도우미 이모님께 맡겼던 청소마저 내가 직접 하게 됐다.
2019년, 맞벌이 시작 후 청소할 시간이 없었다. 욕실 두 개인 33평 공간을 청소하기에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다. 몇 년간 가사도우미 이모님이 일주일에 한 번 청소를 해주셨다.
이모님께서는 청소를 정말 깨끗이 해 주셨다. 대신 월 20의 청소비용이 들었다. 그리고 이모님의 청소 방식에 맞는 도구들(진공청소기, 물걸레청소기, 종류별 세제, 종류별 수세미 등)을 구비해야 했다. 이렇게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지만 내가 직접 청소할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미니멀라이프 시작 후 청소를 내가 직접 하면서 청소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더불어 청소도구도 간소화했다. 진공청소기 후 물걸레청소기까지 돌리는 대신, 직접 물걸레 여러 장으로 바닥을 닦으며 그때그때 먼지를 제거했다. 물걸레로는 바닥만 닦는 게 아니라 세심히 살피며 선반, 쇼파, 침대 틀 등 구석구석 닦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할 만했고 진공청소기와 물걸레청소기도 비울 수 있었다. 세제도 욕실 세정제 한 개만 남기고 모두 비웠다. 청소를 한 번에 몰아서 전문적으로 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조금씩 간단히 하면 물로만 닦아도 깨끗했다.
점점 찬 바람이 불어왔다. 집에 난방을 켜기 시작하며 관리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관리비 고지서를 보며 불현듯 생각했다. '24평이라면 관리비에서 월 10만원 정도는 아낄 텐데.'
생각해보니 관리비만이 아니었다. 욕실이 2개인 33평보다, 욕실이 1개인 24평 공간은 청소 시간도 절반밖에 들지 않을 것이었다.
물건들도 적어졌고, 화장대와 붙박이옷장도 필요 없어졌고, 식기세척기도 넓은 주방 수납장들도 이제 우리 세 식구에게 불필요한 공간이 됐다. 우리 세 식구에 딱 알맞게 공간을 줄이면.. 주거 비용도, 관리하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에 남편도 적극 찬성하였고,
그 길로 부동산에 우리 집을 내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전에 살았던 24평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기로 했다.
2013년에 지어진 33평 아파트인 우리 집은
보증금 3억, 월세 50만원에 내 놓을 수 있었다.
우리가 들어갈
1998년에 지어진 24평 아파트 전세가는 마침 3억이었다.
33평 아파트를 빌려 주고 받은 보증금 3억은 고스란히 구축 전세아파트에 입주하는 비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도 우리에겐 월 50만원이라는 월세 수익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