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 따라하다가 월세까지 받게 된 과정-8
신발장 비우기
옷장과 주방을 비우며 깨달았다,
수납공간에도 여백의 미가 절실하다는 것을.
수납장이 꽉 차 있을 때보다 여백이 있을 때, 한 칸에 한 종류의 물건만 있을 때, 그래서 그 칸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을 때 그 물건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백이 많아야 꺼내기 쉽고,
꺼내는 것이 쉬워야 사용할 때 거리낌이 없다,
가위를 꺼내기 쉬워야 택배상자를 뜯을 때 가위를 사용한다. 가위를 꺼내기 번거롭다면 가위를 안 꺼내고 손톱으로 긁어 뜯다가 손톱이 상한다. 그런 경험이 누적되면 택배상자를 뜯는 일까지 번거로워진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아직 못 뜯은 택배 상자가 어딘가에 쌓인다, 악순환이 반복되며 일상이 번거롭고 복잡해진다.
여유 공간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마치 나비효과처럼 느껴졌다.
이제 여백의 미가 없는 수납공간은 신발장 뿐이었다. 신발장에는 여전히 칸마다 신발이 빼곡했다. 빼곡하다 못해 부족해서 한 켤레를 나란히 놓지 못하고 왼쪽 신발 위에 오른쪽 신발을 겹쳐 넣었다. 그 상태로 며칠 지나면 구겨진 신발을 다시 펼쳐 신어야 했다.
신발장을 비우기로 결심했다.
세 식구 중 내 신발의 가짓수가 가장 많았다.
어떤 신발이 그렇게 많은 건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이힐부터 쿠션이 듬뿍 들어간 운동화까지 참 다양했다. 운동화나 슬리퍼, 단화는 닳고 닳았는데 하이힐이나 롱부츠는 산 지 꽤 오래됐는데도 사용감이 거의 없었다.
하이힐은 신은 그 순간은 예쁘고 옷 핏을 훨씬 멋스럽게 살려주지만 발이 너무 아파 이십 분 이상을 걷기 어려웠다. 대학생일 때만 해도 하이힐을 신고 하루 종일 종종거리면서 다녀도 발이 아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그러면서 내 발모양이 점점 휘어졌다. 그러다 출산 이후에는 하이힐을 신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무조건 운동화나 쿠션이 듬뿍 들어간 샌들만 신었다. 하이힐을 신으면 발이 너무 아프고, 그러다보니 그날 하루가 너무 고단해졌기 때문이다.
롱부츠는 미니스커트나 원피스와 입으면 옷맵시가 살아났다. 하지만 신고 벗기가 불편해 한 번 신으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퍼스널컬러 진단 후 옷장을 정리하자, 옷장에 하의는 거의 청바지나 슬랙스만 남아있었다. 더더욱 롱부츠는 신을 일이 없다.
결국 신발장의 내 신발은 딱 6켤레만 남았다.
-겨울 내내 데일리로 신는 방수 잘되는 패딩 숏부츠 1켤레,
- 사계절 신을 수 있는 편한 운동화 2켤레,
(운동화 중에서 색이 너무 튀거나 무늬가 많은 것, 너무 저렴하게 사서 몇 번 신지 않았는데 많이 닳아버린 것, 굽이 지나치게 낮고 쿠션이 없어서 발바닥이 딱딱한 느낌이 나는 것은 비웠다. 쿠션이 듬뿍 들어가 편하고, 5-6만원 가격대에 구입한, 어느 옷에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연한 분홍색과 검정색 운동화만 남겼다. 이 두 운동화는 디자인도 아주 깔끔해서 정장 슬랙스에도 신을 수 있다.)
- 여름에 신는 쿠션 샌들 1켤래
(이건 디자인이 아주 단순하고 적당히 굽도 들어가 있어서 역시 정장 슬랙스에도 잘 어울린다.)
- 봄부터 가을까지 신을 수 있는 아이보리색 메리제인 펌프스 단화 1켤레
(색도 디자인도 단순하여 캐쥬얼에도, 격식 있는 옷차림에도 잘 어울리며 쿠션이 듬뿍 들어가 편하다.)
- 장마철에 맨발일 때 데일리로 신을 수 있는 편한 슬리퍼 1켤레
6켤레의 공통점은,
쿠션이 듬뿍 들어가 많이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다는 것.
신고 벗기가 정말 편하다는 것.
색과 디자인이 아주 단순하여 캐쥬얼에도, 정장에도 모두 어울린다는 것이다.
신발의 갯수를 대폭 줄이자 신발장에도 여백이 많이 생겼다, 한 켤레 놓고 한 뼘 이상 띄워 다른 신발 한 켤레를 놓을 수 있었다. 그래도 신발장 밑 공간이 남았다. 그곳에 고리를 달고 우산을 걸었더니 원래 우산 수납장이었던 것처럼 찰떡이었다. 자연스레 신발장 근처에 뻘쭘히 서 있던 우산꽂이도 비울 수 있었다. 그 옆 공간에는 딸아이의 물놀이, 모래놀이 장난감 상자도 넣을 수 있었다. 신발장 안 뿐만 아니라 신발장 근처까지 깔끔해졌다.
신발장을 비우자 신발을 찾고 신는 것만 간편해진 게 아니었다.
신발장의 빈 공간이 많이 보여 주기적으로 먼지를 닦게 됐고, 늘 어딘가 꾀죄죄했던 신발들이 점점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신기하면서도 뿌듯한 변화였다.